나는 혼자 스페인을 걷고 싶다 - 먹고 마시고 걷는 36일간의 자유
오노 미유키 지음, 이혜령 옮김 / 오브제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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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데 산티아고. 낯선 듯 낯익은 이름이다. 카미노가 낯설다면 산티아고는 낯익다. 그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 때문에 그렇다. 몇 년 전부터 나에게 계속 다가온 이름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이 길을 다녀온 수많은 사람들의 감탄과 이 길에서 영감을 얻어 제주도에 만든 올레길 등이 연속적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이 책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룬 책은 처음이다. 이전에 읽을 기회가 있었지만 이 길에 대한 무지로 그냥 지나갔다. 결국 만날 것은 만난다는 말처럼 36일 동안 이 길을 먹고 마시고 걸은 기록을 만났다.

 

저자는 총 세 번 이 길을 걸었다. 300km, 500km, 800km. 이렇게 세 번이다. 이 책은 프랑스의 피레네 산맥에 있는 순례지의 기점인 생장피드포르 거리부터 800km 가까이 되는 길 전체를 35일 동안 걸은 기록이다. 단순히 나누면 하루에 약23km를 걸어야 한다. 하루라면 할 수 있다. 이렇게 35일을 걷는다면 어떨까? 아니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는 거리라면? 이런 숫자를 머릿속에 담아 두면 이 순례길이 얼마나 긴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짧은 휴가를 낸 사람들은 100km씩 끊어서 걷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렇게 긴 길을 사람들은 걷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작가는 자신의 경험과 더불어 보여준다.

 

많은 여행서를 읽었다. 하지만 도보로만 이렇게 긴 여행을 한 경우는 처음이다. 물론 찾아보면 이보다 더 긴 거리를 긴 시간 동안 걷은 사람들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길들은 이 길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걸었고, 걸고 있고, 걸을 길은 아닐 것이다. 이 점이 나를 유혹했다. 언젠가 제주 올레길이 유행했을 때 나도 저곳에 가서 천천히 걸어봐야지 생각했던 것처럼. 물론 이 생각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하지만 제주를 생각할 때면 늘 올레길이 떠오른다. 아마도 스페인 여행을 말하다보면 이 산티아고 순례길이 떠오를 것 같다. 실제는 갈 가능성이 낮지만. 평일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대부분 혼자라는 방송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이야기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주 떠올랐다.

 

35일 동안 걸은 기록이지만 매일 매일 기록한 것은 아니다. 실제 기록된 것은 19일이다. 저자에게 큰 의미가 없었거나 편집에 의해 삭제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재미없다고 해도 매일 기록이 있었으면 한다. 그것이 더 생생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자신이 겪은 공황장애부터 시작하여 첫 출발지점에 오기까지 과정까지 간략하게 이야기한다. 한국 여자의 해프닝도 하나 넣어서. 그리고 생장에서부터 걷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평범하다. 이미 다른 곳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읽었고, 예상한 이야기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더 자세하게 설명한 부분과 여행자들의 한 마디 한 마디기 조용히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책의 구성도 재미있다. 1장은 앞에서 이야기한 자신의 일정을 말한다. 2장은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정보를 다룬다. 기초 지식부터 준비물을 비롯한 맛 기행까지 다양하다. 순례길을 갈 준비를 하는 사람이라면 2장이 더 흥미로울 수도 있다. 그리고 이번에 안 것이지만 순례길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대중적인 길을 그녀는 걸은 것이다. 가장 대중적이라고 해도 800km다. 그녀의 의지가 얼마나 강했고, 절박했는지 알 수 있다. 여행서 역할과 함께 안내서 역할도 같이 하는 책이다. 안내서의 경우 관심 분야가 아니면 집중력이 깨어지는 순간이 있는데 이 책도 그런 부분이 있다. 그리고 저자가 한국 출판을 염두에 두었다고 했는데 실제 한국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이 사실을 몰랐을 때는 출판사에서 편집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하기도 했다.

 

지금 당장, 혹은 가까운 시간 안에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갈 경우는 거의 없다. 우선순위를 두는 곳도 있고, 나의 환경이 그것을 쉽게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은 알 수 없다. 언제 갑자기 혹은 무슨 일로 인해 이곳의 긴 도보여행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때까지 이 순례길은 나의 가슴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오면 깨어나 나로 하여금 그 길을 걷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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