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변호사 고진 시리즈 5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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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고진 시리즈 최근작이다. 이 시리즈 첫 작품인 <어둠의 변호사 - 붉은 집 살인사건> 이후 처음 읽는다. 그 사이에 다른 시리즈 한두 권 읽었다. 이 글을 쓰면서 이전 서평을 다시 읽었는데 콤비의 활약을 기대한다는 글이 보인다. 고진과 이유현 형사 콤비다. 이번 작품에서 이 콤비의 활약은 그렇게 많지 않다. 어떻게 보면 고진의 독무대라고 할 수 있다. 법정에 서지 않는 변호사라는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이 작품에서는 법정에 나와 멋진 법정극을 펼친다. 작가가 현재 부장판사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아주 현실적인 장면들로 가득하다. 물론 이것은 한 번도 형사 법정을 보지 못한 나의 경험에 의한 판단이다.

 

이번 작품은 증거가 부족한 피고인을 구제하기 위해 법정에 출두한 변호사 고진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변호사, 조금 특이하다. 우리가 흔히 법정 드라마에서 보게 되는 열정적이거나 냉철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를 잘 아는 이유현의 시선으로 볼 때도 특이하다. 분명하게 피고인을 변호하고 있지만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대충 시간만 때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독자들은 그의 노력과 현실 파악이 눈에 들어온다. 이 작품의 매력은 바로 여기 있다. 증거가 부족한데도 소거법에 의해 범인으로 단정한 피고인을 악착같이 감옥에 넣으려는 악당 검찰과 실제 어둠의 변호사지만 피의자를 최선을 다하는 고진의 대결 말이다.

 

고진은 어느 날 한 미모의 중년여성으로부터 남편을 죽여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어둠의 변호사란 별명 때문에 생긴 오해다. 당연히 거절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그는 그 여자의 변호사로 법정에 선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법정에 선 적이 없는 그인데 말이다. 이 사건의 피고인 김명진은 아주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다. 이 미모 때문에 20년 전 그녀는 네 명의 복학생과 함께 어울려 다녔고 동시에 프로포즈를 받는다. 농담처럼 달리기로 결정하자고 말한다. 운동장 20바퀴 돌기다. 4명이 달렸고, 한 명이 중간에 화를 내면서 포기했고, 3명은 열심히 달렸다. 그리고 한 명이 이겼다. 그가 그녀의 남편 신창순이다. 가장 먼저 포기한 인물은 임의재고, 중간까지 달린 것은 남궁현, 마지막까지 경주한 것은 한연우다.

 

신창순의 시체가 발견된 곳은 블라디보스토크다. 죽은 지 일주일만에 발견되었다. 러시아 검시관의 부검결과다. 그를 죽일 용의자는 아내와 그의 대학 동창들 밖에 없다. 그런데 출입국 기록을 보니 아내 김명진을 제외하면 아무도 그 시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없었다. 검찰이 판단하기에 가능성이 있는 인물은 아내밖에 없다. 그 유명한 소거법에 의한 결론이다. 그런데 그녀가 살인을 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너무 없다. 거짓말 탐지기를 제외하면 특히. 첫 공판에서 고진이 이 거짓말 탐지기 기록을 증거에서 빼달라고 한다. 검사의 물적 증거는 더 없어진다. 이때 검사가 국민참여재판을 요청한다. 배심원 제도다. 이제 검찰과 변호사의 싸움이 시작한다.

 

총 네 번의 법정 장면이 나온다. 각 공판이 상당히 긴 분량을 차지한다. 이 공판들은 판사의 역할은 거의 없다. 배심원 제도로 넘어갈 때 더 분명해진다. 물론 존 그리샴의 소설을 자주 읽은 독자라면 이때도 판사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간단한 중재와 조정만 할 뿐이다. 피고인을 유죄로 만들기 위해 비열한 수단도 주저하지 않는 검사와 성의없는 변론이지만 핵심을 파고는 변호사의 대결이 이어진다. 고진을 응원해서인지 왠지 모르게 검사의 비열함에 분노를 느낀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검사를 그렇게 만든 것인지, 아니면 실제 법정에서 이런 검사를 많이 본 것 때문에 이런 인물을 등장시킨 것인지 의문이다.

 

변호사지만 탐정의 역할을 더 잘하는 고진의 이번 활약도 결국엔 탐정으로 끝난다. 멋진 법정 드라마로 마무리하기에는 기본 설정 자체가 너무 허술하다. 증거가 범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진범이 필요한 상황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보여준 법정 드라마는 재밌다. 그리샴의 몰입도까지는 아니지만 각각 다른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는 대결은 흥미진진하다. 어쩌면 이것이 진짜 법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 공판 사이를 채우는 것은 명진과 그 선배들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다. 그 사이에 조용히 흘러나오는 숨겨진 감정은 이 사건 해결의 단서다.

 

제목을 읽으면서 김명진의 무죄를 예상했다. 물론 반전이 펼쳐질 수도 있다. 악마가 누굴까 생각하면 진범일 것이란 단순한 추측이 가능하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하지만 금방 그가 악마가 아님을 안다. 악마의 정체가 드러날 때 이 법정이 끝나야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어떻게 보면 과유불급 같다. 고진의 변론이 너무 길고 정확해서 오히려 진정성이 떨어진다. 그 열정과 의지와 의도는 개인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만들 수 있지만 나에게는 그랬다. 법정에서 모든 것을 마무리한 것은 좋은데 그 트릭이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 어디서 본 듯한 것이랄까? 그럼에도 잘 쓴 법정극을 보기 힘든 한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아주 반갑고 멋지다. 옛 기억과 추억을 불러오는 몇 가지 설정들이 지금도 강한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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