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계획
발렝탕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발렝탕은 기욤 뮈소의 동생이다. 동생이라고 하지만 그의 글은 형과 완전히 다르다. 같은 점도 있다. 간결한 묘사와 빠른 장면 전환으로 속도감을 높여 잘 읽힌다는 것이다. 기욤 뮈소의 글이 로맨스에 더 치중했다면 발렝탕은 스릴러에 더 가깝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이 작품은 심리 스릴러다. 결말을 말하면 절대 안 되는 설정과 전개다. 소설을 읽으면서 어색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완벽한 계획이란 반전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이와 같은 소설을 이전에도 본 적이 있는데 한 번 읽었기 때문인지 조금은 관대해졌다.

 

친구를 얼마나 알고 있지? 이 물음은 도발적이다. 예전에는 잘 안다고 했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잘 모른다는 답을 하게 되었다. 내가 변하는 것만큼 친구도 변하고, 주변 환경들이 심하게 바뀌면서 어쩔 수 없이 사이를 멀어지게 되었다. 친구 사이라고 시간과 환경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평생 갈 수는 없다. 이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내가 변하지 않으려고 해도 주변 상황이 나를 혹은 그를 변하게 만든다. 가끔 혼자 과거를 추억하다보면 이런 저런 이유로 연락조차 잘 하지 않는 친구들이 생각난다. 다른 친구들을 만나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그 자리에 없는 친구들의 이름이 튀어나온다. 이 친구들에 대한 나의 기억은 현재의 것이 아닌 과거의 것이다. 이 소설도 바로 과거의 한 사건에서 모든 문제가 생긴다.

 

차가 달리다가 안전띠를 잠시 푼 여자가 차 사고로 죽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작가는 말한다. 이 죽음이 시작이고 여러 죽음을 몰고 올 것이라고. 무시무시한 살인 예고다. 그리고 금요일 첫날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테오는 여자 친구 도르테와 함께 피레네 산맥의 한 산장으로 놀러온다. 이들을 초대한 것은 한때 친했던 친구였던 로뮈알이다. 이 둘은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 이때 테오를 초대한 것이다. 그 당시 친구였던 다비드도 여자 친구 쥘리에트와 함께 왔다. 초대한 이유는 다같이 등산을 하자는 것이다. 십 년만에 만난 친구의 초대를 너무 순순히 허락한다. 뭔가 있는데 아직 그 실체가 나오지 않고 있다. 첫날밤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간다.

 

둘째 날 이들은 산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들을 인솔하는 사람은 로뮈알이다. 그가 짠 계획대로 산을 탈 예정이다. 로뮈알을 제외하면 다들 등산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산의 무서움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의욕적으로 출발한다. 이제 이야기는 두 갈래로 진행된다. 하나는 현실의 등산이고, 다른 하나는 이 등산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의도를 설명하기 위한 과거다. 현실은 언제 사건이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을 계속 유지한다면 과거는 이들의 관계를, 왜 이런 계획을 세웠는지, 로뮈알의 과거 삶이 어떠했는지 잘 알려준다. 그중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로뮈알의 출신과 테오와의 만남으로 인한 삶의 추락이다.

 

로뮈알은 혼혈에 가장 위험한 아파트에서 산다. 하지만 그에게는 공부에 대한 재능이 있다. 프랑스 상위 대학에 갈 수 있는 학교인 프레파에 입학할 정도다. 수학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다. 이것이 부자집 아들 테오의 시선을 끈다. 가난하지만 성공에 대한 열정이 있던 로뮈알에게 테오는 독약과도 같은 존재다. 그가 살던 곳에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마약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그에게 마약을 경험하게 만든다. 술에 취하게 만든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풍요와 친구 때문에 그의 이성은 점점 사그라진다. 그가 성공할 수 있는 기회도 같이 사라진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친구들과 그는 시작점부터 다르다. 잠시 이 사실을 잊고 있었다.

 

산행이 로뮈알의 실수처럼 포장된 계획에 의해 점점 더 힘들어진다. 비가 내리자 허둥지둥 동굴을 찾아 비를 피한다. 제대로 산행 준비도 하지 않아 험한 산길에서 어떤 위험을 경험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위험한 것은 로뮈알이 계획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읽으면서 머릿속은 빠르게 회전한다. 어떤 계획을 세웠고, 이 계획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하고. 그런데 이 산행의 속도와 더불어 테오와 함께 하면서 즐거웠던 그 시절을 같이 다루면서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게 된다. 순간적으로 이 소설의 장르를 잊었다. 노련한 구성과 진행이다.

 

읽으면서 어색하게 다가오는 것이 있다. 시점이다. 테오의 독백과 대비되는 로뮈알에 대한 삼인칭 설명은 어떤 의도인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다. 세밀하게 읽지 않으면, 혹은 대담한 발상을 하지 않으면 이 시점이 의도하는 바를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물론 이 산행에서 로뮈알이 계획하고 있는 바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분명해진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과거가 현재로 다가오면서 사실이 하나씩 밝혀지고, 모든 사건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내가 예상할 수 있는 평범한 마무리에서 한 발 더 나가 거대한 반전을 완벽한 설정 속에 펼쳐놓았다. 그리고 다시 예상하지 못한 마지막 장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