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초상 - 수난과 방랑이 그들을 인도할 것이다
함규진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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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했을 때 기대한 것과 많이 다른 내용이다. 유대인에 대한 역사, 정치, 사회, 문화적 분석을 기대했는데 실제 내용은 20세기 각 분야에서 세계를 뒤흔든 21명의 유대인들의 삶과 업적을 간결하게 요약하고 있다. 책머리에서 우리가 가진 유대인에 대한 환상이나 왜곡된 시선을 잠시 말하기에 그런 내용이 아닐까하고 너무 쉽게 판단했던 것이다. 유대인식 교육과 유대인 모두가 천재라는 신화 등이 대표적이다. 한때 한국인들이 미국에서 수학을 잘하고, 사업에서 성공하는 것을 보고 세계에서 유대인 다음으로 똑똑한 민족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그런 미신과 신화 등을 산산조각 내는 글을 기대한 것인데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바로 여기서 다룬 21명의 유대인들의 삶이다. 그들이 모두 유대인식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면서 어디에서 시작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신화를 깨트린다. 하지만 이 속에는 저자도 말했듯이 20세기는 유대인의 세기라는 표현으로 다시 유대인에 대한 경외감을 살짝 드러낸다.

 

21명의 유대인 중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 몇 명 있다. 한두 번 정도 다른 책에서 봤을 테지만 대중적인 인지도는 떨어지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과 업적을 읽고 있으면 왜 저자가 이 유대인을 이 목록에 넣고 설명하게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몰랐지만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칼 폴라니다. 그의 이론을 간략하게 소개한 글에서 신자유주의 문제점을 가장 적나라하게 묘사한 부분을 읽었기 때문이다. “국가는 그런 시장 지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호위병으로 호출되었다. 이런 체제는 필연적으로 인간을 소외시키고, 사회를 붕괴시킨다.”(264쪽)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부를 지키기 위해 국가와 법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또는 하고 있는지 요즘처럼 잘 보여주는 시절에 이 문장이 강하게 마음에 와 닿은 것이다.

 

저자는 21명의 유대인을 여덟 분야로 나눠 적게는 2명, 많게는 다섯 명씩 설명하고 있다. 혁명가들, 정신분석가들, 사상가들, 과학자들, 정치학자들, 경제·경영학자들, 예술가들, 현대의 예언자들 등이다. 첫 장인 저항의 초상에 들려준 트로츠키의 삶과 철학은 이제까지 알고 있던 것을 넘어선 것이자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러시아 혁명의 실체를 조금은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옘마 골드만은 20세기 초 사회에서 한 유대여성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녀의 통찰력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잘 보여준다. 이렇게 기존에 알고 있던 위인은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전해주었고, 예전에 몰랐던 인물들은 나의 인식의 폭을 넓혀주었다. 덕분에 공부할 것이 더 늘어났다.

 

한 인물을 이렇게 짧은 글 속에서 제대로 평가한다는 것은 사실 무리다. 상대적인 균형감을 가지고 반론도 같이 다룬다고 하지만 서술에서 한 시각이 뼈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인물의 철학과 업적을 요약하고, 그가 왜 그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것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런 작업이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을 때는 조금 달라진다. 바로 여기서 이 책의 기획 의도가 드러나는 것이다. 20세기와 유대인이라는 공통점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던 신화가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물론 이것을 좀더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공통점을 수난과 방황이란 부분에 초점을 두고 풀어낸다. 더불어 각 분야에서 엄청난 성공을 한 유대인들을 뽑아냄으로써 20세기는 유대인의 세기라는 부분을 좀더 강하게 부각시킨다.

 

20세기는 기존의 시대와 분명히 다른 세기다. 기존의 가치관이 무너지고, 새로운 경제체제가 실험되어지고, 과학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발전한 시대가 바로 20세기다. 이 속에서 유대인들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통계적으로 분석한 자료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이것이 분석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인물들은 유대인에 대한 강한 환상을 심어주기 충분한 업적을 쌓았다. 교묘하게 왜곡된 정보를, 혹은 생략된 정보를 통해 유대인에 대한 환상을 쌓기에 충분하다. 단순 나열과 연결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그래서 저자는 한 인물을 설명할 때 그(녀)가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는지 꼭 설명하고 지나간다. 유대인의 정체성도 반드시 짚고 넘어간다. 그리고 그들의 철학과 업적을 잘 요약해서 상식을 쌓기 좋게 만든다. 더 공부하려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도전과제를 던져준다. 기대와 다르지만 다른 내용으로 나를 만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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