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라말라를 보았다 - 팔레스타인 시인이 쓴 귀향의 기록 후마니타스의 문학
무리드 바르구티 지음, 구정은 옮김 / 후마니타스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팔레스타인에 대한 첫 기억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뉴스에 나온 것들이 대부분 테러와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가 보여준 테러는 이 단체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나쁜 선입견을 가지게 만들었다. 어릴 때 뉴스를 그냥 받아들이던 시절이라 화면 너머에 어떤 삶이, 사실이 있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67년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적은 군사로 아랍 연합군을 무찔렀다는 사실을 선생들이 알려주었을 때 나는 감탄사를 터트리고 이스라엘 군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의 수준이 그랬다. 물론 선생들의 수준도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는 사실 쉽지 않다. 단순하게 보면 잘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유대인들이 구약을 앞세워 좇아낸 것이다. 착하거나 멍청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실수였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편파적으로 단순화한 것이다. 이 지역과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은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으로 아주 복잡하게 엮여 있다. 이 문제를 모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현재 나에게는 없다. 그렇다고 제대로 공부한 적도 없다. 단지 파편적으로 정보를 얻고 지식을 쌓을 뿐이다. 이 책도 그런 종류 중 하나다.

 

시인이자 작가인 무리드는 이집트 유학 중에 67년 중동전쟁이 벌어지면서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된다. 아랍 연합군이 패배하면서 그는 갈 곳을 잃었다. 그의 여권은 나라 없는 사람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다. 그와 같은 사람들을 나지힌, 즉 추방된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이 나지힌들은 팔레스타인 귀국을 꿈꾼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수백 명의 노인들에게는 귀국을 허가했지만 수십만 명의 젊은 사람들은 들여보내지 않았다. 시인도 30년이 지난 후에야 겨우 팔레스타인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을 바로 그 귀국을 통해 바라본 팔레스타인과 귀국을 바라며 사는 동안 그가 겪었고 아파했던 일들에 대한 기록이다. 시인은 이것을 상대적으로 냉정하고 담담하게 말하지만 그 속에는 조용히 분노가 흐르고 있다.

 

나라 없는 사람의 서러움은 이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집트가 이스라엘 측에 붙었을 때 그는 이집트인 아내와 헤어져야 했다. 추방당한 것이다. 그는 말한다. “추방은 항상 다층적이다. 추방은 당신 주변을 에워싼 뒤 원을 닫아버린다. 아무리 달려 봐도 원은 당신을 에워싸고 있다.” 현재 우리가 너무 쉽게 넘나드는 국경을 그는 아주 힘겹게 넘어야 한다. 입국 허가가 떨어지기 전에는 결코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시인으로써의 그의 인지도가 높아져도 이것은 변함없다. 유럽의 여러 나라를 전전하고, 자신의 물건을 가질 수도 없다. 어렵게 키운 화분조차 가지고 다닐 수 없는 삶이 항상 그를 기다리고 있다.

 

라말라. 처음에는 어떤 곳인지 몰랐다. 검색하니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임시 행정수도라고 나온다. 자신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조차 금지된 나지힌의 삶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아직 이것을 표현하기에는 나의 내공이 부족하다. 그리고 그가 본 라말라의 모습은 30년 전과 별 차이가 없다. 세월의 흐름 속에 변함없이 옛날 그대로 머물러 있다. 발전이나 변화라고는 없는 도시가 된 것이다. 신문은 고사하고 서점조차 없을 정도로 이곳은 외부와 단절되어 있다. 책을 갈망하는 그들을 보면서 우리가 누리는 풍족함이 오히려 어색할 정도다.

 

정치적인 문제가 곳곳에 나온다. 어쩔 수 없다. 정치를 빼고 팔레스타인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름이 나오는데 주석을 보면 암살당한 사람들이 엄청나다. 예전에 스파이영화를 보고 통쾌하게 생각했던 인물들 중 몇 명이나 이 속에 포함되어 있을까? 격리, 파괴, 학살이란 단어들이 피와 함께 곳곳에서 흘러넘친다. 단지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을 뿐이지 사건이나 사람들에게서 그 흔적과 역사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책의 경우는 주석이 그 역할을 맡았지만.

 

이 책은 팔레스타인을 다룬 다른 소설과 접근법을 달리한다. 감상적이거나 자극적인 상황을 연출하지 않고 나지힌의 귀향에서 받은 감상과 느낌에 충실하다. 귀향의 기록이란 표현이 딱 맞다. 중동 문제를 읽을 때면 점점 이스라엘의 반대 편에 서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데 개인적으로 작가가 말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동정과 달랐으면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도 우리를 동정하는 이들이 있지만, 우리가 이렇게 된 ‘이유’와 우리의 이야기에 공감하기는 힘든 것 같다. 그들이 느끼는 것은 패자를 바라보는 승자의 연민이다.” 그리고 시인은 솔직하게 말한다. 그들이 힘에서 밀렸다고. 낯선 아랍 이름들 때문에 조금 힘들게 읽었지만 생각할 거리도 배운 것도 많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