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십이국기 1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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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국기>를 처음 본 것은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재미있다는 말에 그냥 봤다. 처음은 낯설었지만 어느 순간 다음 이야기에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의문이 생겼다. 왜 갑자기 주인공이 바뀌었지? 하고. 이 시리즈의 설정을 잘 몰랐기에 생긴 오해다. 그후 이 시리즈가 다른 출판사에서 한 권씩 출간되었다. 몇 권 사놓았다. 애니가 재미있었기에. 하지만 늘 그렇듯이 영화나 애니 등으로 먼저 본 원작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기억이 조금 흐려졌을 때까지 읽지 않는다. 애니로 본 시리즈 다음이 궁금했지만 원작과의 차이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기도 그랬다. 그렇게 <십이국기>의 몇 권은 책 더미 속에 묻혔다. 절판된 것도 모른 채.

 

애니로 잘 만들어졌다고 해도 결코 채울 수 없는 몇 가지가 있다. 물론 애니가 보여줄 수 있는 장점도 많다. 애니의 장점 하나를 먼저 꼽는다면 책을 읽을 때 머릿속에서 쉽게 요마들의 이미지가 만들어지지 않는데 바로 볼 수 있다. 자막으로 요마의 이름을 표기한 것이다. 이것이 이 시리즈의 마니아들에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그러나 나처럼 소설을 읽으면서 읽는 속도에 비해 이미지가 금방 만들어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그 이미지가 애니메이터에 의해 고정되는 것은 아쉬운 일지만. 애니의 단점은 섬세한 심리 묘사나 설명이 생략되거나 불가능한 것이다. 애니를 본 지 오래되어 요코의 감정 변화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 부분의 비교는 직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나의 저질 기억 때문에.

 

애니로 먼저 봤기에 책을 읽으면서 원작의 이미지가 계속 떠올랐다. 부정확한 기억은 하나의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어떻게 되었는지 정확한 결과를 모호하게 만들고, 어느 장면에서는 애니의 한 장면이 뿌옇게 떠오르기도 했다.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 애니의 이미지가 제대로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원피스>처럼 원작을 따라 계속 시리즈가 애니로 만들어지기를 바랐다. 전체가 아니라면 시리즈 중 한두 편이라도 더. 워낙 대작이다보니 애니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은하영웅전설>이 애니로 모두 나왔던 것을 생각하고, <원피스> 등을 감안하면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방대한 이야기의 도입부가 되는 이번 편은 이 시리즈를 이해하고, 세계관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평범한 여고생 요코는 갑자기 나타난 청년 게이키에 의해 다른 세계로 옮겨온다. 꿈속에서 며칠째 그녀를 괴롭혔던 존재들이 현실에 등장한 것이다. 정확한 설명도 없이 그는 그녀를 데리고 달아난다.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사랑의 도피처럼 보이는 모습이다. 이런 그녀를 데리고 달아나려고 했다면 안전하게 모셔야 할 텐데 적들의 공격에 그녀는 낯선 곳에 홀로 떨어진다. 그 곳은 교국이다. 이 나라는 허해를 건너온 이방인인 해객을 우대하는 곳이 아니다. 그녀의 낯선 옷과 모습은 바로 해객임을 말해준다. 그녀를 잡은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현청으로 옮기려고 한다. 이때 요마들이 이들을 공격한다. 게이키가 준 검으로 요마들의 공격을 물리친다. 달아난다. 이제 그녀의 힘겨운 행로가 시작한다.

 

이번 이야기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요코가 한 명의 왕으로 성장하기 위한 초석을 닦는 것이다. 낯선 세계로 와서 그녀는 자신을 팔려고 하는 사람의 의도를 선의라고 믿기도 하고, 자신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한 노인의 눈물나는 이야기에 끌리지만 가진 돈을 털릴 뿐이다. 여기에 해객을 잡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 굶주림은 그녀의 또 다른 적이다. 여기에 낮 동안 계속되는 요마들의 공격은 그녀를 한계까지 몰아간다. 검의 빛을 통해 자신이 떠난 후 집이나 학교의 모습을 보지만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강하게 만들뿐이다. 그리고 가장 큰 적인 정체를 알 수 없는 원숭이가 계속해서 그녀를 충돌질한다. 자살하라고, 죽이라고, 믿지 말라고. 심리적인 갈등은 점점 커지고,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진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불만이 하나 있다. 그것은 십이국기의 세계에 한국은 없다는 것이다. 가끔 일본 판타지를 읽을 때면 중국만 나오지 한국은 존재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한국이 워낙 작은 나라라 의미가 없는 것인지. 그리고 이 낯선 세계의 풍경을 일본과 중국의 혼합으로 그려낸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것은 이 재밌는 책에 대해 가지는 조그만 불만이다. 가끔 조선의 술법으로 귀신이나 악마를 부리는 것이 나오는 것보다는 낫다. 부정확한 기억이지만 <시귀>에서 보여준 치밀하고 압축된 세계와 밀도 있는 문장이 이번에는 좀 약한 것 같다. 방대한 세계관과 다양한 주인공들을 내세워야 하는 한계 때문인지, 아니면 간결한 문장으로 속도감 있게 풀어내려고 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제 요코와 열두 나라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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