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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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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천명관의 소설을 읽었다. 우연히 <고래>를 사놓았지만 묵혀두었고, 이 책을 빌려 읽은 사람이 재미있다고 했지만 왠지 손이 가질 않았다. 다른 책도 역시 사놓았지만 책장 한 곳에 그냥 조용히 모셔만 두고 있다. 책장에서 <고래>를 볼 때면 언제 시간내서 읽어야지 생각하지만 늘 우선순위가 뒤로 밀린다. 바로 옆에 쌓아둔 책들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소설의 경우 제목을 읽고 소설이란 생각조차 못했다. 천명관이란 작가가 쓴 소설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한 번 더 유심히 쳐다보았겠지만 제목이 노동소설의 분위기가 풍겨 그냥 지나갔다. 하지만 읽어야 할 것은 어떻게든 오는 모양이다.

 

모두 여덟 편이 실린 단편집이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문학잡지에 실린 글들을 모았다. 요즘 단편집에서 발표지면이 표시되는 경우가 흔하지 않는데 이 책은 그 정보가 실려있다. 반가웠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이런 정보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책을 읽다보면 어디에, 언제 실린 글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책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발표 순서도 어떤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가장 최근작인 <핑크>가 2014년 6월호 문학사상에 발표되었는데 이 작품의 마지막 한 문장이 그의 이력에서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다른 시도를 위한 시발점인지 궁금하다. 어쩌면 나의 단순한 착각과 무지와 기대일 수 있지만.

 

이 단편집에서 단편소설을 한 편씩 읽을 때 나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단어가 있다. ‘파국’이다. 특히 표제작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와 <전원교향곡>을 읽을 때 더 그랬다. 마지막에 그들이 선택한 삶이 이성대신 감정의 분출로 이어지면서 내일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노가다로 하루 일당을 벌어먹고, 때린 아내로부터 이혼 당하고, 아이들과 대화조차 없는 일상이 이어지는 와중에 술 한 잔의 만용이 만들어낸 40만원의 빚 독촉은 냉동칠면조를 흉기처럼 휘두르게 만든다. 훔친 벤츠트럭을 타고 달리는 그의 모습은 제목 그대로다. 반면에 귀촌의 환상을 마구 파괴하는 <전원교향곡>의 마지막 장면은 파산과 함께 자신이 가진 유일한 자산이자 희망마저 빼앗아간 것에 대한 우발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이 눈에 들어온다. 외형은 복수지만 실제는 자기파괴다.

 

비루한 가장의 죽음을 환상적으로 표현한 <봄, 사자의 서>가 약간 밋밋했다면 <동백꽃>은 조그만 섬마을에서 벌어지는 치정싸움이 웃기면서도 애잔하다. <왕들의 무덤>은 중년 여작가의 거짓과 허위와 허세 뒤에 감쳐진 메마른 감성이 과거의 사건 속에 조용히 흘러나왔고, 불면에 시달리는 한 편집자의 중의적인 마무리가 인상적인 <파충류의 밤>은 나 자신이 가진 경험과 인식의 한계를 산산조각낸다. <우이동의 봄>은 90년대 초반 힘겹게 산 한 청년의 에피소드들이 작가의 앞날처럼 꽃비가 내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핑크>에서는 대리기사의 불편한 진실이 마지막 한 문장으로 엮여지면서 섬뜩하게 만든다.

 

많지 않은 분량에 엄숙하지 않은 발랄한 문장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금방 익숙해졌다. 각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간결하면서도 잘 짠 구성으로 하나씩 풀어내면서 몰입하게 만든다. 시나리오 작가의 이력이 힘을 발휘한 것일까?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에 머물고 살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전면에 등장시켜 삶의 다른 한 면을 돌아보게 한다. 일상생활에서 그냥 스쳐지나갔거나 혹은 스쳐지나간 나의 모습들이다. 파국으로 달려가든 삶의 의지를 새롭게 다지든 속내를 감추든 그들은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이다. 나 또한 그렇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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