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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1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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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에밀 졸라의 소설을 두 권 읽었다. <목로주점>과 <나나>로 기억한다. 이 두 작품은 단지 읽었을 뿐이다. 그 당시 그 어떤 감흥도 충격도 큰 재미도 나에게 주지 못했다. 읽었던 이유는 바로 세계문학에 포함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내가 새롭게 번역되어 나온 <제르미날>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영화 포스터를 표지로 한 구판 <제르미날>을 사놓고 한 번도 제대로 펼쳐보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산 것도 아마 에밀 졸라라는 작가 이름에 대한 막연한 환상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지금 이전까지 작가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나의 모든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고, 루공마카르 총서에 관심이 갑자기 높아졌다. 내가 놓친 것들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목로주점> 속 주인공의 아들 에티엔이다. 그는 불황기에 일을 찾아 이동하던 중 몽수 지역 탄광촌까지 오게 된다. 그는 술을 마시고 작업반장을 폭행한 후 회사에서 잘렸다. 살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해야 한다. 불황기에 일자리는 귀하다. 탄광촌도 감산을 하고, 해고를 해야 할 정도다. 하지만 그가 르 보뢰 탄광을 방문했을 당시 운 좋게 한 명의 탄차운반부가 죽어 일자리가 생긴다. 하루 일당이라도 벌어서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을 하면서 지옥 같은 탄광 갱도 속으로 들어간다. 이것이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마외 가족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에티엔이 외부에서 탄광촌으로 유입된 인물이라면 마외 가족은 태생적인 광부 가족이다. 할아버지 이전부터 시작하여 현재의 아이들까지 모두 이 탄광촌에서 나서 자라고 일한다. 본모르는 지금 당장 연금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일했고, 마외는 탄맥 중 하나를 입찰로 받아서 실적으로 일당을 받는다. 그의 아내 라 마외드는 아이를 일곱이나 낳아서 집에 거주할 수밖에 없다. 큰 아들 자샤리와 큰 딸 카트린과 둘째 아들 장랭은 탄광에서 일하는데 이들이 번 돈이 없다면 이 가족은 제대로 먹고 살 수가 없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자본가들이 점점 그들의 일당을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배경 중 하나인 파업도 바로 이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놀라운 것은 자본가들이 어느 정도 파업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에밀 졸라는 단순히 에티엔과 마외 가족뿐만 아니라 이 탄광 지역과 관련되어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등장시킨다. 단순히 등장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 각자에게 개성을 부여하고,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조상이 탄광회사 지분을 산 덕분에 편하게 살고 있는 그레구아르 가족이나 탄광회사 사장인 엔보 씨, 카트린의 첫남자이자 연인인 샤발, 가게를 운영하면서 외상을 주고 그 대가로 여자들과 자는 메그라, 탄광에서 해고당한 후 주점을 하는 라스뇌르, 바쿠닌을 숭배하는 러시아 무정부주의자 수바린, 그 외 240번 탄광촌의 수많은 사람들을 포함한 다양한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움직이면서 소설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초반 탄광에 대한 사실적이고 세밀한 묘사를 지난 후 몰입도가 높아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인물들 때문이다.

 

에티엔이 탄광에 머물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카트린이다. 처음 그는 그녀를 남자로 생각했다. 카트린도 초보인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일을 가르치고 도와준다. 이때만 해도 이 둘의 로맨스가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시대 하층민의 삶은 우리의 예상을 뒤집는다. 카트린의 노린 샤발이 계속 그녀를 집적이다가 어느 날 밤 그녀를 덮친다. 이제 겨우 열다섯 살인 그녀가 성적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한 번의 성관계는 이 둘을 연인으로 묶어준다. 한 번 정도 에티엔에게도 그녀에게 키스를 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놓쳤다. 이 선택이 서로 바라지만 둘이 함께 할 수 없게 만든다. 이 둘의 간절한 바람은 소설 끝까지 이어지면서 이 잿빛 소설에 한 줄기 따스함을 전해준다.

 

작가가 보여주는 탄광촌의 삶은 아주 힘들고 고되다. 일할 수 있는 나이만 되면 아이들도 탄광으로 가서 일한다. 그들도 하나의 노동력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성 관계가 벌어지고, 임신도 빈번하다. 아들을 가진 엄마는 아들이 결혼해서 집에 돈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 같아 걱정한다. 딸도 마찬가지다. 가족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돈이 필요하다. 회사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하고, 노동자는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 악순환은 이들에게 생존을 제외한 어떤 것도 생각할 시간도 여유도 주지 않는다. 이때 나타난 에티엔은 혼자 살아 돈에 여유가 있고, 사회과학에 막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때다. 그의 학습이 깊어질 때 탄광촌의 모순과 부조리가 눈에 들어오고, 사람들도 그의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르 보뢰 탄광은 의도적으로 파업을 유도한다. 공제조합이 만들어졌지만 파업을 위한 충분한 기금을 마련하지 못했다. 생존을 위해 파업을 할 때만 해도 그들 중 누구도 이것이 이렇게 길어질지 생각하지 못했다. 기금이 바닥나고, 다른 곳의 지원도 끊겼을 때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집에 있는 물건을 팔아 빵을 사는 것이다. 그들이 거대한 물결로 움직일 때 구호가 ‘빵을 달라!’로 바뀐 것은 바로 그 절박감의 표출이다. 이 구호에 대해 아내의 외도로 괴로워하는 엔보 씨가 보인 반응은 배부른 부르조아에게 당연한 것이다. 프랑스 혁명 시 마리 앙투아네트가 한 말이 연상되었다. 그 외 다른 자산가들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보는 현실은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이들의 파업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약했다. 어느 부분에서는 더 강했다. 약한 것은 헌병과 경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행동의 제약이 심했고,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강한 충돌이나 파괴가 없었다는 것이다. 더 강한 것은 예상을 넘어선 기간 동안 파업을 이어가면서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킨 것이다. 하지만 시간과의 싸움은 늘 자본가 편이다. 하루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노동자들이 긴 시간을 버티기 위해서는 경제력이 버텨줘야 하는데 그들에게는 돈이 없다. 돈이 없으면 굶주릴 수밖에 없다. 배고픔은 의지를 나약하게 만든다. 이 순간에도 그들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의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실제 그 당시 파업의 모습이라고 하는데 약간은 의외다. 그것은 프랑스 대혁명의 강한 인상 때문이다.

 

에밀 졸라는 사실적이면서 현실적으로 이 모든 상황을 적어나간다. 그의 치밀한 관찰은 놀라운 묘사로 이어졌고, 감정을 극도로 절제한 문장들은 현실을 가장 멋지게 그려내었다. 에티엔이 허영심에 조금씩 물들어가는 과정이나 그가 절제되지 못한 군중의 흐름 속에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나 군중들이 공권력 앞에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등의 이 모든 것들이 각 인물들의 생동감 있는 묘사 속에서 꽃을 피운다. 탄광 노동자들의 열망이 불꽃처럼 타오르고, 악에 바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극렬하게 움직일 때 인간들의 가장 순수한 욕망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리고 다양한 위치의 다양한 의견이 그 시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대단한 소설이다. 일독을 권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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