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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정말 오랜만에 쿤데라의 소설을 읽었다. 14년 만의 장편이라고 하지만 이상하게 그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다. 그 사이에 그의 소설이 새롭게 번역되어 나왔고, 서점에서 자주 보았기 때문에 더 그런지 모르겠다. 그의 장편을 읽을 때면 늘 무슨 내용인지 알지 못하면서 빠져들고는 했다.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다. 읽으면서 분량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나오고, 그들이 풀어내는 수많은 이야기 파편들이 좀처럼 하나의 흐름으로 꿰지지 않았다. 그런데 각 이야기에 빠져든다. 분량이 적어 단숨에 읽었지만 몇 가지 의문과 생략된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1장에서 주인공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한 명인 알랭이 여자들의 배꼽티를 보면서 사색에 잠긴다. 여성 매력의 중심이 가슴도 엉덩이도 허벅지도 아닌 배꼽으로 옮겨가는 현실을 간략하게 풀어낸다. 이 순간 뭐지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배꼽 패티시인가? 그런데 이 배꼽에 대한 이야기가 마지막에서 다시 반복된다. 배꼽은 배꼽을 지닌 여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고, 그 여자가 아닌 태아에 대해 말한다고. 이어서 우리가 배꼽의 징후 아래에서 단 하나의 의미,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한 섹사의 전사들이고 말한다. 이때 배꼽과 태아는 연결되고, 알랭의 탄생을 둘러싼 과거가 배꼽의 탯줄과 이어지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마지막 장에서 작가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147쪽)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을 무의미란 이름으로 부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147쪽)라고 주장한다. 사실 이 문장들을 읽으면서 뭔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 정확한 실체를 붙잡지 못했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를 계속 놓치고 있다. 아마 어느 날 갑자기 이 무의미에 대한 답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무의미의 정의나 의미를 모르지만 24마리의 자고새 이야기는 재미있었고, 의미심장했다. 스탈린의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짓말이라고 뒤에서 욕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 편의 유쾌한 블랙코미디 같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인형극으로 이것을 제작하고 싶다고 했을 때 과연 어떻게 살을 붙여 한 시간 이상을 끌고 나갈지 궁금했다. 그리고 농담을 유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정확하게 깨닫게 되었다. 현재 한국도 유머나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점차 사회가 경직되고 있는데 그들은 과연 이 스탈린 고사를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이를 낙태하려고 강에 뛰어들었다가 본능에 의해 수영하고, 그녀를 구하려는 남자를 오히려 죽이게 되는 이야기는 섬뜩하면서 묘했다. 이 이야기가 갑자기 다른 장면으로 전환되는 부분에서 뜬금없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것이 번역 상 오류인지 아니면 비약적 전환을 의도한 연출인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칼라방이 파티에서 파키스탄 사람인 것처럼 연극하면서 가짜 파키스탄 말을 사용하는 설정을 만들어 포르투갈 여자와 이상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한 편의 희극을 보는 느낌이었다. 서로 다른 말을 사용해도 의미도 통하는 그 장면은 어느 순간에는 언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모든 일에서 무엇인가 의미를 발견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회. 이 사회에서 농담은 거짓말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사람들의 사고는 경직될 수밖에 없다. 이때 수많은 사람들이 펼치는 축제의 장은 그 속에서 누구도 어떤 특별한 의미를 찾지 않는다. 출연 계약도 없는 배우들이 공연하고, 연극 무대조차 필요 없는 사람들의 공연. 이것은 말 그대로 무의미의 축제다. 어쩌면 작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그냥 풀어내면서 삶의 의미가 아닌 삶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의미를 찾는다고 소비하는 삶의 무의미함을 보여주는 역설인지도 모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