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쓴 인생론
박목월 지음 / 강이북스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청록파 시인 박목월에 대한 나의 무지를 먼저 말하고 싶다. 왜인지 모르지만 늘 <목마와 숙녀>를 쓴 박인환 시인과 헷갈려한다. 한때 이 시가 유행했던 적이 있는데 친구들이 상당히 많이 외우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어디에선가 혼선이 생겨 이런 착각을 만든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문제가 잘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억 어딘가 심하게 각인되어 계속 이런 착각을 만들 모양이다. 어쩌면 이번 수필이 하나의 치유 방법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러기에는 이 수필집이 나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많지 않은 분량에 수필집이란 것을 감안했을 때 그냥 들고 읽기 시작하면 금방 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두 편의 수필을 읽고 시대의 벽을 느끼면서 예상이 깨지지 시작했다. 부부의 대화에서 아내와 남편의 변을 공들여 썼는데 이것이 지금 이 시대와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처음 이 수필집이 나왔을 당시에는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최소한 지금은 아니다. 실제 이 두 부부의 삶이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나의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을 보았을 때와 너무 맞지 않아 이상론을 펼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거기에 시와 달리 약간 늘어지는 문장은 빠르게 집중하는 것을 방해했다.

 

모두 읽은 후 다시 차례를 펼쳐보니 상당히 관념적인 제목들이 많이 보인다. 이 글을 위해 그가 가장 많이 인용하는 두 명의 작가가 있다. 헤세와 릴케다. 한때 즐겨 읽었던 헤세의 문장을 인용해서 그의 논리를 펼쳐낼 때 더 집중해야 하는데 왠지 나와 궁합이 맞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릴케의 경우는 제대로 읽은 적이 없으니 통과. 그리고 가끔 톨스토이를 인용하는데 처음에는 뭐지 하는 느낌이었다가 모든 이야기가 다 나왔을 때 삶과 시간에 대해 또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가끔 이런 글들을 볼 때 시인의 시각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다른 면을 살짝 들여다보는 흥분을 느낀다.

 

차례만 보면 두 번씩 다루는 소재가 둘 있다. 하나는 고독이고, 다른 하나는 행복이다. 사랑의 경우는 더 많지만 현 세태와 맞지 않는 듯하고, 아니면 현재까지도 불변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라 특별히 신선함이 없다. 반면에 고독은 나의 이십 대를 뒤흔들었고, 지금도 가끔 그 고독에서 얻은 흔적을 가끔 떠올리면서 현재의 과잉을 꺼려한다. 고독을 병이라고 했지만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그가 얻은 과실들을 볼 때면 삶의 다른 면 속에서 깊이와 풍성함을 경험하게 된다. 여기서 인용된 헤세와 릴케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행복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다. 시인의 행복과 우리의 행복은 다르다. 일상에서 발견한 행복을 그려낼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행복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라고 할 때 그 빤한 수사가 가슴 한 곳에 콕 박힌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집짓기의 괴로움에서 시작했다는 것은 미숙한 경험에 대한 반성처럼 보인다. 실제 일상에서 나도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는 미숙함과 주저함에서 비롯한다. 여기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의 삶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그 시대 여성 신자들의 삶의 한 면을 바라보게 되었다.

 

개인의 취향에 맞지 않은 글이 많았지만 청록파 시인들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소개한 글은 반갑고 재미있었다. 학창 시절 암기용으로 외웠던 청록파에 대한 정보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라졌지만 이름만은 아직도 남아있다. 이 반가운 이름과 더불어 그 시절 시인들의 삶을 살짝 풀어내었을 때, 지금과 변함없는 문단의 비리 등을 토로할 때 순간적으로 더 집중했다. 현재와 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독서의 즐거움에 대한 글은 나도 공감하는 바다.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베스트셀러나 필독선들 대부분이 책 읽는 즐거움을 빼앗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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