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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사람
이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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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란 이름은 기억하고 있지만 그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없는 것 같다’란 표현을 쓰는 것은 그의 장편이나 단편을 읽었다는 확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단편 한두 편 정도는 어딘가에서 읽었을 것이다. 예전에 수많은 문학상 단편집들을 읽었으니. 하지만 장편은 모르겠다. 낯익은 제목들은 보이는데 읽었는지는 자신할 수 없다. 이런 상황들이 왠지 모르게 그의 소설에 쉽게 손이 가지 않게 한다. 책장을 뒤지면 그의 소설 한두 권 정도는 분명히 있을 텐데.

 

작가 이승우의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래서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조금 기대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의 취향이 아니다. 간결하고 분명한 문장을 좋아하는데 그의 문장은 모호함과 복잡함으로 가득하다. 천천히 곱씹으면 분명한 차이가 보이지만 의미 중복을 이용한 문장은 읽기 불편하다. 물론 이런 불편을 통해 사물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그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지금 나에게는 관념적인 문장에 빠져 헤매고 다닐 마음도 여유도 없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은 역시 <이미, 어디>다. 나는 ‘이미’ 읽고 지나간 문장을 잊고 있었다.

 

표제작 <신중한 사람>을 읽으면서 불안과 분노를 느꼈다. Y의 신중함이 소심함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모습을 보여주고, 이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과 별다른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Y의 집이 전세 사기를 당한 사람들의 집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Y의 무능과 무력함에 분노가 생겼다. 정말 그의 아내가 치밀하지 못한 신중함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유약함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한 표현에 동의한다. 해외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고 오랜 세월 근무한 직장인의 모습치고는 너무 유약하고 소심해서 오히려 낯설고 과장되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오래된 편지>와 <딥 오리진>은 작가 세계의 한 면을 살짝 엿본 느낌이다. 한 작가의 성공을 질시하는 작가의 내면이 그대로 드러날 때 자세하게 묘사되는 심리 변화는 너무 솔직해서 섬뜩했다. 전작은 과거를 묻으려고 하고, 후작은 현실과 환상의 교묘한 경계를 통해 진실을 모호하게 처리한다. 하지만 이 과정은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자주 저지르는 심리적 변화다. 낯익어 더 불편하게 다가온 것인지도 모른다. <리모컨이 필요해>에서 무기력한 한 가장의 삶을 서글프고 묘하게 쓸쓸하게 표현했는데 이상하게 은근한 여운을 남겨준다.

 

문학상을 수상한 <칼>은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잘 몰랐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빠져들었다. 기이한 한 부자의 삶 속에 칼이 어떤 의미인가 알려줄 때 고개를 끄덕였고, “어머니는 가끔 나를 염려한다. 나는 나를 염려하지 않는다.”(224쪽)고 할 때 이 표현이 주는 재미와 깊이에 빠졌다. <어디에도 없는>는 비자를 받기 위한 유의 행동이 카프카의 소설 속 장면을 연상시켰다. 집행관이 주장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의문도 생기면서. <하지 않은 일>은 수사학적 문장으로 가득하다. 이 논리를 따라가면 현실이 얼마나 불분명하고 모호한지 알 수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한 사람이 무슨 일을 했다는 것을 보여줄 때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진다.

 

분명히 이 소설집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모호함과 불확실함과 불안감 속에 드러나는 우리의 일상은 낯설지 않고, 신중한 사람이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유약한 소심함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반복되는 문장 구조 속에 숨겨진 분명한 차이가 수사학의 논리로 풀려나오는 순간 고개를 끄덕이면 빨려들어간다. 하지만 그 순간뿐이다. ‘어디’로 나의 시선과 마음이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군더더기 많은 문장과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 충분한 매력을 즐기지 못했지만 한 명의 작가를 가슴에 아로새기기엔 충분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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