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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한 남자의 이름으로 시작한다. 그 이름은 스위드다. 소설 속 작가가 아직 초등학생이던 시절 뉴어크의 동네에서 스위드는 마법의 이름이었다. 그는 풋볼에서는 엔드, 농구에서는 센터, 야구에서는 일루수였다. 흔히 말하는 만능스포츠맨이었다. 아직 2차 대전 중이었던 그 시절 유대인이었지만 그는 동네 사람들이 그를 통해 환상에 빠지고, 전쟁을 잊을 수 있게 만들었다. 정말 엄청난 일이다. 이 기억은 화자가 노인이 된 후에 그를 만나 인사만 했는데도 가슴 떨리는 흥분을 느끼게 만드는 매력을 지녔다. 영웅 숭배가 한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는 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영웅이 파멸하며 추락하는 과정을 그 시대의 모습과 같이 엮어서 자세하게 풀어낸다.

 

소설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기억 속의 낙원, 2부는 추락, 3부는 잃어버린 낙원이다. 처음 이 소설을 읽을 때 이 제목이 어떤 의미인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모두 읽고 이 글을 쓰는 지금 다시 보니 한 편의 실낙원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추억과 기억으로 윤색되었던 과거를 현실 속으로 불러오고 사실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영웅과 낙원을 산산조각낸다. 한 인간의 엄청난 성공이 시대와 딸이 불러온 사건으로 인해 어떻게 파괴되는지, 그 과정에서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행동했는지 그 시대의 풍경과 같이 보여준다. 특히 중심이 되는 시대는 60년대다.

 

한 영웅에 대한 숭배와 그로 인한 오해에서 이 소설은 시작한다. 오해하고 오해하면서 사는 삶에서 어릴 때 자신의 영웅을 만나 찬란했던 과거사를 듣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자 행복이다. 하지만 이 행운과 행복은 자신만의 착각이다. 그가 다시 만난 영웅은 딸 메리가 폭탄 테러를 가하고, 그 때문에 한 명의 선량한 시민이 죽으면서 추락하기 시작한다. 믿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장 먼저 들지만 현실은 잔혹하다. 그 시대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의 파도에 그 딸이 휩쓸려 들어간 것이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열여섯 살이었다. 비록 이전에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하지만 성인은 아직 아니었다. 그러나 가장 열정적으로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빠져들기에는 충분한 나이였다.

 

학창 시절에는 운동선수로 정점을 찍었고, 가업을 물려받아 장갑업체를 운영할 때는 늘 승승장구했다. 이런 영광들도 딸의 폭탄 테러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하나 밖에 없는 딸의 살인과 도망은 평온했던 가정의 삶을 불안과 공포로 가득 채운다. 혹시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역시였다. 이 과정들을 보면서 우리의 7~80년대 모습이 잠시 떠올랐다. 자식들의 데모 참여와 죽음으로 그 부모들이 어떻게 의식을 깨우치게 되었는지 생각났기 때문이다. 물론 메리의 폭탄 테러와 민주화 운동은 다른 문제다. 그래서인지 스위드의 대응도 그 원인을 제대로 보기보다 자기만의 생각으로 흘러간다. 어쩌면 그는 그 진실을 알고 싶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어디에서 문제가 생긴 것일까 하는 의문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겼다. 스위드가 자신이 딸과 한 키스에서, 대화에서, 가족 내부의 관계 속에서 되짚으면서 찾지만 이미 자신만의 세계 속에 살고 있던 그가 또 다른 자신만의 세계에 살던 딸을 이해하는 것은 무리다. 자기들의 주장만 내세우면서 정면에서 진실을 마주할 마음이 없었던 스위드에게 이것은 이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항상 승승장구하면서 남들이 바라는 바대로 올바르게 행동하고 생각했던 그이기에 돌발적이고 충격적인 행동을 할 힘을 상실한 것이다. 힘들게 딸의 소재를 알고 그녀의 삶이 얼마나 비루하고 처참한지 알면서도 힘으로 끌고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한다. 동생 제리와의 대화는 이제 그 추락이 바닥에 닿았음을 알려준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두 가지 큰 사건이 있다. 하나는 베트남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베트남 전쟁은 다시 그 시대에 불같이 일어났던 인종차별 문제와 또 연결된다. 이것은 스위드가 유대인이란 것과 또 이어진다. 스위드의 아내인 돈이 아일랜드계 천주교도라는 것은 메리가 태어났을 때 종교와 인종 문제로 시댁과 불화를 불러왔다. 이런 과정이 어린 메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일까? 미인대회 출신의 엄마가 바라는 바대로 하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받았던 메리가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방황할 때 이 부부는 올바르게 대처하지 못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베트남에서 승려들이 분신자살하는 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지만 부모는 ‘왜 그런 일을 할까’라는 생각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이미 이때 아빠와 딸 사이는 벌어지고 있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두고 벌이는 논쟁은 그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그 유명한 포르노 영화 <목구멍 깊숙이>로 이어진다. 아직 이혼이 그렇게 보편적이지 않았고 성윤리 의식이 강했던 그 시절 많은 논쟁을 불러왔다. 하지만 이 대화 속에서 핵심은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이것을 바라보는 미국 시민의 의식이다. 40년이 지난 현재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는 그냥 있을 수도 있는 일로 치부되면서 흐지부지 막을 내렸다. 과연 이 나라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 가장 올바른 사나이였던 스위드의 불륜이 드러난다. 강한 윤리 의식으로 묶여 있는 것 같은 외양을 지닌 미국 가정의 허상이 산산조각나는 순간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은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스위드 부자는 자신들이 성공한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그들의 노력에 의해 부가 축적되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흑인 폭동이 벌어졌을 때도 자신들은 흑인 등에게 좋은 사업가란 인상을 계속 풍긴다. 작가는 왜 이런 사건이 벌어졌는지 자세히 알려주지도 않는다. 물론 그 나라 사람들이라면 역사 시간에 제대로 배웠으니 필요 없을 것이다. 이후 이 폭동에 대응하는 자본가들의 모습은 현재 미국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스위드는 잠시 늦었을 뿐이다.

 

좋은 소설이다. 읽을 때 조금 힘들게 읽었는데 글을 쓰면서 하나씩 떠올려보면 많은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그 시대의 풍경과 사람들의 의식, 인종차별과 베트남 전쟁, 정치 문제와 이에 대응하는 정치권과 시민들의 모습, 사회 운동이 어디까지 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 자본가들의 의식과 현실 인식, 잘 가꾸어진 가정의 뒤틀리고 왜곡되고 숨겨진 배신들. 사랑으로 가득할 것 같은 가족의 삶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낙원이 얼마나 허약하고 과장되고 기만적인지 그 참 모습을 보여줄 때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들의 낙원은 잃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는지 모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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