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줄리언 반스는 왠지 모르게 나와 잘 맞지 않았다. 같은 영국 작가인 이언 매큐언의 소설에 미친 듯이 빠져든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인지 반스의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다. 사놓은 책이 몇 권 되지만 손이 쉽게 나가지 않았다. 2012년에 나온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 대한 엄청난 호평을 기억한다. 이 기억은 줄리언 반스라는 작가를 그냥 포기하게 놓아두지 않았다. 그러다 나온 이 에세이는 소개글부터 특이했다. 처음에는 소설인줄 알았는데 2008년 아내와의 사별 후 감정을 담은 에세이라고 한다. 소설이 아닌 에세이라면 어떨까? 그렇게 인연은 이어졌다.

 

이 에세이는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에세이들과 다르다. 모두 세 장을 되어 있고, 각 장이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냥 소설로 읽어도 크게 무리가 없는 구성과 전개다. 특히 마지막 장인 깊이의 상실에서 그의 깊은 상실감을 표현하지 않았다면 소설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각 장에서 반복되는 하나의 문장은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보라.”바로 이 문장이다. 이후 나오는 문장은 “그러면 세상은 변한다.”와 “때로는 합쳐질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다. 이 문장들은 각 장의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앞의 두 장을 끌고 나가는 소재는 기구다. 인간이 하늘을 날기 전 가장 많이 이용되었던 도구다. 작가는 이 기구를 중심에 놓고 두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명은 세상의 변화를, 다른 한 명은 사랑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물론 가장 핵심은 사랑이다. 그런데 그렇게 길지 않은 이 이야기들이 왠지 모르게 집중력을 흐트린다. 줄리언 반스의 다른 책을 읽을 때 느낌을 떠올려준다. 단순한 역사와 기술에 대한 나열로 먼저 다가온 탓이다. 좀더 집중해서 읽었어야 하는데 보통의 장편소설처럼 가볍게 도입부를 지나갔다. 그 결과는 작가에 대한 나쁜 선입견만 강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3부 깊이의 상실 장에 오면서 조금씩 바뀌었다. 아내의 사별 이후 그가 느낀 감정들이 하나씩 풀려나올 때 집중하게 되었다. 단순히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이 주는 의미를 하나씩 던져준 것이다. 누군가가 먼저 자식을 떠나보낸 후 자신들은 매일 죽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이 글 속에 자살을 고민하는 작가의 모습도 나온다. 단순히 죽는다는 것으로 이 상실의 깊이가 단숨에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변한 것들도 조금씩 들려준다.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살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169쪽)고 할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과 존재의 소멸을 같은 선상에 놓지 않고 이야기하면서 그 상실감을 어떻게나마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사람들이 보면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이야기지만 그 당사자에게는 결코 버릴 수도, 보낼 수도 없는 존재에 대한 사랑을 가장 절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모습에 동의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고? 한 번도 이런 경험을 오랫동안 유지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별개의 이야기인 것 같은 세 장의 이야기가 마지막 장에 오면 하나의 이야기로 모인다. 바로 줄리언 반스의 아내 팻 카바나다. 그녀의 죽음이다. 그녀에 대한 그의 비탄과 상실과 사랑이다. 사랑이다. 제목처럼 사랑은 죽는다고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적어도 작가에게는 그렇다. 이 사랑을 이런 고품격 에세이로 풀어냈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그 사랑의 깊이가 얕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정제되고 잘 구성된 이야기를 통해 그의 감정도 같이 정돈되고 다듬어졌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면서 문장들이, 단어의 선택이 조금은 더 마음속으로 한 발 더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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