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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대로 소설 속 등장인물인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다. 제목처럼 단지 그의 조카란 것만으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은 아니다. “루트비히는 그의 철학으로 유명해졌고 파울은 그의 광기로 유명해졌다.”란 말처럼 소설 속 파울은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의 삶을 살짝 들여다보면 그의 삼촌처럼 엄청난 돈을 거부하고, 오히려 이 돈을 순수한 인민들에게 뿌리면서 자신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구원은 돈의 탕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빈털터리가 된 그를 친척들 중 누구도 반겨주지 않았고, 정신병자로 병원에 가둬두는 빌미를 제공했다.

 

작가의 자전소설이란 소개처럼 이 둘은 병원에서 환자로 서로의 소식을 듣는다. 작가 베른하르트가 폐병 환자라면 파울은 정신병자로 입원한 상태다. 이 우연이 친구의 소식으로 두 병실을 이어주지만 그 왕래가 그렇게 쉽지 않다. 이런 이 둘의 인연을 시작으로 작가와 파울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이 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파울이 광기를 띄고 있다면 작가는 냉소와 증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 문화계에 대한 증오와 냉소는 한 에피소드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얼마나 다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읽으면서 생각하지 못했는데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깊은 몰입에 빠지지 않으면 아무 것도 건질 수도 느낄 수도 없다. 단지 몇 가지 에피소드 정도만이 남을 뿐이다. 하지만 집중도를 높이면 이 둘의 묘한 관계와 이들이 지닌 열정이 곳곳에서 피어난다. 클래식과 오페라에 대한 그들의 견해는 문외한이 듣기에도 수준이 높아 보이고, 파울의 오페라 여행은 얼마나 열정적이어야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문과 감탄이 생긴다. 그리고 이 둘의 우정이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철학과 관점의 유사성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게 될 때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작가는 파울을 천재라고 부른다. 철학계의 천재이자 삼촌인 루트비히와 다른 점을 루트비히는 책을 출간하였고 파울은 하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다. 물론 파울도 잠시 글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어느 하나 완성을 보지 못했다. 출간하지 못하게 태어난 사람이란 표현처럼 그의 철학과 높은 식견은 단지 그와 대화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가 된다. 읽으면서 혹시 그가 글을 썼다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일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지만 이런 상상은 언제나 즐거운 법이다. 그리고 말년의 삶을 들여다보면 비루함 속에 자기 삶의 여유와 낭만을 지켰다. 그의 마지막 장난이 보여주는 것은 그가 가진 것들, 가졌던 것들에 대한 향수이자 마지막 발악이다.

 

파울의 재미난 이야기 중 하나는 그가 보인 반응에 따라 흥행의 여부가 갈라졌다는 것이다. 한 개인이 오페라에서 냉소를 보이면 그때부터 흥행은 끝이 된다. 그런데 이 반응이 자신의 음악관이나 심미안에 의해 결정나는 것이 아니라 기분이나 장난에 의해서도 변했다는 것이다. 순간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의 이미지가 살짝 떠올랐다. 한 분야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어떤 재미난 모순을 불러올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리고 세계적인 지휘자였던 카라얀에 대한 엄청난 호평은 순간 다른 평가와 충돌하면서 이들의 취향이 나와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겨우 140여쪽에 불과하지만 수많은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이 에피소드는 이들의 철학과 음악관 등을 아주 잘 드러내준다. 물론 이 둘의 관계도. 특히 하나의 잡지를 사기 위해 수백 킬로미터를 달린 이야기는 열정과 광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둘이 병원에 입원한 후 12년 간의 우정과 관찰을 풀어낸다. 작가는 관찰자로서, 혹은 동반자로 등장하여 자신과 파울의 삶을 하나씩 녹여낸다. 이 과정에 흘러나오는 냉소와 경멸과 증오와 열정과 존경과 사랑은 가슴 한 곳에 조용히 자리 잡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다시 펼친 한 쪽에서 발견한 한 문장 때문에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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