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위를 걷는 느낌 창비청소년문학 59
김윤영 지음 / 창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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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위를 걷는 느낌은 어떨까? 무중력 상태에서 걷는 느낌은 또 어떨까? 이런 상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앞부분은 생각보다 더디게 읽혔고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낯선 용어와 상태가 좋지 않은 몸이 결합해서 몰입도를 떨어트린 것이다. 이것은 중반 이후 완전히 바뀐다.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면서 처음 이 소설에서 기대했던 설정들이 하나씩 등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설정 중 하나가 방사능이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방사능 유출과 관련된 암울한 미래의 풍경이다.

 

루나 아버지 필립이 딸에게 남긴 메시지를, 필립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루나가 가진 아스퍼거 증후군을 잘 모르지만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빠와 딸의 조금 특별한 관계를 조금씩 눈치 채기 시작했다. 3년 동안 병실에 누워 깨어나지 않는 아빠를 일주일에 다섯 번 찾아가는 딸의 정성과 사랑이 눈에 들어왔다. 이 지극한 정성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알려주는 단서 중 하나가 바로 아빠의 영상 메시지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진 숨겨진 비밀이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루나의 착각이다. 마지막에 이 사실이 드러날 때 가슴 한 곳이 먹먹해졌다. 이 어린 소녀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 때문에 얼마나 큰 고통을 지고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핵분열과 핵융합을 구분해서 말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들은 바로 핵분열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현재까지 인류가 경험한 가장 큰 방사능 누출 사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체르노빌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에 생긴 후쿠시마 원전 사태다. 작가는 가까운 미래를 다루면서 이 중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더 비중을 둔다. 지리적으로 한국과 더 가깝고, 한국도 언제 무슨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는 원자력 발전소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립이 우주비행사 이후 가진 특별한 능력 때문에 암울한 미래의 풍경을 보는데 이미 적지 않은 방사능이 누출된 미래의 몇 십 배를 능가한다. 바다에서 나는 큰 생선을 먹을 수 없는 미래라니.

 

이제 겨우 열 살의 어린 소녀가 세상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전달된 암호문을 풀기 위해 어른의 도움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암호 속에 과연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의문이 생기는데 이것을 풀어보는 즐거움도 상당하다. 뭐 대단한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상태인 친구 노마와 유미는 그녀로 하여금 세상과 문을 닫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루나에게는 최고의 친구들이다. 루나가 아빠의 마지막 메시지를 받았을 때 그들이 보여준 반응은 너무 솔직해서 시크하게 다가온다.

 

소설은 두 가지 이야기를 다룬다. 하나는 아빠와 딸의 유대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핵 위협에 처한 가까운 미래 모습이다. 장애가 있는 딸을 위해 코에 젤리빈을 여섯 개까지 끼우는 아버지와 거의 매일 병문안 오는 딸의 모습은 읽는 내내 부러움과 먹먹함을 자아낸다. 그리고 가장 핵심에 놓여 있는 방사능 유출은 가까운 미래에 유럽에서도 생기고, 일본 국민 30%의 이탈을 가져온다. 한일 간의 권력자들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국민들 몰래 한국에 핵폐기물 보관소를 만든다.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소설 곳곳에 지난 정권과 현 정권의 실정과 왜곡된 언론을 질타하는 장면들이 은유적으로 혹은 노골적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작가는 현재의 불안과 공포보다 미래의 풍요와 안락함에 더 무게를 두면서 마무리한다. 이것은 바로 딸 루나의 미래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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