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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괴 1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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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을 읽었다. 그의 첫 작품 <일식>을 아쿠타가와 상 수상 후 읽었는데 쉽게 읽히지 않았다. 다음 소설 <달>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작품인 <장송>은 그 두께 때문에 사놓고 언젠가 읽자는 마음으로 묵혀두었다. 솔직히 말해 여유있게 읽을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작품 <결괴>을 읽으면서 자신감을 찾았다. 생각보다 문장과 이야기가 쉽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물론 특유의 현학적인 문장과 전개는 나의 인식을 넘어섰다. 그렇지만 예상외의 속도감으로 읽을 수 있었다. 상당한 재미도 같이.

 

결괴(決壞). 무슨 뜻인지 몰라 사전 검색했다. 결궤(決潰)와 같은 말이고 ‘방죽이나 둑 따위가 물에 밀려 터져 무너짐’을 뜻한다. 왜 이런 제목을 사용했는지 책을 읽으면서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날선 문제의식으로 무장한 품격 있는 범죄소설의 등장’이란 광고 문구도 책 중반이 되기 전까지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4장 악마와 5장 결괴가 진행되면서 범죄소설이란 문구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그 사이 사이에 날선 문제의식이 다키시와 주변 사람을 통해 드러날 때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마지막에 도달했을 때 왜 결괴란 제목을 사용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 처음 김연수 작가가 이 책을 칭찬했을 때 작가의 이름을 제대로 읽지 않고 왜 미스터리 소설을 칭찬하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작가 이름을 ‘히가시노 게이치’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책에 한 번 눈길이 간 것은 사실이다. 범죄소설이란 단어가 현학적이고 난해한 글쓰기로 유명한 히라노 게이치로라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그는 평범한 미스터리 소설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내면서 하나의 사건을 통해 그들이 가진 약점을 콕 찝어 한 방에 밀어붙인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결괴란 단어가 지닌 의미가 그대로 재현된다. 그리고 왜 칭찬하고 추천했는지 알게 된다.

 

사와노 다카시. 그는 천재다. 운동도 공부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냉정하다. 그 냉정함은 어릴 때 어른들도 공포를 느낄 정도다. 날카롭고 분석적이고 개인적이다. 업무에서 그가 보여준 능력을 주변 사람들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하지만 그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열정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단 한 번도 다카시의 열정을 느끼지 못했다. 제목처럼 그가 무너져갈 때도 그의 가슴 한 곳에서는 얼음 같은 냉정함과 이성이 꿈틀거린다. 이루고자 하는 열정을 담은 목표가 없는 그의 삶은 불안정하고 지루하다. 그 때문인지 경찰들의 무식하고 계속적인 취조 앞에 흔들린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무너질 때 그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 이성은 감정의 해일 앞에 무너져내린다.

 

본격적인 범죄 이야기의 시작은 악마와 중학생 도모야의 결합에서부터다. 이 둘이 처음 만났을 때 혹시 하는 느낌도 있었다. 그 혹시는 악마가 다카시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런 짐작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사라졌다. 악마의 폭력과 파괴가 냉정한 다키시와 엇나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악마에게 다카시의 동생 료스케가 납치, 고문, 토막 살해당하고 악마의 범행성명문이 나오면서 한 개인의 문제가 사회로 번져나간다. 이 성명문은 개인 속에 잠재되어 있던 악의를 폭발시키고 무차별 테러와 폭력으로 이어진다.

 

료스케의 토막난 시체가 발견된 후 제1용의자로 다카시가 지목된다. 이유는 가장 마지막에 만났고 헤어지기 전 다투었다는 이유다. 여기에 료스케 아내의 추측이 더해지면서 이후 벌어진 모든 사건의 핵심 인물로 다카시를 지목한다. 그의 이력과 탁월한 능력을 감안해서 경찰이 무리하게 밀고 들어간 것이다. 증거를 숨기고 정보를 왜곡하고 감정을 앞세워 무리하게 자백을 받고자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다카시가 보여주는 행동은 입다물기다. 묵비권의 적극적인 활용인데 잠시 그의 지식이 빛을 발하지만 그것도 받아들이는 인물들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바로 이 지점이 천재와 일반 사람들 사이의 간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불안전한 사회 체제는 인간에게 규칙을 강요한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지만 모든 시스템에서 에러가 발생한다. 사람들은 그들이 받은 교육에 따라 이 에러를 용서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에러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소홀하게 대한다. 가해자에 대한 원인을 쫓아가서 왜? 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지만 피해자들의 그 후 삶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줄어든다. 최근 일본 소설에서 가해자 중심에서 피해자 가족 중심으로 이야기의 흐름이 바뀌는 것을 종종 보는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다카시를 둘러싸고 벌어진 그 강압적인 취조가 이것에 딱 맞는 상황이다. 그것보다 더 한 장면은 수영하는 료타를 보면서 엄마 요시에가 아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다. 사회와 자신을 돌아볼 때 미래의 분명한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악마는 늘 시험하는 존재야! 결단은 인간 자신의 몫이고!”(343쪽) 라고 악마가 말할 때 우리 삶 속에 얼마나 많은 악마가 존재하는지 알 수 있다. 그 악마를 불러내어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살인한다면 악마에게 잡아먹힌 것이다. 다카시도 이 악마의 시험에 빠진다. 앞에 자살의 욕구가 살짝 나오는 장면은 삶의 의지가 나약해졌을 때 드러난다. 환상을 가지고 바닷가로 달려가는 그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의식은 분열되고 가족은 산산조각났다. 자신의 의지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다카시의 이성이 열변을 토할 때 집중하게 된다. 용서는 피해자가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할 때 고개를 끄덕인다. 살인자는 그 누구에게도 용서를 받을 수 없다. 당연하다. 용서할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사람들이 왜 생겼는지 조금은 알겠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읽은 후 많은 생각이 오고 간다.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내는 그 삶이 하나 하나 살아있고, 그들의 행동과 심리 묘사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회 속에서 개인은 너무나도 무력하다. 천재도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악마라고 스스로 말한 그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 바로 악마가 던진 시험이 개인들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악의를 건드리고 전체가 아닌 개인의 문제를 밖으로 불러내기 때문이다. 억눌려 있던 개인들이 드러날 때 에러의 범위는 점점 커진다. 전체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 부분만 덮어두려고 하기 때문이다. 점점 범죄의 강도가 강해지고 나이가 어려지고 있는 요즘을 생각할 때 많은 것을 고민하게 만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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