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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명의 백인 신부
짐 퍼커스 지음, 고정아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제목만 보아서는 무슨 내용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처음 표지를 보았을 때는 판타지나 sf 장르가 아닌가 하고 착각도 했다. 하지만 책 소개를 읽고 난 후 황당함을 느꼈다. 천 명의 백인 신부와 천 마리의 말을 교환해 백인과 인디언 사회의 영구 평화를 도모하자! 는 발상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는 제안 아닌가! 그런데 1874년 9월에 샤이엔 족의 대족장 리틀 울프가 제18대 미국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에게 실제 이런 제안을 했다고 한다. 그럼 실제 일어난 일일까? 아니다. 이 기발한 제안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무럭무럭 자라 멋진 허구의 세계가 펼쳐진다.

실제 제안은 거부되었지만 소설은 이 제안의 실용성을 주목하고 은밀하게 실천으로 옮긴 것으로 가정한다. 이 소설이 시작되는 부분은 바로 이 제안을 실천으로 옮기는 순간부터다. 가칭 인디언 신부 계획은 각각 다른 사연을 가진 여성들을 모아서 서부로 향한다. 그리고 이 비밀 계획은 한 여성의 일기를 통해 기록되고 알려진다. 그 여성이 바로 메이 도드다. 그녀는 1차 지원자 46명과 함께 미개인의 신부가 되기 위해 기차를 탔고, 그곳에서 각각의 사연을 품고 있는 멋진 동료들을 만난다. 이 때부터 두 문화의 충돌 속에서 47명의 백인 신부들의 활약을 현실적이면서도 유쾌하게 보여준다.

일기의 주인공 메이 도드가 이 계획에 참가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정신병원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다. 그녀가 정신병원에 가게 된 이유는 더 이상하다. 그녀의 기록에 따르면 그녀의 사랑 때문이다. 그녀가 집안의 일꾼 해리와 눈 맞아 아이들을 낳고 비천하게 살았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이것을 용납하기 못했다. 그녀의 두 아이는 엄마에게서 떨어지고 그녀는 음란하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갇힌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의문이 생기지만 예전에 한국에서도 가족들이 다른 가족을 정신병원에 감금했던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결코 사랑을 포기하지 못했던 그녀가 병원 탈출을 위한 제안이 왔을 때 금방 받아들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인디언 신부 계획이 밖에 드러나는 것을 겁낸 미 정부가 신부들을 모집하는 방식을 제대로 했을 리 없다. 메이 도드가 있는 정신병원으로 찾아온 것이나 매춘부 쌍둥이가 자원한 것이나 또 다른 사연을 가진 여성들이 참여한 것은 당연하다. 인디언을 미개인으로 부르고 혐오하던 그 시절 그 누가 자신의 딸이나 누이를 말과 바꿔 신부로 보내겠는가.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사연 많은 여성들이 지원하게 되고 그 사연으로 이야기는 풍성해진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여성들이 등장함으로써 낯선 세계와 함께 하고 자신들의 삶을 좀더 다양하게 개척하게 된다. 

단순히 이 백인 신부들의 활약에 초점을 맞췄다면 재미있고 유쾌했을지 모르지만 깊이는 부족했을 것이다. 작가는 두 문화의 충돌을 보여주고, 각 문화의 단점을 드러내면서 그 시대를 충실히 재현하려고 했다. 이 때문에 환상이나 전설 속 인디언 이야기가 아닌 실제 인디언들을 만나게 된다. 각각의 의도에 의해 왜곡된 인디언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그 누구보다 순수했고, 그 순수함이 우리의 시각 속에 잔인함으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된다. 바로 이 부분이 새로운 긴장감을 주고 역사의 뒤안길 속으로 사라졌던 그 시대의 일면을 마주하게 한다. 

이 작품은 기발한 제안에서 시작하여 상상력으로 그 제안을 발전시키고 그 상상력을 현실의 기반 위에서 멋지게 구현했다. 메이 도드를 비롯한 각각의 백인 신부들은 그 시대의 기준으로 역외자들이고 기존 질서의 도전자들이다. 이들의 개성을 새로운 문화 충돌 속에서 세밀하게 그려내었는데 이것도 역시 상상과 현실의 조화 속에 빛을 발한다. 개인적으로 특히 눈길을 끈 여성이 있다. 흑인인 피미다. 그녀의 과거와 현재 모두 자유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한데 현재의 활약이 이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 남자 인디언과 어울려 초원을 달리고 적을 무찌르고 사냥을 하는 그녀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예정된 결말을 다시 되새겨본다. 기대 이상의 재미와 새로운 역사의 한 장면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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