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수 있겠니?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미친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던지는 것이자 잊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생에 최소한 한두 번은 어떤 일에 물건에 사람에게 미치는 경험을 한다. 하지만 이 경험이 그렇게 길지는 않다. 물론 마니아의 세계로 가면 긴 세월 동안 미친 듯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미친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친 것과 조금 다르다. 가끔 그 경계가 희미한 경우도 있지만. 소설 속 두 주인공은 과연 미쳤을까? 묻는다. 그럼 읽는 동안 나는? 작은 이빨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무슨 의미일까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는 진과 진이라는 연인들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성만 다르고 이름이 같은 두 연인. 그들은 같은 이름을 가진 연인이 생길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얼마일까? 뭔가 특별한 인연 같다. 하지만 이 특별한 인연은 산산조각난다. 바로 그 섬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서. 진은 유진의 스케치에서 그 섬 여자 아이의 누드화를 보고 임신한 여자 아이가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본다. 그때 그녀는 자신에게 묻는다. 죽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녀는 여자 아이를 찌른다. 여자 아이는 비명을 지른다. 그 후 흔들린다. 진과 집과 그 아이와 땅이.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 같다. 그 섬에서 드라이버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야나가 등장한다. 그는 개 한 마리를 친 적이 있다. 개 그림자의 환영 때문에 다시 온 곳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그녀는 진이다. 이 만남이 단순한 우연일까? 그녀는 이야나의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고, 이야나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중에서 재미난 것은 역시 친구 만이다. 그 섬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만의 삶을 통해 그 섬 생활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만은 자신이 가진 매력을 팔아서 생활했고, 그 매력이 사라졌을 때 만난 엄마의 존재가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한다. 어쩌면 이 소설에서 가장 본능에 충실한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솔직함과 두려움은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현실이 아닌 과거 속에 살아가는 두 남녀와 대비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본능은 무얼까? 성욕일까? 진과 이야나의 만남과 동행은 처음에는 필요에 의해서다. 이야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진은 자신이 찾는 유진의 환영을 쫓기 위해서. 이 만남이 이어지고 우연한 사고인지 의도인지 모를 여권 분실 이야기는 하나의 일을 바라다보는데 사람의 경험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리고 만을 통해 알게 된 힐러의 이야기는 이 두 남녀가 갇힌 기억의 지옥을 벗어날 하나의 주문 같다. 진은 7년 전 일어난 살인의 기억이고, 이야나는 그가 사랑했던 여자 수니에 대한 집착이다. “기억해야만 할 것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지우게 될 겁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장치 중 하나가 지진과 쓰나미다. 7년 전 사건 속에 일어난 지진과 현재 밀려온 쓰나미는 삶의 전복이자 회생이다. 과거보다 현재의 쓰나미가 더 처참한데 그 현장을 작가는 생생하게 그려내었다. 그 섬을 자주 다녀왔고, 그 섬에서 시체가 불타는 것을 본 경험에서 비롯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예전에 동남아 여행을 갔을 때 2~3년이 지났는데도 그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놀란 적이 있다. 아직도 치워지지 않았다는 것과 그 처참함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것에 동시에 놀랐다. 그 당시에는 치워지지 않은 것이 게으름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경제력과 그 충격 때문이 아닐까 하고 바뀌었다. 물론 그 국민성도 무시할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뿐이었다.’라고 몇 번이나 외친다. 진과 진의 결합은 이제 과거 시재로 변했다. 진이 사라진 유진을 찾아 7년 동안 몇 번이나 그 섬에 왔지만 그녀에게 시간은 흐르지 않고 멈춰 있다. 이것은 기억의 지옥이 만들어낸 환상이자 고통이다. 정체된 시간은 그녀의 삶을 강하게 지배한다. 기억하고 싶지 않는 것들이 그녀를 과거 속에 묶어둔 것이다. 이때 나타난 이야나와 쓰나미는 그녀의 정체된 삶을 뒤흔든다. 그녀가 그에게 말한 “돌아올께요”는 그녀를 떠난 유진을 잊게 만들고, 기억의 지옥을 마주하면서 극복하게 만든다. 쓰나미가 만든 참혹하고 극한 상황이 그들을 현실 속에서 연결시킨다. 시간은 다시 흐르고 그들의 관계도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