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섬에 오라고 하지 않았다 - 이생진 산문집
이생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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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본 듯한 이름에 저자 이력을 확인했다.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가 보인다. 사 놓고 오랫동안 묵혀두고 있는 시집이다. 이 시집을 추천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왜 추천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제목이 낯익고 정겨워서 계속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읽었던 시집의 제목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저질 기억력을 생각하면 흔한 일이 아니다. 여기에 시인의 산문집은 최근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이다. 1997년에 출간한 것을 개정증보한 것이 이번 책이다. 산문 몇 편이 빠지고 다시 들어간 듯한데 구판과 비교해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성산포. 많이 들은 지명이지만 정확하게 잘 모른다. 인터넷 검색하니 제주도에 있다. 제주도 명예도민이 된 이유가 여기 있다. 이 시집이 가장 유명하지만 문학상은 다른 시집으로 받았다. 지금 구순인데 아직도 현역에서 일하고 있다. 대단하다. 성산포로 유명해졌지만 그는 섬을 사랑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에서 섬을 뺀다면 무엇이 남을까 궁금할 정도다. 그가 다닌 섬의 이름만 적어도 A4 한 장은 가득찰 것 같다. 이렇게 한 분야에 빠진 시인이나 전문가를 볼 때면 늘 부럽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가 처음 나온 것이 1978년이라고 하니 얼마나 긴 세월인가. 이 산문집에는 최근까지 섬을 다닌 기록을 담고 있다.

 

이 산문집에는 시인이 그린 그림도 한몫 차지한다. 만년필로 그린 듯한 그림은 간결하면서 핵심을 잘 담고 있다. 최근 그림보다 예전 그림이 더 많은데 노안이라 그런지 그림에 적은 글자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정보를 더 자세히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그 그림들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풍경을 담고 있다. 서귀포 어딘가를 그린 그림을 보면서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란 생각에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생겼다. 차로 제주도를 돌면서 놓쳤던 많은 풍경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예전에 그가 본 섬과 현재의 섬들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읽으면서 계속 생각한 것이다.

 

섬과 고독을 같이 묶어서 풀어낸 글들이 많다. 지금처럼 통신이나 전기가 잘 전달되지 않던 시절, 시인의 말처럼 곤충들이 섬의 주인이었던 시절을 떠올리면 시인이 그곳에서 느꼈을 고독의 일부를 상상할 수 있다. 섬, 파도, 바다, 바람 등이 고독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엮이면서 시로 태어난다. 그의 시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 이 산문집은 잘 보여준다. 섬과 섬 사람들 이야기는 진한 정을 느끼게 만든다. 한 번만 가는 섬이 아니라 여러 번 방문하고 오랫동안 머물기도 했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등대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래 전 보았던 등대의 풍경과 등대지기가 떠올랐다. 시인은 등대는 고독에 민감하다고 했는데 고개를 끄덕인다.

 

시인의 산문에는 시가 자주 등장한다. 시를 자주 읽지 않는 나에게 시를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 덕분에 알게 모르게 몇 편의 시를 읽게 되었다. 당연히 시를 읽고나면 시집에 관심이 간다. 이 때문에 시집 한 권을 읽게 된다면 이 또한 얼마나 좋은 일인가. 송상욱 시인과 함께 기타 치면서 시를 낭송한 에피소드는 낭만과 여유가 느껴져서 잠시 그 여운에 잠겼었다. 시인이 섬을 둘던 시기를 떠올리다보면 학창시절 친구가 다녀왔던 섬 몇 곳이 떠올랐다. 아련한 추억에 순간 잠긴다. 섬으로 섬으로 떠돌며 얻은 고독이 시로 태어나고, 그 탄생이 쌓여 시집이 되었다. 몽블랑 만년필을 이야기할 때는 잊고 있던 만년필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긴다. 현재나 미래보다 과거의 향수가 더 가득한 산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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