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지나간다 - 스물네 개의 된소리 홑글자 이야기
구효서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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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소리 홑글자가 화자로 등장한다. 국어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아서인지 된소리 홑글자가 뭔지 몰랐다. 목차를 한 번 쓱 훑어보니 아! 하고 알 수 있었다. 이 에세이를 선택한 것도 이런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다. 보통의 에세이는 대부분 사람을 화자로 등장시키지 않았는가. 이 된소리 홑글자가 화자라니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소설가 구효서가 쓴 에세이는 또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이런 의문들이 겹쳐지면서 펼친 책은 생각보다 분량이 많지 않았다.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은 읽기 시작하면서 사라졌다. 간결하고 일상적인 최근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강화도 하점면 창후리 창말. 공간적 배경이다. 1965년부터 70년 사이는 시간적 배경이다. 에세이라고 하지만 읽다 보면 연작 단편 소설의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일관되게 흐르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창말 사람들과 상황들이 기억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덧붙여진 것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57년생 작가가 어떤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현실에서 그가 풀어내는 창말 이야기는 너무 세밀하고 사실적이다. 이제 중늙은이가 된 나도 그 시절의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는데 더 늙은 그는 어쩌면 이렇게 또렷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런 기억은 더 좋아지는 것일까? 아니면 작가의 기억력이 좋은 것일까?

 

강화도. 여행으로 가 본 것이 전부다. 역사책에 나오는 정보 그 이상은 잘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에 다른 지역들처럼 비극이 똬리를 틀고 있다. 83명이 묻힌 구덩이도 있고, 뻘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죽은 사람들이 누워 있다. 이 마을 앞에 있는 ‘뻘’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영화의 서막과도 같다. 효서가 이야기에 자주 등장할 것 같지만 그는 평범한 조연일 뿐이다. 그것과 가끔 등장한다. 된소리 홑글자들이 창말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들려주는데 이 작은 마을에서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결코 적지 않게 일어난다. 낚시꾼들의 등장처럼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들도 있다.

 

작가의 상상력과 어릴 때 기억이 만나 만들어낸 이야기는 좀 더 세밀하게 읽을 때 재밌다. 강화도 사투리가 난무하면서 무슨 뜻인지 추리해야 하고, 서슬퍼런 시대의 모습도 보여준다. 명사로 된 된소리 홑글자가 화자인 것은 쉽게 이해가 가는데 쓰, 쓱, 뚝, 빡, 뽁 같은 홑글자는 조금 낯설다. 사전적 의미까지 끌고 와서 작가가 설명하는데 이에 맞게 이야기가 풀려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소설가의 서술과 묘사는 의도된 연출로 이어진다. 첫 이야기에 뻘에 등장했던 사람들이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도 소설가란 이력과 관계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작은 이야기 속에 작은 반전을 넣어둔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한국 문학을 읽으면서 사투리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사실 나 자신도 사투리를 사용한다. 다른 동네 사루리를 잘 모를 때가 많다. 같은 도시라고 해도 옆동네에서 사용하는 사투리가 다른 경우가 있다. 이 에세이에서도 작은 고개 너머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지금처럼 언어가 하나의 공통된 소리를 가지기 전에는 그랬다. 효서란 이름이 어떻게 불리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는 문자와 소리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아마 누구나 한 번 이상 경험한 일일 것이다. 시대 속에서 흥미롭게 봐야 하는 것은 이름 없이 여자로 불리는 한 여자와 그녀를 둘러싼 이야기다. 그녀와 딸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한 많은 것을 풀어서 설명해주었지만 그 사이에는 많은 이야기가 생략된 것도 사실이다. 풍자와 해학이 곳곳에 보이지만 나의 시선은 비극에 더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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