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임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임재희 작가는 장편 <비늘>로 처음 만났다. 등단과 작가에 대한 고민이 묻어 있는데 최근의 문단 경향을 아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직접 번역한 <블라인드 라이터>는 역자 이름 때문에 한 번 더 눈길을 주었고 운 좋게 읽게 된 작품이었다. 이런 일련의 기억들이 이번 단편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한국 태생이지만 외국으로 이민 간 경험이 있는 작가란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작가의 말>에서 왜 한국 문단으로 등단하게 되었는지 알려주는데 많은 부분 공감한다. 하진이 다른 언어로 소설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이미 보여줬기에 더욱 그렇다.

 

아홉 편의 단편들 대부분은 이민자의 삶이 녹아 있다. 아마도 <동국>을 제외하면 전부라고 해도 될 것이다. 소설의 배경이 한국인 작품도 있고, 미국인 작품도 있는데 이것은 거의 반반이다. 의도적인 것인지, 결과가 그렇게 나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읽다 보면 첫 작품 <히어 앤 데어(Here and There)>의 연장선임을 자주 느낀다. 한국에 다시 돌아온 교포가 겪게 되는 일상을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질문들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다시 돌아온 교포들이 보여주는 어눌한 행동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보일 때는 안타깝다.

 

<동국>은 남편의 감전 사고 이후 불행한 삶을 산 작은 어머니의 일생을 조카의 시점에서 보여준다. 힘들게 사는 와중에도 부조를 100만 원이나 했는데 그 이름이 낯설다. 동국. 제대로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다 보니 작은 어머니인지도 의문스럽다. 이 가족에게 닥친 비극은 정말 처참하다. 이름에 담긴 아픔과 그녀가 내뱉는 외침이 가슴에 강한 여운을 남긴다. <라스트 북스토어>는 분명하지 않은 사건을 바닥에 깔아둔 채 이야기를 진행한다. 추측만 할 수 있는 이 사건이 동생 부부의 삶을 파괴했다. 헌책방에서 발견한 몇 가지 책과 cd는 답답한 일상에 작은 위로가 된다. 하지만 그 뿐이다.

 

<천천히 초록>은 이민에서 돌아온 후 자신이 태어난 곳을 돌아보면서 과거를 추억한다. 그 추억 속 이야기보다 망가진 아버지가 더 눈길을 끈다. <로사의 연못>은 이민자의 삶과 욕망이 잘 드러난다. 원하는 곳에 원하는 집을 지었지만 그 원함이 왜곡되었음을 보여준다. <분홍에 대하여>는 조화를 만드는 그녀의 추억이 아주 인상적이다. 살 때 몰랐다는 그 감정이 평범하지만 가슴 깊게 파고든다. 색에 대한 번역을 나이와 연결하는 마지막 장면은 강한 여운을 남긴다. <압시드(Abcd)> 무심코 제목을 봤다. 입양된 노인의 독백으로 이어지는데 처음에는 아랍계로 착각했다. 한국전쟁 당시 아는 알파벳을 모두 적은 것이 이름이 되었고, 당시 미군 흑인과 결혼한 여성과의 인연과 관계는 또 다른 삶을 잠시 들여다보게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단편이었다.

 

표제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는 오픈티켓으로 구매한 표의 좌석이 없으면서 겪게 되는 폴의 하루를 다루었다. 미국에 직장을 다니는 그가 한국에 온 이유는 엄마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첫 단편의 그녀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문화적 충돌이 곳곳에 드러나고, 처음 경험한 지옥이 그래도 나을 것이란 말에 삶이 잠시 우울해졌다. <로드>는 댈러스에 있는 엄마의 집으로 자동차 여행을 가는 세 남매 이야기다. 긴 여행은 서로가 느끼고 가지고 있던 가족을 말하게 한다. 엄마라는 존재가 지닌 무게와 의미는 여전히 존재한다. 나이가 들어 뒤돌아본 부모의 삶에 눈길이 간다.

 

이 아홉 편의 단편을 읽으면서 이민자의 삶을 돌아봤다. 이민자들이 그들의 자식을 어떻게 보는지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이들이 느끼는 감정의 일부도 봤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끊긴 듯한 느낌이 든다. 생략된 이야기에서 추론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쉽다. 단서를 보여줬거나 알려줬는데 내가 알지 못했다면 내가 잘못 읽은 탓일 것이다. 늦은 등단인데 다른 작가들처럼 꾸준히 작품을 내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흔히 보는 삶이 아닌 조금은 다르고 낯설게 본 삶을 말이다, 그 속에서 우리의 삶을 발견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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