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 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대단한 작품이다. 타임루프를 다룬 소설 중 최고의 작품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타임루프를 다룬 영화 <시간의 블랙홀>을 좋아하는데 이 소설은 훨씬 광대하고 복잡하고 철학적인 문제를 다루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고 있다. 반복되는 삶 속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런 상상력으로 풀어내었다는 점에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에게서 어른으로, 아이에게서 어른으로” 이 문장을 처음 볼 때는 그 의미를 잘 몰랐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 빠져서 이 반복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그 의미를 알게 된다.

 

해리 오거스트. 1919년 1월 1일 기차역 화장실에서 태어난다. 귀족인 힐러 가문의 아버지가 하녀를 강간한 결과로 탄생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는 죽고 그 가문의 관리인 부부의 아들로 자란다. 첫 생애는 평범한 사람의 삶을 그대로 살았다. 우리가 평생 한 번은 겪는 그 삶이다. 하지만 다시 삶을 시작할 때 이전 생의 기억을 모두 갖고 있었다. 혼돈에 빠진다. 미래를 기억하다보니 제 정신이 아니다. 일곱 살에 정신병원에 보내지고 그곳에서 자살한다. 그리고 다시 삶이 반복된다. 이 반복되는 삶을 이해하기 위해 종교를, 의학을, 물리학을 공부한다. 왜 이런 삶을 사는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자신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크로노스 클럽이다.

 

이런 반복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칼라차크라라고 한다. 이들 중 극히 일부는 완벽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우로보란이라고 부른다. 해리는 우로보란이다. 그의 삶 중 하나는 제니라는 여성을 사랑하고 그녀에게 자신의 비밀을 말하는 것이다. 탁월한 외과의사인 그녀지만 남편을 이해할 수 없다. 결국 떠나는데 그녀를 찾아간 것 때문에 정신병원에 갇힌다. 그의 기억력 때문에 정부요원에게 정신병원에서 나오게 되지만 이것이 독이 된다. 미래를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엄청난 힘을 가진 것과 같다. 탈출을 시도하다 다시 잡힌 후 고문을 당하면서 미래를 술술 분다. 잠시 탈출한 후 지인의 도움으로 광고를 낸 것을 보고 칼라차크라가 찾아온다. 크로노스 클럽과 처음 만난다.

 

반복되는 삶을 살게 되면 우린 무엇을 할까? 소설 속 해리는 다양한 공부를 하고, 엄청난 부를 쌓는다. 하지만 이 크로노스 크럽에는 한 가지 금지사항이 있다. 인류의 역사에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이 개입으로 인해 과거에도 인류의 멸망이 한 번 있었다. 아니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지구에서 인류가 사라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 미래에서 과거로 메시지가 전달된다. 그 방법은 바로 아이에게서 어른으로, 아이에게서 어른으로 구두로 전달하는 것이다. 세계가 끝나고 있다는 메시지가 해리에게 전달될 때는 그가 병원에 입원해서 죽음을 기다리던 시기다. 이제 해리는 그 문제를 풀기 위해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칼라차크라, 이들은 영생자다. 천년을 직선적인 삶으로 살지 않고, 한 시기를 반복적으로 산다. 왜 이런 아이들이 태어나는지 모르지만 이 출생을 막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바로 태어나기 전에 죽이는 것이다. 임신한 태아를 죽이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칼라차크라들은 자신들의 출생 비밀을 꼭 지킨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죽음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생애에서 죽음을 경험했다고 해도 다음 생이 있기에 어떤 순간에는 자살이 하나의 선택이 되기도 한다. 이것과 다른 것으로 <망각>이 있다. 전생의 기억을 잃는 것이다. 이 시술을 받게 되면 처음 태어난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그 다음 삶에서는 다시 반복적인 일이 생길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이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같은 삶을 반복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경험으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을 거쳐야만 한다. 물론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삶을 끊고 싶고, 내 존재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자신의 죽음만을 원한다면 출생하기 전에 죽이면 된다. 그러나 존재의 의미는 어떨까? 이것을 알고자 하는 인물이 미래 세계를 끝내는 역할을 한다. 바로 해리의 제자이자 친구이자 숙적인 빈센트 랜키스다. 중반 이후는 빈센트의 정체를 밝히고, 그를 쫓는 과정과 출생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진다. 이 시간들은 결코 짧지 않다. 100년이 훌쩍 넘는다.

 

단순히 소재만으로 이야기를 재밌게 끌고 나갈 수는 없다. 풍부한 이야기를 잘 짠 구성 속에 녹여내야 한다. 단순히 직선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칼라차크라처럼 선형적으로 풀어내야 한다. 현재의 삶에 과거의 기억과 경험을 적재적소에 집어넣고, 과거의 사례를 통해 미래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미래의 정보가 과거로 거슬러 올라오지 않으면 과거는 오래 보존되는 메시지를 통해 자신들의 시대 정보를 남긴다. 다른 출생 연도에서 비롯한 나이 차이가 견고한 시간 고리를 만든다. 놀라운 상상력이다. 모두 읽은 지금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지만 한국 출간작이 보이지 않는다. 시간과 역사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고자 하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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