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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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고 불안하지만 잘 읽히는 소설이다. 열세 살 소녀가 쉰 살의 문학선생에게 강간을 당하고, 이후 성폭행이 이어지는 상황을 그렸다. 작가는 이 과정을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낙원, 실낙원, 복락원으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는 불과 몇 개월 전부터 한국을 뒤덮은 #withyou 운동으로 생각이 옮겨가게 만들었다. 흔히 말하는 피해자의 반응에 대한 가해자와 네티즌의 댓글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들었다. 살아오는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이 이런 말을 내뱉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섬뜩함과 끝없는 미안함을 느꼈다. 이것은 나와 내 후손들에게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팡쓰치는 류이팅은 단짝이다. 둘 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고, 같은 경험을 한다. 이들이 꼽은 멋진 남자들은 두 사람이다. 문학선생 리궈화와 이웃집 오빠 천이웨이다. 그런데 이 둘은 모두 문제가 많은 남자들이다. 천이웨이는 술에 취하면 아내를 때리는 나쁜 술버릇이 있고, 리궈화는 아주 상습적인 아동 성폭행범이다. 소설은 이 둘에 의해 피해를 입은 두 여자가 어떻게 삶의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지 잘 보여준다. 그 과정은 결코 쉽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들의 피해를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다. 쓰치와 이원도 서로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부분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팅이 쓰치의 이상한 행동을 알게 된 것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실낙원은 바로 쓰치와 이원이 왜, 어떻게 스스로 무너지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리궈화가 어떻게 이런 피해자를 선택하고, 감정을 왜곡하고, 자기합리화로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끄는지 보여준다. 작가가 강하고 용감한 사람은 리궈화였다고 했을 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리궈화가 피해자가 자살했을 때 오히려 홀가분했다는 느낌을 전하는데 이런 상황들이 그로 하여금 상습적이고 반복적인 성폭행을 하게 만든다.

 

쓰치는 불면증에 빠지고, 자신의 감정을 사랑이라고 왜곡한다. 리궈화의 노리개로 전락했지만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그 사랑을 확인하려고 노력한다. 그 바탕에는 사람들의 인식과 인내가 깔려 있다. 작가는 “인내는 미덕이 아니야. 인내를 미덕으로 규정하는 건 위선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이 비틀어진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이야.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미덕이야.”라고 외친다. 참으라고 말하고,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은 피해자들에게는 너무나도 잔혹하다. 정말 비틀어진 질서를 위해 이런 희생자들이 양산된다는 것은 참혹한 현실이다. 이 현실의 반동으로 일어나 #withme 운동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작가는 쓰치가 납치되어 강간당한 사람이 세상에 또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느낀다고 말하고, 그들이 보통의 딸이나 엄마가 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들을 ‘살아남은 자’라고 부른다. 위안은 곧바로 자신이 그런 사람 중 제일 못된 사람일 것이란 자기혐오에 빠진다. 이런 상황은 리궈화의 다른 희생자가 인터넷에 글을 올렸을 때 나온 반응이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피해자에 공감하기보다 공격하는 사람들의 잔혹한 글들은 익명이란 가면 뒤에 숨겨진 인간의 잔혹한 본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아니 자신은 아니라는 안도감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쓰치와 이팅의 가족이 살았던 곳 주민들이 모여서 식사하는 장면이다.

 

읽으면서 눈길을 끄는 몇 개의 관계가 있다. 쓰치와 이원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서로가 피해를 인식하지만 이것을 바로 잡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이원은 유산을 한 후에 겨우 그 집을 떠나고, 쓰치는 정신을 놓으면서 그 상황을 벗어난다. 이원이 쓰치에게 나쁜 짓을 한 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할 때 자기반성이 들어있지만 결코 용감하게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한다. 사회의 통념이란 뿌리 깊은 악습이 그들 앞에 놓여 있고, 피해자를 보호하고 따뜻하게 안아줄 사회와 가족 등이 없기 때문이다. 학원 선생들이 자신들의 경험담을 자랑하는 장면을 보면서 한국의 어느 여자 운동팀 감독이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학생들 때문에 룸 등에 갈 필요가 없다고. 그리고 학원선생들의 성폭행을 도와주는 사람들의 존재는 학원뿐만 아니라 그 사회라는 부분도 잔인하게 가슴을 후벼 판다. 불편하지만 우리가 읽어야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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