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 리더십 - 영국을 부활시킨 폭풍 속에 핀 꽃
구로이와 도루 지음, 정인봉 옮김 / 김영사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상당수 번역서들의 제목이 그 책의 내용과는 동떨어지게 붙여지는데 반해 이책의 번역 제목은 오히려 원제목보다 내용을 더 잘 반영하는 드문 경우이다.

이책에 붙은 대처 리더십이란 제목은 마거릿 힐더 대처라는 원제보다 책의 내용에 더 가깝다.

1989년에 출간된 이책의 저자는 후기에서 이책을 쓰게된 동기의 하나로 도대체 영국의 전통적 리더와는 이질적인 대처와 같은 인물이 어떻게 정상에 오르게 되었고 어떻게 영국을 바꿀 수 있었는가라는 의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의문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대처의 어린 시절부터 추적해 저자가 런던 특파원을 끝내던 시기인 포클랜드 전쟁 후까지 대처의 행적을 기록한다.

대처의 전기라고 할 수 있는 이책은 그러나 단순한 전기가 아니라 정치가로서 대처라는 인물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책의 질문은 첫째 대처리즘이란 이름이 붙을 정도의 정치적 주장을 강하게 가졌던 영국 정치가는 지금까지 없었다. 그러면 대처리즘이라는 이름까지 얻게 된 대처의 정치적 신념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며 그 신념을 대처는 어떻게 정치적으로 실현할 수 있었는가?

둘째 영국의 정치가는 정치를 직업으로 생각하는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의 정치는 아마추어리즘이 지배하는 곳이었던 것이다. 논어의 '君子不器'라는 말에 따라 고전교양만 갖춘 선비들이 정치를 지배했던 동아시아의 정치와 마찬가지였다. 선비에게 기대되었던 것처럼 영국의 신사들에게 기대되었던 것은 인간적 폭과 깊이를 갖춘 교양인이었다. 그러나 대처는 정치를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일 밖에 모르고 취미도 인간적 매력도 없는 프로였다. 더군다나 대처의 신념인 19세기식 자유주의는 보수당에서조차 소수파들의 이념일 뿐이었다. 그런 대처가 당수가 되고 수상이 된 배경은 무엇이었는가?

저자는 이런 질문을 이책의 주제로 삼아 이에 대한 답을 이책에서 하고 있다.

그러면 이책의 가치는 그 질문에 얼마나 충실한 답을 이책이 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점에서만 본다면 이책은 충분한 답을 하고 잇다고 할 수 있다.

대처의 의미는 그녀가 수상이 되어 영국을 개혁한 것으로 시작된 부수혁명이 신자유주의란 거대한 트렌드가 되어 30여년간 세계화의 흐름을 타고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는데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이책이 쓰인 1989년은 그런 흐름을 시야에 넣을 수 있는 시점은 아니었고 그 후에 전개된 세계의 흐름은 당연히 이책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 성질의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대처라는 한 정치가에만 관심을 좁힌다면 이책은 지금도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멍가게 둘째딸 마거릿 대처 - 영국의 前 수상
고승제 지음 / 아침나라(둥지) / 1994년 10월
평점 :
품절


대처 전 수상이 퇴임한 것은 20년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대처라는 인물의 비중은 줄어들지 않는다. 80년대부터 본격화된 세계화의 모습이 대처가 실천한 신자유주의이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위기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게 되었지만 30년가까이 세계를 지배했던 흐름을 만든 사람으로서 대처의 의미는 아직도 유효하다.

그러나 대처의 비중에 비해 국내에 나온 대처에 관한 서적은 손에 꼽는다. 그리고 그 적은 수의 질도 고만고만한 수준에 머문다. 그 적은 책중의 한권인 이책 역시 고만고만한 수준의 질을 보이고 있다.

저자의 이력을 보면 상당히 화려하다. 그 이력만큼의 질은 어느 정도 이책에 갖춰져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니다. 이책은 한 인간으로서 대처와 정치가로서 대처를 모두 조명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쓰여졌다. 이책을 읽고 나면 대충 대처가 어떤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녀가 왜 그런 정책을 내놓게 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 그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수준까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런 문제의 원인은 몇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많은 사실을 동원하여 대처라는 사람의 뼈에 살을 붙이는 작업이 되고 있지 않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저자가 한 인간으로서 대처를 느끼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책이 그리는 대처의 모습은 자신이 믿는바를 끝까지 관철하는 불도저이다. 그렇기 때문에 논쟁적인 싸움닭이지만 강한 신념의 에너지로 주위에 사람을 끌어당기는 카리스마를 풍긴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여유가 없고 각박하며 폭도 좁은 사람이다. 이책이 그리는 대처의 모습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대처의 묘사가 아니라 그 묘사까지 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까지 가기 위해 필요한 수많은 디테일들이 빠진 채 그냥 대처는 그런 사람이었다는 결론만 제시되는 느낌이 강하다.

그렇다면 대처리즘의 내용은 어떨까? 이책은 대체로 왜 대처가 그런 정책들을 내놓았는가를 대처의 내면적 동기에서 잘 설명하는 편이다. 그리고 대처리즘의 의의를 전후 영국의 역사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것도 사람으로서의 대처를 설명할 때와 같이 뼈다귀만 주어지는 느낌이지만 인간 대처보다는 이쪽이 훨씬 잘되어 잇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하다. 사실 이책이 쓰여졌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트렌드에서 대처가 의미를 갖는다. 특별히 영국에 관심이 크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우리가 지금 대처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런 것이다. 물론 이책도 그것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동시대에 같은 내용으로 집권한 레이건과의 비교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라는 큰틀에서의 대처는 건드리지 않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이책은 입문으로서는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이책 한권으로 대처에 대해 알았다는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대처란 사람을 어디에서부터 알아 나가야 할지를 아는데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1 - 인도로 가는 길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올 김용옥이란 이름은 인문학 서적에서 하나의 브랜드이다. 그것도 상당히 막강한 지명도를 가진 파워 브랜드이다. 어떤 기업이든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마케팅 이론의 상당부분은 브랜드 구축에 할애되어 있다.

브랜드가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을 건 상품에 대해 소비자는 특정한 기대를 갖는다는 것이다. 명품의류라든가 자동차같은 경우 써보기 전에는 질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벤츠니까 당연히~~ 하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벤츠라는 브랜드가 성공했다는 말이 된다.

그러면 문화시장에서 브랜드 구축에 성공한 김용옥이란 이름은 무엇을 보장하는가? 재미와 품질이다. 사실 김용옥이 쓴 동양철학서적들은 오리지널한 것은 거의 없다. 그의 말대로 김용옥은 아카데미에 묻힌 논의들을 대중이 맛보기 쉽게 포장을 바꿔 유통하는 지식의 거간꾼일 뿐이다. 물론 학자로서 그 자신의 오리지널한 이론도 잇지만 그것은 사실 거의 인기가 없고 그의 책을 읽는 사람들도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대개 모른다.

이책 역시 오리지널한 내용은 거의 없다. 이책의 내용은 석가모니가 살아 있을 때 그가 깨달은 것 그가 말한 것 그가 생각한 것 즉 후대에 그의 이름에 가탁하여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그의 오리지널한 사상이라 할 수 있는 부분만 추적해 근본불교의 교리를 재구성한 것이다.

가령 해탈, 열반이 불교의 목표라 생각한다 석가모니 생전에도 교단에서 그런 말은 쓰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불교교단에서 말하는 뜻으로 말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깨달음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깨달음의 목표는 다들 알고 있듯이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석가모니가 깨달은 내용은 연기론 하나 뿐이고 연기를 깨닫는 것이 고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것이다. 무아론이나 계정혜 3학이나 사성제등의 논의는 연기론에서 파생되는 것일 뿐이다.

이 정도의 내용이 이책의 내용을 아주 간략하게 요약한 것이다. 이런 정도는 사실 초기불교에 관한 서적이면 다들 논의하는 것이다. 어릴 때 현암사에서 나온 일본학자의 책을 본 기억이 나는데 지금부터 따지면 거의 반세기전의 책이다. 그런데도 이책의 내용과 그리 대차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면 이책을 왜 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할만하다. 사실 초기불교에 관한 서적의 내용은 일정수준의 스칼라십을 갖춘 학자가 쓴 것이라면 대차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이책은 김용옥이란 브랜드가 약속하는 품질이 있다.

김용옥이 쓴 책은 맛이 난다. 무슨 말이냐? 초기불교에 대한 책을 여러권을 보았지만 이책에 비하면 생고기를 씹는 느낌이다. 생고기를 씹어서 소화하는 것은 물론 그전에 익히는 것까지 독자 스스로 해야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김용옥의 책들은 그런 과정을 저자 스스로 다해준다. 독자는 받아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주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읽는 재미가 있게 쓰여진다는 것이 김용옥 브랜드의 장점이다. 이책도 예외는 아니다.

평점 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코, 사유와 인간 - 푸코의 웃음, 푸코의 신념, 푸코의 역사! 산책자 에쎄 시리즈 4
폴 벤느 지음, 이상길 옮김 / 산책자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출가하기 전에 산은 산이었고 물은 물이었다
내가 깨달았을 때 산은 산이 아니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
내가 진정으로 깨달았을 때 산은 산이었고 물은 물이었다

성철스님의 법어로 유명해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의 출처가 되는 일본 선사의 말이다. 이말은 중관철학의 공 개념에 관한 깨달음을 말한다. 반야심경에서도 반복되는 중관철학의 공관은서양철학식으로 말하자면  먼저 현상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를 (칸트적 의미에서) '비판'한다. 비판적으로 검토되었을 때 (우리가 인식하는) 산과 물은 더 이상 (우리가 아는) 산과 물이 아니게 된다. 20세기 초 불교가 서구학자들에게 소개되었을 때 이러한 공 개념의 첫단계는 인식론적 회의주의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책의 저자가 제시하는 푸코는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인간사고에 관한)
회의주의자이다. 푸코는 그의 역사서들을 통해 우리가 보편적 가치라 생각했던 진리, 자유, 인권, 사랑, 가족, 범죄, 정신이상 등이 역사적으로 구성된 우연의 산물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어떤 절대성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이라 가르쳤다.

푸코에 따르면 우리는 (해석학적 용어를 쓰자면) 우리 시대의 지평선(horizon, 푸코식으로는 담론)안에서만 세계를 본다. 그리고 그 지평선은 언제나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달랐었다. 그의 초기저작인 광기의 역사에서 그는 중세와 절대주의 시대에 광기에 대한 이해와 지금의 광기에 대한 이해가 달랐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마지막 저작인 성의 역사에서 그레코로만 시대와 중세, 그리고 지금의 성에 대한 이해가 달랐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우리의 이해는 우리의 지평선이 속한 시간과 공간에 우연적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차이에 대해서 푸코가 처음 발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나 (독일관념론의 전통에 선) 맑스주의 전통에서 그 차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 '진리'에 근접해가는 역사적 과정으로 파악했었다. 그러나 푸코는 지평선 사이에 어떤 가치판단을 내릴 우월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기각한다. 푸코의 세계에서 보편성도 절대성도 자리가 없다.

이러한 푸코의 회의주의는 낯선 것이 아니다. 기독교를 노예의 도덕이라고 분석한 니체('도덕의 계보')와 다를 것이 없다. 실제 푸코는 니체의 제자라고 스스로 공언했으며 그런 성격을 숨기지도 않았다.

사회과학에서 푸코가 중요하게 된 이유인 그의 권력론도 사실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를 (독일전통의) 해석학적 틀에 대입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푸코적 세계에 사는 인간도 니체적인 '권력에의 의지'를 구현하는 인간이다. 저자가 책의 후반에서 보여주는 푸코는 스스로의 사상에 충실하게 바로 그렇게 니체적으로 살았던 사람이다.

푸코는 정치적인 인간이었다. 그는 자신의 연구과정에서 알게된 감옥의 문제를 개혁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냈고 사형제에 반대했으며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을 지지했다. 그는 구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인간을 '구조의 얼간이'라 보지 않았다.

푸코식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담론이라는 (투명한) 어항에서 살며 그 어항을 통해 세계를 볼 수 밖에 없지만 어항 자체를 보지는 못한다. 담론은 인간 조건이며 인간이 진리를 알 수 없는 이유이다. 인간은 유한할 수 밖에 없고 우연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유한하기 때문에 절대진리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저항할 수 없다거나 자유를 원할 수 없다거나 윤리적 판단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지금 나의 주장이 절대적이라고 보편적이라고 주장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언제나 우리는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며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푸코는 그의 주장대로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강요하지도 않았고 어떤 거창한 대의명분 때문에 정치적 행동을 한다고 으스대지 않았다.

푸코가 이해하는 인간이란 니체식으로 말하자면 권력에의 의지 즉 (산다는 것은 행위를 의미하며 행위는 곧 권력 즉 힘을 발휘해 무언가 결과를 만든다는 것) 살아가는 존재이며 살아가기 위해 무언가를 원하는 존재자일 수 밖에 없다.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자이고 그 존재자에게 중요한 것은 살아가는 것 그리고 살아가기 위해 무언가 한다는 것이 자체이지 그 행위의 이유는 사후 합리화에 불과하다.

이책의 저자가 그리는 인간으로서의 푸코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푸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하이데거가 해석해낸 니체처럼) 사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 그 삶에 무언가 거창한 이유를 붙이고(신이라든가 선이라든가 도덕이라든가 하는 등의 지금 여기일 수 밖에 없는 삶의 구체성을 초월한 앙상한 추상적 이름들) 그 이유들로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아닐까라고 짐작해본다.

그러나 이책의 저자가 그리는 푸코는 뭔가 애매하다. 물론 푸코의 친구로서 푸코라는 인간을 알았던 저자가 푸코를 잘못 이해했다는 것이 아니다. 아마 이책의 저자가 그리는 푸코가 인간 푸코의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그 푸코의 니체적인 삶의 긍정은 니체의 한계를 그대로 따랐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기에 니체처럼 삶의 긍정이 애매한 결과가 나왔던 것이 아닐까?

이책에서 느낀 푸코에선 이 서평의 맨처음에 인용했던 마지막 단계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란 삶의 있는 그대로의 재구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중관철학의 결론은 삶은 삶이라는 것이다. 단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이해했을 때 즉 공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자유 즉 깨달음을 얻게 되며 삶을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푸코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그런 삶의 자유가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 - 중국 제국 시스템의 형성에서 몰락까지, 거대 중국의 정치제도 비판
이중텐 지음, 심규호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중국사학에서 악명 높은 논의로 왜 아시아는 정체되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아시아 정체론이 있었다. 요즘은 그런 논의를 대놓고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질문의 뿌리에 있는 문제의식은 왜 아시아에서 자본주의가 나오지 않고 저 야만스럽고 광신적이며 돼먹지 않은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나왔는가?란 자괴감이 잇기 때문이다.

일본학계에서 시작해 한국학계에도 유행했엇던 자본주의 맹아론은 아시아 정체론의 또다른 표현이었다. 그렇지 않다. 조금만 있었으면 우리도 자본주의가 대두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헛소리이다.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일어난 것은 역사적인 우연일 뿐이었으니까. 우연이 왜 우리에게도 일어나지 않았는가라고 해봐야 우는 소리일 뿐이다.

이책의 저자는 아시아 정체론의 중국판 논의를 하고 있다. 저자의 질문은 이런 것이다. 왜 중국에선 민주주의가 불가능했었는가? 이런 질문을 접하면 아마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유럽에서 민주주의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도 자본주의처럼 역사적 우연이니 이런 질문을 해봐야 쓸데없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국사교과서에 화백회의가 민주주의의 표현이었고 당쟁도 정당정치처럼 민주주의의 형식이라 볼 수 있다는 우습지도 않은 열등감의 표현과 다를 것이 없는 것 아닌가?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다. 이책의 저자가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왜 중국에선 민주주의가 없었는가란 질문을 던지는 것은 지금의 중국에서 중국인을 상대로 쓴 책이기 때문이다.

유신을 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한국적 민주주의를 운운하였기 때문에 전통과 문화에 맞는 민주주의라고 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나라의 전통과 역사에 맞지 않는 정치제도는 가능하지 않다는데 있다. 중국에서 가능한 민주주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기 위해 저자는 전통이 무엇이었던가를 묻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책에서 저자는 중국의 역사를 정치제도사에서 살펴보려 한다. 중국의 정치제도는 부족국가 이후 봉건제가 있었고 봉건제의 논리적 연장에서 진시황의 통일국가가 등장한 후 청나라가 무너지기까지 2천년동안 제국 제도가 유지되었다.

이후 중국은 진 한 수 당 송 원 명 청 으로 왕조는 교체되엇지만 제국이란 제도는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중국사의 정체론을 다시 제기한다. 기본적으로 진시황 이후 2천년동안 제국제도란 DNA는 그대로인채 이름만 바뀌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제도의 정체는 문화와 경제의 정체를 낳았다고 말한다.

200년 정도의 사이클을 가지면서 중국의 제국은 교체되었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여러가지 설명이 있어왔다. 유럽학계에서 제기되었던 것의 하나로는 태양흑점의 사이클에 따라 농업생산력이 사이클을 그리면서 농민반란을 일으켰고 왕조의 교체로 이어졌다는 논의도 있다.

농민반란에 의한 왕조교체를 일본학계에서 제도사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과대성장국가론이라는 것이 있었다. 중앙집권의 관료제 국가라는 것이 농업이라는 빈약한 산업에만 의존하는 경제가 지탱하기에는 과대하다는 것이다. 정부조직이라는 것이 가만놔둬도 여러가지 이유로 팽창하게 될 수 밖에 없다. 하인리히 법칙이다. 그러면 정부는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농민을 쥐어짜게 되고 그 착취의 정도가 견딜 수 없게 되면 반란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반대라고 말한다. 과대성장국가가 아니라 제국이란 시스템은 소농 위주의 빈약한 경제기반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제도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국은 사농공상이란 질서를 선호하며 상공업을 억제하려 든다.

저자의 논의는 일본의 다른 학설과 비슷하다. 고리타의 순환론에 의하면 제국이란 제도는 제국이란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잇는 한계가 있고 한계에 도달한 제국은 무너진다. 그리고 그렇게 무너진 제국은, 그 제국을 형성했던 사회구조나 구성원 개개인의 삶의 질은 무너지기 전보다 열악해진다.  분열은 파괴를 불러오고 파괴는 퇴보를 초래해 제국이 도달했던 한계 이전으로 되돌려 놓는다. 그리고 능력있는 사람이 나타나 다시 통합을 시도하고, 그래서 또 다시 제국이 건설된다.

저자는 제국이란 시스템에 과부하를 거는 변수를 3가지 들고 있다. 인구, 경제규모, 영토.

제국은 농업이란 저효율경제를 전제로 설계된 시스템이며 효율이 높은 시스템이 아니다. 그런데 태평성대가 지속되어 인구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이를 감당하기 위해 늘어나야 할 관료의 증가속도는  제도의 효율이 낮기 때문에 인구증가속도를 추월한다. 그러면 그 관료를 부양할 능력이상으로 팽창하면서 경제에 부하를 걸게 되고 관료집단의 규모가 통제가 어려운 정도까지 부풀면서 부패는 도를 넘어서게 된다. 영토확장도 마찬가지 효과가 잇다.

경제규모도 마찬가지이다. 제국의 통치로 장기간의 안정이 지속되면 농업이상으로 효율이 높은 상공업이 성장한다. 실제 제국의 성세에는 상공업이 도시를 중심으로 극대화된 시기엿다. 그러나 부의 증가는 재앙을 낮는다. 부의 증가는 불평등하다. 즉 빈부격차가 심화되게 된다. 그러면 토지겸병이 일어나 토호의 세력이 강성하게 되며 땅을 잃은 농민이 양산되어 유민과 도적떼가 늘어난다. 지방의 강대한 호족(이나 상인)도 난민도 모두 제국의 저효율시스템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그러면 왜 제국 시스템은 저효율인가? 사실 인구, 영토, 경제규모의 설명도 고리타의 순환론을 적용해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고 저자가 분명하게 명료화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왜 제국이 저효율인가도 저자가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를 않다.

그러나 저자는 그 이유를 푸코의 감시와 처벌과 비슷한 논리로 생각하는 것같다.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서 근대 자본주의 국가와 절대왕정 시대의 정치제도의 작동방식을 권력의 차이로 설명한다. 절대왕정까지의 정치제도는 폭력에 근거한 시스템이었다고 말한다. 권력이 폭력에 근거할 경우 저자의 말마따나 원가가 높아진다. 근대국가처럼 시민의 마음에 권력을 내면화하는 것보다 비효율적일 수 밖에 없다.

저자 역시 제국이란 제도는 폭력에 기반하는 시스템이었기에 순환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보는 것같다. 저자는 그 시스템을 예치 시스템이라 부른다.

중국의 제국 제도는 유럽의 절대왕정처럼 전제 즉 권력이 황제에게 집중되어 잇는 제도였다. 물론 폭력으로 시스템을 운용할 수는 없기 때문에 피지배자의 동의 적어도 묵인을 얻어야 한다. 그 수단이 예치시스템이었다는 것이다. 문화로 통치한다. 한무제 이후 중국제국은 모두 유교를 국시로 했다. 제국의 공식 이념이 된 유교가 말하는 것은 충과 효라는 신분질서이다.

제국은 법치가 아닌 예에 의한 통치를 말했지만 실제 이것은 복종을 말하는 것 이상이 아니었다고 저자는 본다. 반역만 하지 말고 세금만 잘 내고 입다물고 있으라는 것이 제국 제도였다는 것이다. 제국이 신민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 이상이 아니었다. 그러면 제국은 그 대가로 무엇을 주었는가?

농업은 안정을 필요로 한다. 외적의 침입이 없고 도적떼가 없으며 건달들이 횡행하지 않으면 날씨만 좋다면 태평성대이다. 제국이 농민들에게 준 것은 바로 그 안정이었고 제국의 시스템은 그 정도를 제공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였다.

안정을 제공하는 것 이상은 제국이 줄 생각도 없었고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누가 왕인지 알지 못하고 왕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가 태평성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에 대해 왈가불가하지 않기를 요구하는 유교가 국교가 된 것은 필연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이것이 동시에 재앙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제국이란 제도가 탄생할 수 잇었던 것은 춘추전국시대의 제가백가들의 사상적 혼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창조는 다양성에서 나온다. 그러나 유교 하나만 남기고 사상의 자유를 막아버리면서 중국은 제국이란 제도 이외에 다른 대안을 생각해낼 능력을 잃어버리고 2천년동안 정체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정체되었다 유럽으로부터의 충격을 받으면서 중국의 제국 제도는 무너졌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