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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친구들 1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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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도둑질이라고 해도, 은행가나, 기업가가 사업수완이라는 명목으로 부당한 이익을 얻는 것보다 작가들의 표절에 더욱 큰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마음 속에 어떤 악마가 살고 있는지 모르기는 두 가지 경우 모두 마찬가지다. 둘 다 우리는 잘 모른다. 독자가 어떤 작가의 책을 읽고, 그 문장 속에서 혹은 작품이 전달하는 이야기 속에서 위안을 얻든, 비애에 젖든, 혹은 청승스럽게 자신을 투영하든, 그 작가의 인격과 교감하고 있다는 착각(혹은 진실일지도 모르지)이 그를 모른다는 사실을 덮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표절하는 순간이나마 그 순간의 인격이 일상의 다른 인격들 예를 들어 표절을 부인하는 뻔뻔스러운 인격과는 다른, 그를 따르는 독자들에게 그 순간만큼은 거짓은 아니었음을 바래 본다. 소박한 바람이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고 일관되지만은 않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거다라는 생각에 대해 확신을 가진 건, 특별한 계기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무엇이 진짜 나일까. 진짜와 가짜는 구별되지 않는다. 우리의 인격은 다차원 우주처럼 여러 다른 모습으로 시간과 공간과 대하는 사람, 자신의 역할에 따라 달라진다. 1편 끝부분에서 매우 적은 분량으로 언급했지만, 아서 역시 여러 개의 인격을 갖는다.  가족과 인간관계 속에서 고뇌하는 아서 자신,  성공한 소설가로서의 사회적이고 대외적 위치에서 존경을 받는 도일경으로서의 아서, 상상력을 발휘하여 셜록 홈즈를 비롯한 소설을 쓰고 스키를 비롯한 스포츠 활동을 하는 아서, 그리고 심령학에 빠진 아서. 

2편이 시작되고 조지의 누명을 벗기기로 작정하면서 아서에게는 다섯번째 인격이 추가된다. 그것은 셜록홈즈의 인격이다. 그는 자신이 창조한 셜록홈즈를 그대로 따라하면서 탐정 놀이에 빠진다. 그의 비서 우드에게는 조수, 서명위조자, 골프상대, 당구 상대를 거쳐 이제 왓슨 노릇까지 부여된다. 아서는 셜럭 홈즈가 되었을 때, 가장 유쾌하고, 가장 열의에 차 있고, 독자를 즐겁게 한다. 홈즈의 말투를 흉내내고, 홈즈의 직관력을 자신에게 투영한다. 그리고, 조지의 사건을 재조사하고, 조지가 범인으로 몰렸던 이유와 똑같은 이유인 편견과 선입견에 따라 새로운 범인을 짚어낸다.

홈즈에 이입된 아서가 다시 아서로 돌아왔을 때, 홈즈는 자신이 처한 구차한 현실과 마주친다. 소설가로서, 안과의사로서, 많은 사회적 위치에서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없을만큼 유명해졌지만 아서가 처한 현실적 딜레마는 이런 것이다. 그는 자신의 권위에 순종하는 아내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아내는 폐결핵에 걸려 죽음을 예고하고 있지만, 그는 진이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옛말에 자식은 부모와 같은 운명을 갖는다는 말이 있다. 미혼모의 아이는 성인이 되기도 전에 자주 사랑에 빠지고, 폭력에 노출된 아이는 커서 다시 자신의 가족에게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아버지가 정신 병원에 입원한 동안 자신보다 10살밖에 많지 않은 남자와 관계를 맺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아서는 아내가 폐결핵에 걸려 병상에 있는 동안 그녀의 죽음을 기다리며 또 애정과 치성으로 그녀를 간호하면서, 동시에 진을 사랑한다. 병든 배우자를 두고 사랑하면 안되는 사라을 사랑하는 모자. 때로 아서는 우리 시각으로 마마보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엄마와 모든 걸 상의하고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어한다. 아서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아내를 속이고, 아내를 정성껏 간호해서 아내의 생명을 놀라울만큼 연장시키면서도, 사랑하는 진과 결혼하기 위해서는 아내가 빨리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과 그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고뇌한다. 그는 또한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내의 정신 건강을 위해, 아내가 자신의 외도를 알아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하고, 아내가 알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주의한다. 아내를 위한 선한 행동이, 아내를 기만하는 배반으로서만 가능하다는 역설에 그는 절망한다. 

 살아가기 위해 이처럼 무언가를 억눌러야 한다는 것도 그가 처한 문제의 일부였다. 신음을 억눌렀다.  사랑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 법적인 아내를 기만했다. 모두 명예라는 이름 아래, 그가 처한 문제의 역설은 이런 것이다. 바르게 행동하기 위해 잘못된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 어째서 그는 진을 울줄리에 태워 스태퍼드셔로 가서 호텔에 들어가 남편과 아내로 숙박계를 쓸 수 없는가. 어째서 그는 눈을 치뜨는 사람들에게 고고한 시선을 던질 수 없는가. 왜냐면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2권 P34)


 메이슨길의 언덕에서 그는 엄마에게 명예와 불명예는 너무나 가까와서 분리돼 있다고 생각하기가 힘들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2권 ***쪽)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는 자주 배타의 원인이 된다. 장애인, 동성애자, 유색인종, 혹 부유한 집단 내 가난한 사람이나 반대의 경우, 똑똑한 집단 내 바보이거나 그 반대의 경우, 비슷하게 생긴 아일랜드인과도 갈등과 투쟁, 대립으로 점철된 그 오랜 반목의 시간들이라는 역사를 가진 '영국신사'들에게 자신들이 지배했던 인도인이 자기 땅에 와서 자기들 교회인 영국국교의 목사로 있다면 그들 중 유색인을 몹시 싫어하는 누군가가 그들을 해하고 싶어했을 거라는 추측은 쉽다. 그만큼 서구인의 유색인 차별과 학대는 인류 역사에 선명한 자국을 남긴다. 

이 소설은 아서 코난 도일의 인생 중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해서 허구를 결합시킨 줄리언 반스의 최근 소설이다. 그 유명한 <예감은 끝나지 않는다> 외에 두 권의 줄리안 반스 책을 더 읽었는데, 둘 다 허구와 실존인물의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을 적절히 배합했었다. 특히 <10과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에는 흥미로운 역사적 사건들에 허구적 생명력이 결합된 10개의 이야기가 매우 인상적이다.  읽을 때까지는 어디까지가 실제 있었던 일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까 라는 궁금증이 일었지만, 소설적 재미를 누리기 위해 작품해설을 뒤져 보지 않고 순수하게 소설이다, 아서마저도 가공의 인물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다 읽고 해설을 읽어보니, 작가로서는 알 도리가 없는 그의 내면 세계를 제외하고는, 사건에 대한 판결문, 아서와 사건의 관련 인물들이 주고 받은 편지, 조지가 받은 협박 편지, 데일리 텔러그라프의 기사들 등 원본을 그대로 실었다고 한다. 아서 코난 도일의 아주 특별한 전기라고 해도 생각해도 될 법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에들지 사건이 갖는 역사적 의의와 상징성, 그리고 잊허진 이름 에들지에 대한 영국민들의 '신사다운' 망각을 일깨워주는 문학으로서의 기능이다. 

순교자는 스스로 자신이 순교하기를 원할 때, 자신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신을 위해, 대의를 위해 바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하는 것이 순교이다. 단지 유색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조지가 당한 어이 없는 협박과 누명과, 경찰, 법관들의 편견 속에 결정된 판결은 보상받아야 마땅하다. 개인에 대한 보상 대신 그의 사건은 영국의 법체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관습법의 폐해를 줄이고 상고 법원 체계를 개혁하게 만들었다. 줄리안 반스는 당시 지배 체계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교묘한 말장난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황당한 주장을 함으로써, 한 개인을 역사 속 순교자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갑이 잘못을 사과하지 않은 일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개인에게는 안됐지만, 그 개인에게 사과하면,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되고, 피해자에게 보상을 하고 그 부당성이 바로잡히게 될 경우 그들이 부당하게 획득한 철통같은 기득권은 모두 잃게 되기 때문이다. 요즘 문단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표절 사건에 대한 본인과 출판사의 반응이 이들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입을 꽉 다문 다른 기성 문학가들, 평론가들, 다른 출판사들, 그리고 옆구리 찔려 마지 못해 겨우 표절을 인정하는 듯한 몇몇 평론가들과 더는 버틸 수 없어 기사화한 주요 언론들, 그 속에 층층히 얼마나 많은 기득 권력의 속성이 이 일이 바로잡혀짐으로서 일어나게 될 지 모를 어떤 힘의 재분배를 두려워하고 있을지가 상상되어져서 씁쓸하다.  

*알라딘 신간평가단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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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6-23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외에서는 독자가 거짓을 쓴 작가를 고소하는 일도 종종 있던데...
신경숙 작가 입장 발표 인터뷰 보니 자신의 초창기 때부터 같이 해온 독자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 운운은 그 작가의 입장에서는 이해되지만, 여러모로 사람들의 공분을 또 불러일으키는 발언이었죠. 우리의 여러 인격이 참 바쁘게 돌아가는 삶입니다.

CREBBP 2015-06-23 12:25   좋아요 1 | URL
아직 안읽어봤지만, 늦었다는 생각입니다. 이미 한 일을 안한 일로 만들 수는 없지요. 그것으로 인해 피해를 본 원작자와 원작 번역자, 그리고 조금조금씩 이루어진 표절 비슷한 행위(시인의 시 제목을 그대로 책 제목으로 했던 점) 같은 것도 모두 포함해서 피해에 대한 보상이 `물질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물질적인 이득을 보았으니, 물질적인 보상을 해야죠. 조지가 원했던 것도 순교자로서의 자신, 영국의 법치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하는 자신으로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투옥에 대한 피해 보상입니다. 신씨의 사과문은 읽어보고 싶지도 않군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글쓰기에 있어 남의 글을 옮길 때에는 특히 출처에 민감해야겠다는 경각심을 가지게 합니다. 작가들이 못하면, 한명 한명 개인들이 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이 일상이 되고 문화가 될 수도 있겠지요.

밤늦게 써서 글이 거칠고 비문도 많았는데, 읽어주셔서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쫌 다듬고 고쳤어요

라스콜린 2015-06-23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절은 이제 독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CREBBP 2015-06-23 12:26   좋아요 1 | URL
신씨가 이제 다시 표절하지는 않겠지요. 작가가 심사한 어린 친구들의 공모작 출품작을 표절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어요. 그런것들은 그 누구도 심판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묻히고 말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