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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군인 - 가장 슬픈 이야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05
포드 매덕스 포드 지음, 손영미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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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다단한 삶에서 웃고 우는 사랑의 진실을 보고 싶을 때 읽을 책

 

 


 

 

"훌륭한 군인"은 문제적인 소설이다. 이 책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그 어려움이 읽을 만한 가치가 없는 책을 억지로 소개하려고 해서 어렵다는 것은 아니다. 아래의 수많은 기관들이 추천을 했으니 읽을 가치를 논하는 것은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다.

 

* 모던 라이브러리 선정, 영어 소설 100선

* 옵서버지 선정, 가장 위대한 소설 100선

* 영국 가디언지 선정, 필독 소설 1000선

* 하버드대학 필독서 100선

* 미국대학위원회 SAT 추천 도서

*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읽어야 할 1001권의 책

* 랜덤하우스 선정 20세기 영문 소설 100선

* 칼리지보드 추천 고등학생 필독 도서 100권

* 미국 현대문학 가운데 가장 뛰어난 소설로 전미도서상(全美圖書賞) 수상

* 선정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온 책 중 가장 훌륭한 책

 

 

소설 "훌륭한 군인"을 소개시키기 어려운 진짜 이유는 차갑기만 한 현실, 인과로 따질 수도 없는 불행이 찾아오고, 노력을 해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는 사회의 현실로 독자를 안내하기 때문이다. '힐링'이란 말과 함께 마음의 웰빙을 꿈꾸는 요즘, 그 모든 낭만과 자기긍정에 대한 노력을 포기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이 책을 통해 알아보라고 하는 건 정말 권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선택한 사랑, 버려진 사랑

 

작품은 하나의 소재를 빌려 현실의 다양함을 리얼하게 표현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죄의식을 가진 한 청년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낱낱이 파헤치듯이, "훌륭한 군인"은 이기심, 소통의 부재, 외로움을 가진 사람들이 경험하는 사랑과 성(性)도덕의 문제로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의 부조리함을 모조리 보여준다. "훌륭한 군인"에 나오는 모든 사랑 이야기들은 스스로 선택한 사랑이 어떻게 완벽하게 버려지고 자기 자신마저 망가뜨려 버리는지를 표현한다. 이와 비슷한 작품으로는 다자이 오사무의 "여자의 일생"이라는 작품이 있으니 참고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사랑에 목매는 우리가 몰락하는지 알고 싶고 받아들이고 싶다면, 우리는 우선 자신이 조금은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이지만 지나침은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사랑으로 몰락해가는 이 소설의 주인공들도 평범한 사람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아래의 인용문에 공감이 된다면 사랑한다는 것을 낭만적인 것으로 느낀다고 할 수 있을까?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독일의 철학가 벤야민의 메시아(구원자)에 대한 의견을 빌려 말하면(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참고), 구원은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낭만을 각박한 현실에 대한 구원으로 여긴다면 낭만을 추구할수록 구원은 멀어지게 된다. 사랑을 외로움과 고통에 대한 구원으로 여긴다면 끝없이 사랑을 추구하다 우리는 지쳐 쓰러질 수도 있다. 선택한 사랑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남녀 관계에 대해 어떤 말들을 하든, 사랑에 빠진 남자라면 누구나 연인에게서 새로이 용기를 얻고 난국을 돌파할 힘을 얻고 싶어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상대에 대한 욕망의 주된 원천이리라. 우리는 모두 너무 두렵고 외롭기 때문에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서 우리가 정말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어 한다.

-p.134

 

 

 

 

 

 

"훌륭한 군인"을 읽는 재미는 세 가지

 

"훌륭한 군인"이 도덕적인 부분과 철학적인 부분에 있어 어려운 문제를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도덕에 대한 고민, 철학에 대한 고민의 부분을 많이 줄이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부분도 적지 않게 있다.

 

1. 이 책에는 사랑의 온갖  종류와 사랑을 이용하는 여러 기술이 나와있다. 첫사랑, 남편 또는 아내의 불륜, 재혼, 정략결혼, 속임수 결혼, 계약 연예의 방식, 헌신, 10대 소년과 40대 남자의 사랑 등 다양하다. 이렇게 사랑에 대한 다양한 표현만을 아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울 수 있다.

 

2. 사건의 진행을 맞춰보는 추리. "훌륭한 군인"은 존 다우얼이란 화자가 회상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 사건의 전후를 추리해가며 읽는 것 또한 숨겨진 재미의 하나다.

 

3. 사랑과 삶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사람에겐 이 소설에 표현된 다양한 감정 묘사와 사건들이 성찰에 필요한 양식을 충분히 제공해줄 수 있다.

 

본 리뷰에서는 1번과 2번을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사건과 어떤 종류의 사랑이 있는지 간단한 도표로 정리하는 걸로 넘어가고자 한다. 읽다가 조금 혼란스럽다면 한 번씩 체크하고 읽는 것도 좋겠다.

 

우선 이 소설의 주인공이며 제목으로 표현된 '훌륭한 군인'은 에드워드 애쉬버넘 대령이다. 그는 점잖고 재력이 있으며,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냉수욕을 하고 8시에 아침을 먹고 오후에는 일을 하는 아주 건장해 보이는 영국 신사다. 그는 여러 사건을 일으키지만 그것은 여자를 유혹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외로워서 위로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묘사된다.

 

애드워드 애쉬버넘 대령과 함께 소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애쉬버넘 부인 레오노라는 종교적인 신념이 강하고 남편에게 순종하는 중세처녀로 묘사되나 애쉬버넘과의 갈등 속에서 점차 변화하게 된다.

 

사건의 시간 구성과 인물 간의 관계는 아래와 같다. 시간 순서로 나열되었으며 총 10여 년 동안의 이야기다.

 

 

 

      에드워드 애쉬버넘 대령 – 레오노라 =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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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워드, 어느 하녀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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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워드,  대공의 정부인 스페인 여자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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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워드, 베절 부인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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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워드, 불쌍한 메이시 메이단(후에 심장병으로 급사)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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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간 이야기 삽입- 플로렌스, 지미와 바람

      |--- 중간 이야기 삽입- 플로렌스, 지미와의 관계를 숨기고 화자 존 다우얼과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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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워드, 화자의 부인인 플로렌스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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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워드, 레오노라 친구의 외동딸인 낸시 러포드(10대 소녀)에게 연정을 품음

      (에드워드에게 있어선 진정한 사랑으로 묘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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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로렌스가 에드워드에게 다른 마음이 있음을 눈치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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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로렌스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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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오노라가 화자에게 낸시 러포드와 결혼해줄 것을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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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낸시 러포드, 레오노라, 에드워드 간의 삼각관계가 심각해질 때,

      낸시 부모의 기별로 낸시 인도로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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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워드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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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워드 자살 후 레오노라 베이헴과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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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워드 자살 소식으로 낸시 러포드 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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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낸시 러포드(22세)와 화자(45세) 결혼 준비

 

  

 

이 모든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280페이지 안에 녹아있다는 것만 해도 작품이 얼마나 함축적인지 알 수 있게 한다. 더불어, 작가인 포드 매덕스 포드는 각 인물들 간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인물 각각이 지닌 시선으로 사건을 다시 묘사해나가기도 한다. 에드워드, 플로렌스, 레오노라, 낸시의 입장에 서서 사건을 묘사해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함에 있어 객관성을 유지하며 사건을 다각화시켜 표현한다. 이런 부분은 마치 추리 소설을 읽는 것처럼 추척해가며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어쩌다 보니 1번과 2번에 대해서도 충분히 다룬 것 같아서 묘한 기분이....^^)

 

 

마음에 대해 아는 것은 내가 외롭다는 것, 끔찍하게 외롭다는 것

 

우리를 힘들게 하는 복잡한 사건, 따뜻한 위로 하나 없는 사랑 이야기로 회색빛이 가득한 소설이지만, 이 소설을 진행시키는 한 가지 내용은 '끔찍하게 외롭다는 것'이다. 이 외로움을 전달하고자 하는 따뜻한 시선을 작품을 읽으며 느끼는 것 또한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여겨진다. "훌륭한 군인"은 사회에서 점잖고 훌륭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들이 하지 않는 것은 딱 하나다. 바로, 자기 자신의 내면을 올곧게 응시하려 하지 않는 것. 작가 포드 매덕스 포드는 이런 부분을 조명하고자 아래와 같이 표현한다.

 

 

      이 세상에서 정직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사기꾼을 만나는 것 못지않게 놀라운 일이기 때문이다. 45년 동안이나 사람들과 살아 왔으면 인간에 대해 뭔가 알 만도 한데,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이는 상당 부분 사람들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현대 문명인의 습관 때문일 수도 있다. 오랫동안 지켜봤지만 정말 기묘하고 미묘한 일이다. 우리는 각자 불완전하지만 확실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판단한다.

-p.47

 

      한 가지 기묘하고 특이한 것은 같은 법칙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호텔, 기차역, 그리고 그만큼은 아니지만 크루저나 기선에서 만난 사람까지,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 그들이 내는 아주 작고 개인적인 소리나 사소한 동작만 보고도 즉시 그들이 좋은 사람인지, 사귀면 안 될 사람인지 판단을 내린다.(중략)

하지만 정말 불편하고 죽도록 짜증 나는 것은, 다들 상대방이 어떠하리라고 으레 짐작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말한 것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그들과 친해지기는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이다.

-p.48

 

      세상 그 누가 다른 사람의 마음 또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이 대강 어떻게 행동할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모든 경우에 어떻게 행동할지는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럴 수 없다면 ‘성격’이라는 말은 아무에게도 소용이 없다.

-p.174

 

포드 매덕스 포드는 사람들이 겉모습만 보고 또는 그 사람이 보통 그렇다는 성격에 맞춰 행동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이해와 친밀함을 생성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는다고 호소한다. 작품의 배경인 1900년대에나 한 세기가 지난 지금에나 이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삶을 망가뜨리고 괴롭히고 있다. 소통의 부재, 이해의 부재는 단순히 나와 타인과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내 자신을, 그것이 설령 불륜에 해당하는 욕구라고 할지라도, 나 자신을 올바르게 보지 못하게 한다. 훌륭한 군인, 에드워드 애쉬버넘이 자신도 모르게 사건을 일으키는 것은 자신이 외롭다는 것을 끝까지 발견하지 못하고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낭만적인 사랑을 추구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남겨진 두 가지 선택

 

불륜, 죽음, 도피, 실성 등 음울한 사건들이 펼쳐지는 "훌륭한 군인"은 이런 문제들에 봉착한 사람의 인생을 '비극'이 아니라 '슬픔'이라고 정의한다. 훌륭한 군인 에드워드는 불행을 의도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외로움을 바로보지 못하고 실수했을 뿐이다. 그것이 점잖고 성실하고 능력 있는 에드워드가 불행을 겪어야 하는 이유다. 왜 우리가 한 순간의 실수만으로도 큰 불행을 겪어야 하는지 알 수는 없다. 포드 매덕스 포드의 [훌륭한 군인]에서는 우리의 다음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두 가지 정도로 넌지시, 그리고 함축적으로 전한다.

 

진솔한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것과 

 

      하늘에 맹세컨대, 두 사람이 서로 정말 열렬히 사랑했다면 나는 둘을 떼어놓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경우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면 누구나 어째야 좋을지 막막할 것이다. 하지만 서로 정말 사랑했으면 나는 가능한 한 점잖은 방식으로 두 사람을 맺어주었을 것이다.

-p.107-108

 

부조리한 사회를 맹렬히 살아가는 것. 

 

      이 사건이나 다른 이야기와 관련해 자유연애를 주창하는 것도 아니다. 사회는 존속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선하고 정상적이고 약간 위선적인 사람들이 살아남고, 열정적이고 고집 세고 너무 진솔한 사람들은 자살하거나 미쳐버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 자신도 그 둘보다는 약하지만 그들과 마찬가지로 열정적이고 고집 세고 너무 진솔한 축에 속할 것이다. (중략)

그렇다. 사회는 존속되어야 하고, 토끼들처럼 번성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다.

-p.278-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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