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갑자기 그 놀라운 세계가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금복은 뭔가 속은 것처럼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오르가슴을 향해 솟아오르다 추락한 것 같은 허망함과 아쉬움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질 못했다. 그 순간 그녀는 방금 눈앞에서 펼쳐졌던 그 신기한 세계가 멈추지 않고 영원히 계속되길 간절히 원했다. 그리고 만일 누군가 그렇게 해줄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과 맞바꾸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 P78

극장에 들어가 한 짓이라곤 겨우 영화 한 편 본 것뿐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뭔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그녀는 그날의 사건이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어놓을지 짐작하지 못했다. - P79

이야기란 본시, 전하는 자의 입장에 따라, 듣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이야기꾼의 솜씨에 따라 가감과 변형이 있게 마련이다. - P82

그날 걱정은 짧은 한 순간에 영웅적인 용기와 어리석은 만용을 순서대로 모두 보여주었다. - P85

-나는, 이번에도, 내가, 그걸 다시, 막아낼 수 있을 줄 알았어.

그것은 무지의 법칙이었다. 금복은 비로소 충만한 기쁨 안에 도사리고 있던 두려움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것은 육체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단순함의 비극적 측면이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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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야, 너의 이 굵은 다리로는 누구보다도 단단하게 진흙을 이길 수 있고 이 두꺼운 팔로는 누구보다도 벽돌을 많이 들어옮길 수 있으니 그게 다 너의 복이란다. - P19

그리고 바다를 보았다. 갑자기 세상이 모두 끝나고 눈앞엔 아득한고요가 펼쳐져 있었다. 곧 울음이 쏟아질 것처럼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녀는 옆에 있는 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 P49

그녀는 언젠가 다시 고향에 돌아간다면 사람들에게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한,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물고기와 마을의 저수지보다 수십 배 더 넓고 거대한 바다에 대해 얘기를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소망을 이루기란 어려운 법, 그녀의 인생에서 그런 날은 영영 오지 않았다. - P50

그녀는 이제 자신이 어디론가 다른 세계로 건너왔으며, 따라서 앞으로 펼쳐질 인생도 이전과는 다를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 P55

그것은 그녀가 이제 막 건너온 세상의 법칙이었다. - P56

어린 나이답지 않게 금복에겐 사람을 설득하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가진 특별한 능력 가운데 하나였다. - P58

그러나 물화(物貨)의 덧없음이여! 생선장수가 그 모든 것이 한낱 허상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간은 모든 것을 바꾸어놓게 마련이다. - P60

몸길이만도 이십여 장(丈)에 가까운 고래는 등에 붙어 있는 숨구멍으로 힘차게 물을 뿜어냈다. 분수처럼 뿜어올려진 물은 달빛 속에서 은빛으로 눈부시게 흩어졌다. 그녀의 배 한복판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올랐다. 그것은 죽음을 이겨낸 거대한 생명체가 주는 원초적 감동이었다. - P65

걱정은 뭐든지 쉽게 생각했으며 바로 다음날 닥쳐올 일조차 걱정하지 않았다. 불행히도 그의 뛰어난 육체적 능력은 그를 매우 단순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 P71

금복은 세상이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다. - P71

그녀가 진정 사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녀를 불안하게 만드는 그 단순한 세계였다. 그녀는 그의 육체를 신뢰했으며 그 거대한 존재 안에서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그래서 행복했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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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 P10

‘죽음이란 건 별게 아니라 그저 먼지가 쌓이는 것과 같은 일일 뿐 - P11

멀리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건물들 사이로 우뚝 솟은 극장이었다. 그것은 마치 커다란 고래가 깊은 바다 속에서 숨을 쉬기 위해 막 솟아오른 것처럼 보였다. - P16

날 때부터 그저 목구멍에 풀칠하는 것을 오로지하여 살아온 그들이었으니 따로 인정이나 동정심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 P29

그들은 노파의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지며 지킬 만한 것이 세상에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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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윤리학은 부채와 의무의 개념을 인정한다. 그러나 부채와 의무가 전통적 도덕 이론들처럼 주도적인 사고방식의 틀을 형성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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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인식을 부담이 아니라 즐거움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 자신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일 테다. 그 사람에게 유대감을 느껴서 내가 그에게 다가가고 또 그가 나의 시선을 잡아당긴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겠다. - P83

남들에게 미소 짓는 것, 남들을 위해 문을 열어주는 것, 상대방이 어려운 입장에 있을 때 사소한 방식으로 도와주는 것,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건네주는 것 등은 때로는모르는 사람과 세상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 P83

그는 이렇게 썼다. "자존감의 가장 단단한 기반은 윤리적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하여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하는 삶이다." - P84

남들과 세상을 공유하겠다는 긍정적인 감정의 도덕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부담 혹은 지불해야 할 부채로 여기는 사람보다 더 도덕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 P85

도덕은 때때로 부담스럽고 또 괴롭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의 얼굴을 살펴봄으로써건, 상식적 예의를 통해서건, 기타 무수한 연결 관계를 통해서건 남들과 공유하는 마음에서 도덕적 행동을 한다면 우리의 도덕적 활동은 우리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더욱 풍성한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 P86

길리건은 이렇게 논평했다. "여성의 심리는 대인관계와 상호의존을 크게 강조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특징이 있다는 사실이 일관되게 발견되었다. 이것은 여성들이 좀 더 맥락을 중시하는 판단력과 남다른 도덕적 이해를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성이 자아와 도덕에 대하여 다르누개념을 갖고 있음을 고려할 때, 여성은 생활 주기에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또 다른 우선사항에 입각하여 경험을 정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P89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고, 그들과 함께 이 세상을 헤쳐나간다. 헬드에 의하면 제대로 된 도덕 사상이라면 반드시 이런 사실을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헬드는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가 가족, 사회,역사의 맥락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사실이다." - P91

칸트에 의하면, 우리는 정언명령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우리 주위에 누가 있는지, 우리의 생활을 공유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등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의무는 우리가 살고 있는 특정한 세계와 분리되어 있다.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이 정언명령을 만들어내는 원재료가 된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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