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갑자기 그 놀라운 세계가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금복은 뭔가 속은 것처럼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오르가슴을 향해 솟아오르다 추락한 것 같은 허망함과 아쉬움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질 못했다. 그 순간 그녀는 방금 눈앞에서 펼쳐졌던 그 신기한 세계가 멈추지 않고 영원히 계속되길 간절히 원했다. 그리고 만일 누군가 그렇게 해줄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과 맞바꾸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 P78

극장에 들어가 한 짓이라곤 겨우 영화 한 편 본 것뿐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뭔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그녀는 그날의 사건이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어놓을지 짐작하지 못했다. - P79

이야기란 본시, 전하는 자의 입장에 따라, 듣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이야기꾼의 솜씨에 따라 가감과 변형이 있게 마련이다. - P82

그날 걱정은 짧은 한 순간에 영웅적인 용기와 어리석은 만용을 순서대로 모두 보여주었다. - P85

-나는, 이번에도, 내가, 그걸 다시, 막아낼 수 있을 줄 알았어.

그것은 무지의 법칙이었다. 금복은 비로소 충만한 기쁨 안에 도사리고 있던 두려움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것은 육체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단순함의 비극적 측면이었다. - P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