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은 자기를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며, 연인이 생기면, 특히 상대를 진지하게 생각할 때는 더욱 조심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았다. - P303

어떤 면에서 우리는 그저 슬픔을 다루는 방식이 달랐던 것 같다. 정신적 외상을 일으키는 어떤 일이 일어나면 나는 성격상 그것에 대해 말하고 마음을 털어놓는 편이었지만 타냐는 훨씬 더 내향적이고 안으로 숨어드는 사람이었다. 타냐의 성정은 주위에 벽을 쌓고 담요를 누에고치처럼 둘둘 감은 채 소파 위에 누워 누구와도 말하지 않는 것이었다. - P305

"텔레비전에 죽음에 관한 내용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 줄 알아? 아는 사람이 죽기 전까지는 그걸 깨닫지 못하지. 그러다 누군가를 잃고 나면 사방이 온통 죽음이야. 잊으려고 애쓰는 바로 그것을 일깨우지 않는 방송을 단 하나도 찾을 수가 없어." - P313

"사람의 마음이 어떤 차원에서 저항하는 거겠죠. 누군가가 그렇게 사라져버린다는 것에 대해.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 P316

연설을 마치며 그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한 목소리로, 자식을 땅에 묻는 불가해한 과제 앞에서는 인생의 그 어떤 경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P3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 나만의 일을 하는 걸 좋아해요. 그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라." - P240

그때 내가 만들던 다큐멘터리 영화로 말할 것 같으면, 그건 진짜 프로젝트라기보다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혹은 뭘하면서 인생을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외면하기 위한 소일거리에 가까웠다. 게다가 파티에 갔을 때 현재 내가 왜 무직 상태인지를 설명할 편리한 방법이기도 했다. - P244

다른 모든 면에서 히메나는 무척 확신이 강하고 침착한 사람 같았지만, 예술에 관해 얘기할 때는 갑자기 모호해지고 작아지고 수줍어졌다. - P249

그해 봄에는 나이들어간다는 것을 한층 실감했다. 물론 거울을 보면 바로 느낄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다른 곳에서도 느꼈다. 예컨대 슈퍼마켓에서 젊은이들 사이를 걷고 있으면 아무도 나를 의식하거나 쳐다보지 않았다. 가장 큰 슬픔은 바로 그런 인정의 부재에서 왔던 것 같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현실, 유령이 되어 세상을 살아나가는 현실이었다. - P267

칼리와 내가 같은 사람과 독특한 우정을 맺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어떤 의미에서 평행하면서도 별개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기이하게 느껴졌다. - P269

가끔 나는 칼리가 이러는 모습을 보면 슬퍼졌다. 따지고 보면 사실 진짜 문제는 그 여자가 아님을 나는 알기 때문이었다. 칼리를 정말로 괴롭히는 건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고, 그것을 그 여자에 대한 온갖 미움으로 표출하고 있을 뿐이었다. - P273

한동안 우리는 히메나가 그리웠다. 대학 신입생이 처음 몇 주 동안 부모를 그리워하듯이 히메나를 그리워했다. 히메나가 우리 옆에 있다는 것, 우리 둘만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을 알 때 느꼈던 위안을 그리워했다. - P285

"가끔은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다는 생각에 매달려 너무 애쓰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가 있어, 알아? 그걸 놓아버리기가 너무 힘들어." - P287

히메나 자신이 무엇을 얻었는지는 정말로 모르겠다. 우리가 함께한 그 시간에서 자신의 아파트에서 보낸 그 길고 나른한 날들에서 어쩌면 딴생각을 하게 해 줄 누군가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거실에 타인의 몸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았는지 모른다. 나는 너무도 오래 칼리와 함께지냈기에 가끔 잊고는 했다. 독신일 때는 그것만으로도, 같은 공간에 누군가가, 타인의 몸이, 얘기를 나눌 인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 P2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게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는 느낌도 들었다. 우리 가정은 매우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내가 너무 세게 밀면 모든 게 무너져버릴지도 몰랐다. - P212

그건 몇 달 전에 시작된 우리 둘의 놀이였다. 책에서 관련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책에 따르면 부모에게 중요한 것들을 아이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좋다고, 그런 경험은 부모에게나 아이들에게나 모두 중요하다고 했다. - P214

나는 내 아버지가 내게 했을 법한 방식으로 리아의 오류를 바로잡을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 노래가 리아에게 그런 의미라면 그 의미가 맞았다. 내가 뭐라고 그걸 망가뜨리나? - P215

리아는 자기가 한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혹은 이해는 하지만 왜 벌을 받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 P217

배경에서 리아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가, 엘리엇 스미스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고, 그때 나는 갑자기 깨달았다. 우리가 다른 단계로, 좀더 깊은 단계로, 끝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저멀리 마당 끝자락은 이제 완전히 어두워졌지만 그곳 어둠 속 어딘가로 그들이 돌아왔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세탁실 벽 주위를 느린 동작으로 선회하며 아마도 그 숫자를 점점 불려가고 있을 그들이. - P230

이 식당 밖의 세상에서 내 인생은 혼란 그 자체였다. 집에 어린아이가 둘 있어서 아내와 나는 잠을 거의 못 자고 심지어 대화도 거의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 이 식당에 있으면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 P2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기엔 바로 그 친밀함이, 그 신뢰가 없었다. - P106

예전에는 그런 감각이 있었다 - 지금 생각해보니 나만 그랬을 수도 있겠다 - 어쨌든 예전에는 우리가 젊음의 어떤 절정에 도달했다는 감각, 우리가 여전히 젊다는 게 아니라 아직은 그런 척할 수 있다는, 더 젊은 자아로 슬쩍 되돌아가 다시 대학 시절의 그 사람들이 될 수 있다는 감각이 있었다. 그건 속임수이자 가장 놀이였고, 우리는 그 놀이를 자주는 아니어도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되새길 수 있을 만큼은 이어갔다. - P112

참 이상한 일이다. 마흔세 살이 되었는데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다니, 삶의 어느 시점에 잘못된 기차에 올라타 정신을 차려보니 젊을 때는 예상하지도 원하지도 심지어 알지도 못했던 곳에 와버렸다는 걸 깨닫다니. 꿈에서 깨어났는데 그 꿈을 꾼 사람이 자신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것과 비슷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래도 어떤 일들은 아직 확실히 기억할 수 있다. - P127

"부모라고 언제나 완벽하진 않아." 나는 말했다. "우리도 자주 일을 망쳐. 결함이 많은 사람들이지. 적어도 부모들 대부분은." 내가 하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도 계속 이어갔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아빠는 다른 부모들 대다수보다 더 결함이 많은지도 몰라. 하지만 네 말이 맞아. 아빠가 거기 있었어야 해. 네 말이 전적으로 맞아." - P1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끔은 뭔가 놓치고 있다거나 뒤처지고 있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보통 그런 느낌은 곧 사라졌다. - P52

나는 서른한 살이었고 내 일을 좋아했다. 내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마야와 함께 있는 한 그저 그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에, 다른 사람의 예술에 소소한 방식으로 기여하고 있다고 느꼈다. - P53

그 순간 내가 어떤 감정이었는지 지금 설명하기는 어렵다. 혼란스러운, 슬픈, 불확실한. - P56

나는 잔을 내려놓고 마야를 바라보았다. 벌써 마야가 떠나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빛이 어딘가 달랐다. 아마도 그때가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서 그런 감정을 느낀 - 이미 가버린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낀 - 내 인생의 유일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 P58

이런 점진적인 멀어짐은 그해 여름 내내 일어나고 있었지만 나는 그 순간이 되어서야 그것을 물리적으로 감지했다. - P58

매해 겨울마다 나는 나무에 물을 주고 이파리를 마대 방수포로 감싸주었다. 어쩐지 그 나무가 죽지 않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일인 것만 같았다. - P68

"아까 강연에서 그 여자가 했던 말이 자꾸 생각나. 그거 있잖아, 우리의 선택과 행동은 그것이 진정한 자아와 맺는 관계를 기준으로 판단된다는 말, 그리고 진정한 자아와 조응하는 행동이 가치 있다고 여겨진다는 말. 하지만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더이상 통제할 수 없다면 어떡하지? 자기 몸을 더이상 통제할 수 없다면?" - P87

지금까지 여러 달을지나는 동안에도 우리는 계속 기다려온 것만 같았다. 이 회색 지대를 부유하면서 어떤 미래가 올지 모르는 채로 모든 결과를 조마조마 걱정하고, 혼자 있는 순간에는 요즘 우리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어떤 느낌을 견디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몸이 엄청나게 허약하며, 갑작스럽고 불가해한 방식으로 우리를 배반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었다. - P9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