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지영 씨는 대표에게 퇴사하겠다고 말할 때도 울지 않았고, 김은실 팀장이 나중에 꼭 같이 일하자고 할 때도 울지 않았다. 매일 조금씩 짐을 챙겨 나올 때도, 환송회 자리에서도, 마지막 퇴근길에도 울지 않았다. 퇴사 다음 날, 출근하는 정대현 씨에게 우유를 데워 주고 배웅한 후 다시 침대에 들어갔다가 9시가 다 되어서 깼다. 지하철역 가는 길에 토스트 하나 사 먹어야겠다, 점심은 전주식당에서 비지찌개 먹어야지, 일이 일찍 끝나면 영화나 한 편 보고 들어갈까, 은행에도 들러서 만기된 예금 찾아야 하는데, 생각하다가 이제 출근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상은 예전과 달라졌고 달라진 일상이 익숙해질 때까지는 예측과 계획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제야 눈물이 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즈호가 어른이 되었다면…… 말이야?"

"그래. 당신은 어떨 것 같아?"

가즈마사는 가오루코가 모르겠다고 대답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그녀는 고개를 살며시 기울이고는 한동안 말이없었다.

이윽고 "전에 공원에서," 하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클로버를 찾은 적이 있어. 네잎 클로버 말이야. 미즈호가 발견했어. 엄마, 이것만 잎이 네 개 달려 있어, 그러더라. 그래서 내가, 와아 대단하네, 네잎 클로버를 찾으면 행복해진대. 그러니까 집에 가져가자, 그랬어. 그랬더니 그 아이가 뭐랬는지 알아?"

그러면서 가오루코가 가즈마사를 바라봤다.

모르겠는걸, 하고 가즈마사가 고개를 저었다.

"미즈호는 행복하니까 괜찮아. 이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여기 그냥 둘래, 그러더라고, 만난 적도 없는 누군가가 행복해지라고 말이야."

가슴 속에서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단박에 눈물샘 에 도달해 가즈마사의 시야를 흐려 놓았다.

"다정한 아이였군."

목이 메었다.

"그래, 아주 다정한 아이였어."

"당신 덕분이야."

가즈마사는 손가락 끝으로 눈물을 훔쳤다.

"고마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결국 여성에 대한 제도적인 차별은 더 견고해졌고, 여성에 대한 물리적 폭력 역시 점증했다. 대중문화의 여성 혐오는 더욱 노골적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헬조선‘의 세계에서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부당 함이나 어려움을 설명할 언어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던 여성들이 페미니즘으로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반격에 대한 반격으로서, 여성들은 다시 또 페미니즘을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집단적으로 축적된 경험의 기록으로부터 우리는 역사가단선적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여성의 역사는 계속되는 백래시에 부n딪히고, 그러면서 퇴보하기도 하고 우회하기도한다. 그럼에도 멈추지는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어진 권리와 혜택을 잘 챙기면 날로 먹는 사람이 되고, 날로 먹지 않으려 악착같이 일하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을 힘들게 만드는 딜레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래도 지영아,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얻게 되는 걸 생각해 봐. 부모가 된다는 게 얼마나 의미 있고 감동적인 일이야. 그리고 정말 애 맡길 데가 없어서, 최악의 경우에, 네가 회사 그만두게 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책임질게. 너보고 돈 벌어 오라고 안 해."

"그래서 오빠가 잃는 건 뭔데?"

"응?"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라며. 나는 지금의 젊음도, 건강도, 직장, 동료, 친구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도, 계획도, 미래도 다 잃을지 몰라. 그래서 자꾸 잃는 걸 생각하게 돼. 근데 오빠는 뭘 잃게 돼?"

"나, 나도…… 나도 지금 같지는 않겠지. 아무래도 집에 일찍 와야 하니까 친구들도 잘 못 만날 거고. 회식이나 야근도 편하게 못할 거고. 일하고 와서 또 집안일 도우려면 피곤할 거고. 그리고 그, 너랑 우리 애랑, 가장으로서…… 그래, 부양! 부양하려면 책임감도 엄청 클 거고."

김지영 씨는 정대현 씨의 말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자신의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뒤집힐지 모르는 데에 비하면 남편이 열거한 것들은 너무 사소하게 느껴졌다.

"그렇겠네. 오빠도 힘들겠다. 근데 나 오빠가 돈 벌어 오라고 해서 회사 다니는 건 아니야. 재밌고 좋아서 다녀. 일도, 돈 버는 것도."

안 그러려고 했는데 억울하고 손해 보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