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째 유사과학 상품 팔아먹는 사람들과 하는 소리가 딱 비슷했다. 뇌파를 이용한 집중력 강화니, 건강 팔찌니, 한 알 삼키는 것만으로 마음을 진정시키는 약이니 하는 물건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대부분 말도 안 되는 사기이거나 정말로 처방전 받고 약국에서 팔려야 하는 걸로 결론이 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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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가속하더라도, 빛의 속도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한참을 가도 그녀가 가고자했던 곳에는 닿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안나의 뒷모습은 자신의 목적지를 확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안나는 곧 파편이 없는 공간으로 들어섰다. 이제 그녀를 방해하는 것은 없었다. 안나의 셔틀은 점점 속도를 높이며 지구로부터 멀어져갔다. 남자는 조종실 버튼에서 손을 놓았다. 문득 남자는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먼 곳의 별들은 마치 정지한 것처럼 보였다. 그 사이에서 작고 오래된 셔틀 하나만이 멈춘 공간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아.
그녀는 언젠가 정말로 슬렌포니아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
남자는 노인이 마지막 여정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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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대체 왜 그런 일을 하시는 겁니까? 이제 편히 노후를 보내실 수도 있잖습니까."
"그건 자네의 생각대로 내가 미친 노인네라서 그런 것이지."
안나가 장난기 섞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남자는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했다.
"이제 상황 판단이 안 되는 거라네. 내가 여전히 동결 중인지, 사실 이 모든 것이 몹시 추운 곳에서 꾸는 꿈은 아닌지, 내가 사랑했던 이들이 정말로 나를 영원히 떠난 게 맞는지, 그들이 떠난 이후로 100년이 넘게 흘렀다면 어째서 나는 아직도 동결과 각성을 반복할 수 있는지. 왜 매번 죽 지 않고 다시 깨어나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고, 얼마나 많이 세상이 변했는지. 그렇다면 내가 그들을 다시만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닌지. 그럼에도 잠들어 있는 동안은 왜 누구도 나를 찾지 않고, 왜 나는 여전히 떠날 수 없는지………."
안나가 빙긋 웃었다.
"한번 생각해보게. 완벽해 보이는 딥프리징조차 실제로 는 완벽한 게 아니었어. 나조차도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지. 우리는 심지어, 아직 빛의 속도에도 도달하지 못해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우리가 마치 이 우주를 정복하기라도 한 것마냥 군단 말일세. 우주가 우리에게 허락해준 공간은 고작해야 웜홀 통로로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일 부분인데도 말이야. 한순간 웜홀 통로들이 나타나고 워프항법이 폐기된 것처럼 또다시 웜홀이 사라진다면? 그러면우리는 더 많은 인류를 우주 저 밖에 남기게 될까?"
"안나 씨."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끄셔도 소용은."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안나가 말했다.
"떠나게 해주게."
"떠나신다는 말씀은, 이제 함께 지구로 가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나는 내 개인 우주선을 가지고 슬렌포니아로 가겠네."
"농담이시죠? 말도 안 되는 얘기예요."
남자는 딱 잘라 말했다.
"혹시 저 밖에 있는 저걸 타고 가겠다는 건가요. 그건 완전히 자살 행위입니다. 저 작은 우주선으로 어딜 간다는 겁니까? 저건 지구와 위성 사이를 오가는 용도의 셔틀이잖아요. 애초에 슬렌포니아에 도달할 수 있을 리도 없고, 게다가 허가받지 않은 항해와 탐사 행위는 연방법상으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어요. 방조하는 것만으로도 처벌받게 된다고요. 그러지 마시고, 그냥…… 함께 지구로 가시죠."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안나는 단호했다. 그리고 지쳐 보였다.
"내게 마지막 여행을 허락해주면 안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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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결은 대가 없는 불멸이나 영생이 아니야.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눈을 뜨는 순간이 있어야 하고, 그 때마다 나는 내가 살아보지도 못한 수명을 지불하는 기분이 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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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도 어느 정도는 들은 바가 있나 보군. 냉동 수면은 세 단계로 구성되지. 영하 196도로 인체를 급속히 냉동하고, 같은 온도에서 수년간 안정한 상태로 동결을 유지하고, 인체가 손상되지 않도록 무사히 해동해야 하지. 당시만 해도 냉동 수면은 불완전한 기술이자 위험한 기술로여겨졌네. 세 과정 모두에서 인체가 영구적인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있었으니 말이야. 그중에서도 사람의 체액을 어떻게 대체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가장 골칫덩어리였어. 냉동 수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체 손상은 대개 체액의 특성과 관련이 있었거든. 몸 대부분을 구성하는 물이 얼면서 부피가 팽창해 세포와 조직을 손상시키고, 다시 녹을 때도 부피가 변하며 몸의 여러 조직을 파괴하는 문제를 해결해 야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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