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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억 속의 색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권장도서
미셸 파스투로 지음, 최정수 옮김 / 안그라픽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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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기억 속의 색인데 책속에 색이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이 책은 책속에 색이 있을 줄 알았다.(내맘대로 넘겨짚지 말았어야 했다) 보기 좋게 나의 예상을 빗나가버렸다. 흰바탕에 까만글만이 적혀있다. 왠지 한방 먹은 기분이였다. 색에 대한 기억, 추억, 감회, 그때 그시절의 느낌이 들었다. 색에 대한 감성이라고나 할까. 우리 기억속의 색을 색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 그건 너무도 간단한 일이다. 내가 느낀 푸르른 나무들은 실제로는 초록색일지, 연두색일지, 나무가지는 감색 비슷할지라도 내 기억속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 기분에 따라서 내가 보았던 하늘은 매번 달라지기 때문이다. 때로는 하늘이 까매서 만약에 우주에서 블랙홀을 보았다면 그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이야기와 추억과 그 시절의 이야기과 자연스럽게 색의 끈을 잡고 이어져있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이야기로 들어가서 중간쯤에는 객관적인 색이 되었다가 천연덕스럽게 개인적인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내가 색을 한정되고 단순하게 만 생각한것이다. 색 자체는 단순하지만 그것이 어느 시각,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더 나아가서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부터 시작해서 복잡미묘하기 때문이다. 색이 어려운 것임을 뒤늦게 깨닫고 있는 중이다.

색은 위험하다. 무슨 잘못이 있길래. 그것을 암묵적으로 악용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색은 그냥 이용당하는 불쌍하기 그지없는 힘도 없고 말도 못하는 색일 뿐이다. 칠하면 칠해지는대로 덧입히면 덧입혀지는 대로 자신의 색을 침범하면 침범당한채로, 이색 저색 섞여서 자신의 색을 잃어 버려도 말이다. 지구가 퍼렁별인 이유는 내 생각에는 우리의 모든것을 받아줄만큼 넉넉하기 때문인지도. 하지만 퍼렁별이 열받아서 피바다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그런 뜬금없는 생각이 들곤한다. 기억속의 색이 편파적인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다.

색은 재미있게도 자신의 색을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보통의 푸른 하늘도 우리는 '파랗다'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붉은 노을 역시 붉지만은 않다. 특히 우리의 색은 다양한 표현들이 많아서 말에 따라서 색의 맛깔스러움의 차이가 느껴진다. 우리의 언어가 별스럽게 다양한 표현들이 많아서 좋다. 색은 역사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여전히 금기시 되어 있으며 꺼려하는 색이 있으며 그색이면 만사형평이듯이 좋아를 외치며 환영하는 색이 있다. 참으로 재미있지 않은지. 일상생활속에 아무런 의식없이 침투되는 색에는 저마다 다양한 의미가 있다. 색은 사람들을 현혹한다. 멋지지 않으면 사람들의 눈길조차 끌지 못하지만 마음에 들었을때는 사달라는 아우성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추한 것은 잘 팔리지 않는다."고 레이먼드 로위는 말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예쁘게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종류의 추함은 아닐까?(113쪽) 예쁘지 않아도 좋으니 튼실하고 견고한 것이라면 나는 기꺼이 지갑을 열겠다고 말하고 싶다. 사회가 싫어한다. 이쁜것 사서 금방 질려야하고 그래야 소비경기가 살아나 경기가 일어난다는 그런식이다. 나도 세련되고 멋진 물건이 좋다. 다만 얼굴값 하느라고 기능이 부실한게 참으로 마음에 걸리지만. 이제는 서비자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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