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로 본 조선 규장각 교양총서 8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조계영 책임기획 / 글항아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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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의 또 다른 방법, 일기

  오늘은 어제와 다른 날인가, 나는 어제보다 나아진 모습인가. 이 책에서 다룬 열두 편의 일기는 세 편을 제외하고는 개인의 일상생활 전반을 기록한 생활 일기다. 일기를 쓴 기간은 짧게는 1년여부터 68년에 이르고, 일기가 시작될 때의 연령은 10세부터 80여 세까지 각기 다르다. 우리는 열두 편의 일기가 지닌 독특한 맛과 향을 풀어내어 옛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_ 머리글 中


    일기를 쓴다는 것은 바람에 흩어지는 구름처럼 소소한 일상을 선명하게 바라보고 소중히 간직하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한번쯤은 일기를 씀으로써 속내를 털어놓고 새로운 세상으로 첫발을 내디뎠던 경험이 있다. 어느 하루도 나와 똑같은 삶을 사는 이는 없으니 나의 일상을 유일무이한 것이다. 그러니 삶의 조각을 어딘가에 남기는 행위는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_ <일기로 본 조선> 8쪽 中.


  어렸을 때의 '일기'에 대한 기억은 별로 좋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교육과정 때문이었을까? 일기라는 것이 자신의 하루를 기록하는 것인데, 숙제라는 이름으로 노동의 한 영역으로 포함되어버린 탓이 크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무엇이 새로운 것이며, 무엇이 의의를 남기는 일이라는 것인지 찾아내는 것이 어려웠다. 그런데 그런것을 매일 쓰라니!!! 고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니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었다. 다시 말하면, 반복되는 일상이 적어졌다는 의미다. 덕분에 지금은 개인 다이어리에 하루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기록하고 있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일기의 대상은 우리 삶의 모든 이야기이고 일기의 도구는 종이부터 카메라, 컴퓨터, 휴대폰까지 무엇이든 가능하다. 일기의 핵심은 쓸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인내 위에 기록했기 때문에 훗날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과거를 살다 간 모든 사람이 영웅이고 역사의 주인공임을 아는 이는 무엇이든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같은 일상이라서 쓸 말이 없다는 것은 핑계였던 것이다. 부끄럽고, 아쉽다. 과거의 일상은 망각의 강을 건너고 있으니 더욱 아쉽다. 

  시간이라는 인내 위에 기록된 일기가 있다. 조선시대 열두 편의 일기를 담은 규장각 교양총서 8권 <일기로 본 조선>이 그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일기는 조선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일상생활 전반을 기록한 생활일기이다. 생활일기라는 장르상 조선왕조실록 같이 힘이 있는 자의 기록이 아니라는 점에서 새롭게 다가온다. 조선시대 생활 모습. 시대 상황을 면밀하게 관찰 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병자호란 때 선양에 볼모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은 소현세자가 남긴 '소현동궁일기'에는 풀리지 않는 의문의 죽음과 비운의 생애를 살다간 소현세자의 삶도 기록되어 있다. 



 오늘 천계의 생일이다. 잔을 부어놓고 어찌 자식들이 저희가 내게 하여야 할 일을 내가 저희에게 하게 하는가 하고 생각하니 슬픔이 그지 없다.(1638년 3월 5일)

  

  천계의 기일이라 제사를 지내고 나니 새삼스러이 마음이 그지없다. 내 자식들은 사람 일을 알 만하여 죽으니 더욱 싫다. 어려서 죽은 아이들은 생각도 아니 한다고 하겠지만 두 아들은 13년씩, 25년씩 나를 빌려 모자 되어 살뜰히 사랑하며 살다가 다 죽어지니 알지 못할 일이로다. 무슨 죄 때문에 내가 이렇게 간장을 태우게 하시는가? 어느 날, 어느 시에나 마음이 누그러져 풀릴까? 내가 인간 세상을 버린 후에야 잊을까 한다.(1638년 4월 5일)

_ 남평 조씨의 <병자일기> 中


  '병자일기'는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63세의 나이에 피란길에 오른 양반가 안주인 남평 조씨가 쓴 일기이다. 1574년에 태어나 1645년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조씨는 피란길에 오른 1636년 12월 초부터 1640년 8월까지 약 3년 10개월 동안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한 일들을 일기에 써내려가면서 역사의 현장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 밖에도 치병(治病)일기인 <정청일기>도 수록되어 있다. 내의원 의원들이 조선시대 한시의 대가였던 소재 노수신(1515~1590)을 봉양하면서 적은 일기이다. 노수신의 병색과 건강 상태, 먹은 음식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특히 건강을 관리하기 위한 음식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음식을 먹고 100보 이상 산책하며 배를 손으로 수십차례 문질러주도록 했다는 등의 건강정보도 담겨있다. 또 당대의 의원들 간 갈등을 다루고 있어서 이 또한 흥미롭다. 앙예수-허준으로 이어지는 의학은 강하고 효과 빠른 약물을 선호하지만, 몸에 무리가 오는 의학을 처방하고, 안덕수는 이와 반대로 효과는 느리지만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의학을 처방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대인시탕시일기>에는 어머니를 위해 단지혈을 드리고, 아픈 어머니 대신 자기의 목숨을 거두어가라는 효자 하진태의 효심도 기록되어 있다. 17세기 사람정치의 굴곡을 기록한 김영의 <계암일록>. 서화애호가 유만주의 <흠영>. 황사우의 <재영남일기>. 황윤석의 <이재난고>. 권계만의 기록 <내각선사일록>. 김윤식의 <음청사>. 일제강점기 윤치호의 일기 등이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의 일기가 글자를 아는 양반의 것이지만, <하재일기>는 평민이 쓴 일기라 더욱 특이하다. 당시의 문맹률로 보면 평민이 글자를 알고 쓰는 것은 흔하지 않았다. 아마도 궁중에 그릇을 조달하는 직업의 특성 때문에 글자를 익힌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재일기>는 지윤식이 쓴 일기로 주로 물건 납품과 매매에 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어음과 외상 등 당시 금융 거래의 관행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라서 더욱 흥미롭다. 

  


  조선이라는 역사. 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여러 가지 자료와 방법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일기로 본 조선>에 나오는 자료들은 승자의 기록이 아닌, 일반 양반들과 평민이 쓴 기록이다. 이러한 사료들이 역사를 이해하는 안목을 넓혀준다. 

  또한 역사 전공서적이 아니라는 점이 책을 읽어나가는데 있어서 부담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역사 용어들의 설명이 있었으면 조금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다. 

  역사를 알아야 미래가 보인다. 역사 교육이 절실해지는 요즘이다. 우리나라 역사 중 조선은 500년이라는 시간동안 정치, 사회, 경제, 문화를 발전시켰다. 일반인들이 교양으로 조선을 통달하기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부담을 덜어내기에 <일기로 본 조선>은 적격으로 보인다. 다만, 역사적 지식이 조금은 있어야 이해가 잘 된다는 점은 한계로 다가온다. 

  역사를 공부하는 입문서로써 <일기로 본 조선>이 최고라고 추천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기존의 딱딱했던 역사서와는 다르게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은 장점으로 다가온다. 무슨 자료이든, 역사를 공부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은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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쏭내관의 재미있는 한국사 기행 쏭내관의 재미있는 기행 시리즈
송용진 지음 / 지식프레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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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암기라는 선입견, 어렵다는 선입견을 깨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눈높이는 어린 학생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게 써내려갔습니다. 지금까지 역사를 몰랐더라도 많은 분들이 우리의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다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역사는 부끄러운 것이든 자랑스러운 것이든, 제대로 알아야 우리의 미래가 더 밝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들어가는 편지 中


  '3.1운동'이란 단어를 어떻게 읽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고등학생이 답했다. "삼점일 운동?". 대한민국 역사교육의 현실이다. 젊은이들의 역사의식 부재의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한국의 교육과정을 지적한다. 2009년 이후 개정된 교육과정에는 근현대사 과목이 대폭 축소되었고, 우리나라 학생들이 가장 혈안이되는 수학능력시험에서 국사와 한국사는 필수과목이 아닌지 오래되었다. 그 결과 역사를 단편적으로 기억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났다. 또한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태로 인터넷에 떠도는 편향적으로 해석된 역사를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것도 큰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최근에 벌어진 인터넷  커뮤니티사이트 일일베스트(이하 일베)의 사건만 보아도 그렇다. 5.18 민주화 운동을 광주 폭동이라고 하는가 하면, 위안부 문제를 우리나라 국민 스스로가 몸을 팔러간 사람으로 취급해버렸다. 역사의식의 부재를 떠나서, 그러한 담론의 장에서 비판의식 없이 그것을 맹신하는 분위기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이러한 사태를 바라보며 필자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 "나는 얼마나 역사의식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숨이 막혔다. 나 역시 우리나라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이과라는 이유로 국사와 한국사의 공부는 등한시했고, 수학이나 과학 같은 이과에서 대입에 유리한 과목들만 공부했다. 내 또래의 친구들은 다들 비슷한 처지일 것이다. 그렇다보니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시원한 물이 마시고 싶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쏭내관의 재미있는 한국사 기행>이었다.

  

ⓒ 쏭내관 블로그


  저자 송용진은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9년부터 우리나라 궁궐에 매료되어 본격적으로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저서로는 우리 궁궐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쏭내관의 재미있는 궁궐기행>, 우리나라 박물관 80여 곳을 직접 현장 답사한 뒤 집필한 <쏭내관의 재미있는 박물관 기행>, 궁궐의 전각에서 일어난 조선의 사건을 소개한 <쏭내관의 재미있는 궁궐기행2>, 왕릉을 통해 조선의 27대 임금들의 역사를 살펴본 <쏭내관의 재미있는 왕릉기행> 등이 있다. 현재 전국의 학교와 도서관에서 청소년과 학부모, 일반인을 대상으로 우리 역사와 문화재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화를 전공한 사람이 역사에 대한 저서를 내놓기는 쉽지 않다. 저자 송용진이 그렇다. 한국화를 전공했음에도 궁궐에 매료되어 역사를 공부하고 그것을 책이라는 결과물로 내놓았다. 그렇다보니 책에 장점도 생겼다. 전공자의 시점이 아닌, 일반인의 시점으로 최대한 쉽게 풀어서 역사를 설명한다는 점이다. '위정척사운동', '을사조약', '을미사변', '정미7조약' 등 한문으로 구성된 우리나라 역사용어를 상식이라는 생각없이 다 풀어 설명해준다는 점이다. 역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접하기 어려운 용어를 그는 당연하다는 듯 풀어서 설명한다. 왜 '을사조약'이고, 왜 '을미사변'인지를. 역사를 깊게 공부하지 않은 사람인 독자로써는 더할나위 없이 그가 고마웠다. 

  역사 해설가로 널리 알려진 저자의 이력도 한 몫을 했다. 재치 넘치는 특유의 스토리텔링과 생동감 넘치는 전개로 45억 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을 한 권의 책으로, 단숨에 돌파한다. 단편적인 역사적 사건의 나열이 아닌 역사의 흐름에 초점을 맞춘것도 강점이다. 다음 사건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그러면서도 주요 사건들을 빠짐없이 담아내면서도 시대별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왜 그러한 역사가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지며 전개해나간다. 

  신석기 시대. 고래잡이의 달인이었던 신기 덕분에 신기네 마을 사람들은 늘 배가 불렀습니다. 그런데 옆 마을 사람들은 계속 되는 고래 사냥 실패로 굶주리고 있었어요. 결국 그들은 신기네 마을을 공격해 고래 고기를 몽땅 훔쳐갔습니다. 

  화가 난 신기는 뒷마을 사람들과 연합해 고래 고기를 훔쳐간 마을을 공격해 다시 고기를 빼앗아왔고, 이에 고래 고기를 훔쳤던 마을 사람들은 주변의 이웃들과 연합해 더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다시 신기네로 쳐들어갑니다. 이렇게 작은 마을들은 각자 자기 방어를 위해 주변 마을들과 연합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마을의 규모는 점점 커져갔습니다. 

  전에는 그저 밭에 널린 과일을 따먹는 정도였지만 마을 규모가 커지며 인구가 늘어나게 되니 이제 곡식을 직접 재배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이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곡식 농사를 짓기 시작합니다. 

_ 2부 선사시대 50쪽 中

  신석기시대에 마을의 규모가 커지게 되는 이유를 스토리텔링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얼마나 이해가 잘 되는가! 이러한 식으로 역사는 진행되어 온 것이다. 그것을 저자는 잘 잡아내고 있다.


  이 책은 45억 년 지구의 역사를, 500만년 인류의 역사를, 5천년 한반도의 역사를 보여준다. 지구의 탄생부터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의 등장, 한반도의 첫 나라인 고조선과 융성한 문화를 꽃피웠던 후삼국과 발해시대, 500년 흥망성쇠의 역사를 지닌 조선왕조의 역사를 보여준다. 아울러 역사는 현재와 동떨어진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며,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에도 진행형임을 강조하며 일본강점기와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그리고 시간이 흘러 김대중, 노무현 정권까지 근현대사의 비중 역시도 다루고 있다. 


  우리는 왜 역사를 알고자 하는가? 이러한 물음에 저자는 답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섭도록 솔직하게 반복되고 있는 역사적 과오들을 바로잡기 위해서"라고. 

  혹자는 역사공부를 왜 하느냐? 현재에 충실하면 되는 것 아니냐? 라는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역사란 과거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통해 현재를, 혹은 미래를 대비하기위한 작업이다.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과오가 후대에 얼마나 나비효과가 되어 큰 태풍을 불러올지 모른다.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우리는 역사를 알아야 하고, 역사를 바르게 보는 눈이 필요하다. 이 책은 우리에게 역사란 어떤 의미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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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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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혹은 광기. 그 이름 롤.리.타


  <롤리타>는 40대 중년의 남자 험버트(Humbert)가 앳된 소녀 롤리타를 끝없이 욕망하지만 결국 그녀를 소유하려 했던 자신의 욕망이 하나의 환상이었음을 깨닫는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롤리타를 자신만의 소유로 만들려는 험버트는 경쟁의 상대로 나타난 정체불명의 사나이(퀼티)를 추적한 끝에 그를 찾아내어 살인죄를 저지른다. 왜냐하면 퀼티는 험버트가 그토록 사랑했던 롤리타를 유혹한 후 버린 남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험버트가 살해한 퀼티의 존재는 험버트의 죄를 상징한다. 그래서 험버트가 퀼티를 살해하는 것은 험버트 자신의 죄를 스스로 정화하는 의미를 담게 되는 것이다. 


  제멋대로인 아이, 자기중심적인 어머니, 헐떡거리는 미치광이-그들은 독특한 이야기 속에서 생생히 살아 숨쉬는 등장인물일 뿐만 아니라 위험한 시대 풍조에 경종을 울리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악행을 고발하는 역할도 한다. <롤리타>는 우리 모두에게-부모든, 사회사업가든, 교육자든-경각심과 통찰력을 심어줌으로써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더 나은 세대를 길러내는 일에 매진하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 13쪽 머리말 中


  작은 고백으로 글을 시작한다. 읽지 않은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롤리타>가 우선순위를 점했던 것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라는 유명작가의 책이라던가 유명고전이라는 점이 아니라 단순히 금기(taboo)시 되는 사랑을 이야기했다는 책의 주제 때문이었다.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청춘 남성에게 ‘금기’라는 단어는 왠지 모르는 욕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더불어 소설이란 장르의 특성상 빠르고 쉽고 재미있게 빠져들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도 한 몫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기대심리는 <롤리타>를 읽어나갈수록 환상이었음을 깨달았다. 욕정을 충족시켜주지도 않았고 쉽고 재미있게 빠져들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롤리타>를 읽는데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책을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가방 한구석에 전세방을 얻어 살고 있는 <롤리타>. 화려한 문장들이 나의 눈길이 떠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것이 지금의 나와 <롤리타>의 관계다.

  사랑 혹은 광기, 에로티시즘 혹은 포르노그래피. 문학사상 아름다운 스캔들로 꼽히는 <롤리타>. 그것은 과연 어떤 작품이란 말인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 1899.04.22 ~ 1977.07.02>


  <롤리타>. 그 작품 속으로

나보코프는 바람 같은 사내였다. 젊은 시절 조국을 떠난 후 단 한 번도 집을 소유한 적이 없다. 그는 나비 같은 사내였다. 그리고 “그의 정신이 낳은 나비들은 당대 대부분의 작품을 한낱 지렁이로 전락시켰다.”

 - (프레더릭 래피얼, <선데이 타임스>).


  이 작품은 살인을 저지른 중년의 한 남자 에드거 H. 험버트(Edger H. Humbert)가 감옥 속에서 지나간 일을 회고하며 반성하는 글을 배심원에게 제출하는 일기 형식의 일종의 자백서라고 볼 수 있다. 자백서 형식으로 된 이 작품은 자신의 죄를 진술하기보다는 살인을 하게 되기까지의 일들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면서 그 과정 중에 자신의 사랑에 대해 중점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특징이다.

  유럽 태생의 험버트 험버트(Humbert Humbert)는 어렸을 때 이모 시빌을 따르나 일찍 죽고 애너벨이라는 몇 달 연상의 소녀를 사랑하나 어른들에 의하여 첫사랑을 실패로 이끌고 그 기억을 잊지 못하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힌 편집광적인 인물이다. 그는 아내 발레리아(Valeria)의 불륜으로 인한 첫 결혼에 실패한 후 미국에 사는 친척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온다. 미국으로 건너와 램스데일(Ramsdale)이란 마을에서 하숙집을 찾던 중 과부 샬럿(Charlotte Haze)와 그녀의 어린 딸이 사는 집으로 오게 된 험버트는 하숙을 하면서 어린 롤리타를 은밀히 시각적으로 즐기는 생활을 한다.

  상처 속에는 독이 퍼졌고, 그래서 끝내 아물지 않았고, 머지않아 내가 성장해갈 이 문명세계에서 스물다섯 살 남자가 열여섯 살 소녀를 사랑할 수는 있지만 열두 살 소녀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31쪽

  험버트는 롤리타의 합법적인 아버지가 되기 위해 샬럿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롤리타를 격리시키려는 샬럿을 증오한다. 어느 날 그가 롤리타를 생각하며 작성한 비밀 일기가 샬럿에게 발견되고 이에 격분한 샬럿은 흥분상태에서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해 죽어버리고 만다. 이제 아무런 장애 없이 롤리타를 차지하게 된 험버트는 롤리타와 함께 미국 전역을 자동차로 여행한다.

  그들은 여행 도중 첫날밤을 ‘매혹된 사냥꾼들(The Enchanted Hunters)’이라는 호텔에서 보내게 되며 그곳에서 처음으로 육체관계를 맺는다. 이제 딸에서 험버트의 정부로 변신한 롤리타였지만 순간순간 변덕이 심해지고 다시금 아이의 특성을 나타내는 롤리타에게 험버트는 그녀가 다른 누구에게 그들의 비밀을 발설할 것을 두려워하여 만일 그녀가 당국이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고발하면 부녀자 수용소에 갇힐 것이라고 설명하며 공범 의식을 심어준다. 그들은 유명한 관광지나 호텔 등을 여행하던 끝에 비어즐리라는 동부 대학 도시로 돌아와, 롤리타는 그 곳에 있는 학교에 들어간다. 얼마 후 학교생활과 연극에 싫증난 그녀는 다시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그때부터 여행은 누군가의 감시와 추적을 받게 된다. 험버트는 누군가를 의식하지만 그의 정체를 알아낼 수 없었으며 잡을 수도 없었다. 롤리타는 이미 그 사나이와 자신들의 뒤를 쫓아 올 것을 공모하였던 것이다. 그 사나이는 마침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병원에 입원해 있던 롤리타를 빼내어 사라진다. 보이지 않던 적에게 추적을 받던 험버트는 이제 반대로 추적을 하는 입장이 된다. 그러나 험버트는 그들을 찾는데 실패하고 만다. 

  나는 이른바 ‘섹스’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렇게 동물적인 행위는 누구나 상상할 수 있다. 나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것은 더욱더 원대한 계획이다. 나는 님펫들의 위험천만한 마력을 영원히 붙잡아두고 싶은 것이다. - 215쪽

  그는 표면적으로 롤리타를 잊고 리타(Rita)라는 여자를 만나서 한동안 같이 살지만 롤리타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에게 롤리타로부터 한통의 편지가 날아든다. 그 내용은 자신은 이미 남의 부인이 되어있으니 빚을 갚을 돈을 좀 부쳐 달라는 것이었다. 주소를 밝히지 않은 편지였지만 그는 탐정 같은 추리로 그녀를 찾아간다. 그녀는 임신 중에 있었으며 그녀의 남편은 전쟁에서 오른쪽 팔을 잃고 귀가 약간 먹은 마음씨 착한 사람이었다. 험버트는 롤리타에게 다시 그에게로 돌아와 줄 것을 눈물로 간청하나 거절당한다. 결국 험버트는 롤리타를 자신의 소유로 하지 못하고, 과거에 그녀를 유혹한 후 배반했던 퀼티라는 인물을 찾아가 그를 살해한다. 험버트는 롤리타를 소유하려 했던 자신의 생각이 하나의 환상이었음을 깨닫는다.


  <롤리타>???!!!

  10대 소녀 롤리타를 영원히 잊지 못하고 사랑하는 험버트. 그의 롤리타를 향한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못하고 끝을 맺는다. 역설적으로 롤리타를 향한 험버트의 사랑은 오직 그녀가 부재하는 가운데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어머니에서 애너벨로, 그리고 애너벨에서 롤리타로 험버트의 충족되지 못하는 욕망은 끊임없이 대상을 찾지만, 결국 끝없이 대체물만을 찾는 환유적 과정을 보여줄 뿐이다.  


  <롤리타>의 주요 흐름은 화자인 험버트의 롤리타에 대한 정열을 신성화하여 기록하는 과정과 그와 같은 이야기를 예술적 작품으로 승화시켜 그 정열을 불멸케 하는 것이다. 롤리타에 대한 험버트의 뜨거운 감정은 순수한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그에게 영원한 꿈인 동시에 속박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언어의 예술적 창작과 상상력을 통한 것이기에 험버트는 열정적인 환상의 세계에 갇혀 있다. 험버트와 롤리타와의 관계가 환상과 현실, 인생과 예술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나타내듯 이 작품은 소설의 기존관습과 그것을 탈피해 새로운 소설 형식을 창조하려는 노력 사이의 갈등을 나타낸다.

  이 작품의 표면구조는 리얼리즘에 뿌리를 두고 있어 독자는 자신이 읽고 있는 것이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진실한 기록물에 근거한 것이라는 신빙성을 어느 정도 갖게 된다. 그래서 성격과 어조에 있어서 일관성을 갖고 있는 험버트의 고백을 들으면서 독자는 험버트의 용서할 수 없는 죄에 대해 동정까지 하게 된다. 퀼티가 죽는 장면과 같은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실제 인생과 같은 집중력을 갖고 있는 이 작품의 서문에는 험버트의 회고록을 입수하여 출판하게 된 경위가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 

  <롤리타>는 형식적인 전통소설의 관례를 작품의 표면 구조에 많이 차용하고 있다. 한 예로 진부한 로맨스 구조의 의도적인 사용이다. 이 구조는 보통 모험, 성취, 여행, 상실, 추적, 그리고 복수 등의 하부 구조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롤리타>는 이런 전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요정을 찾는 험버트의 열정적인 모험과 롤리타를 갖게 되는 성취감, 그들의 도피여행, 퀼티라는 연적에 의한 빼앗김, 그리고 험버트의 추적과 복수 같은 대강의 줄거리가 로맨스 구조 속에 짜여 있다.



  문학이란 다양한 구성요소들이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전체이며, 각 요소들의 기능에 의하여 다층적이고 다의적인 망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때, 복잡하고 현란한 반리얼리즘적인 기법들은 메타픽션의 특징인 ‘소설 창조’라는 주제를 부각시키고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의식적인 행위이며, 주제의 요구에 부응하는 필연적인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형식은 리얼리즘 기법과 결합되면서 의미와 구성에 대한 독자들의 관습적인 기대를 혼란시키고 독자로 하여금 의미화 과정에 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나보코프가 독자에게 전달하려한 것은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가 펼쳐놓은 문제들을 풀고 작가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 심미적 희열감의 신선한 충격이 되었다.

  나보코프는 현실이 제한하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라는 틀을 깨고 상상력과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였고, 이러한 사고의 자유로움 속에서 단어와 세계 그리고 감각이 질서를 이루는 가운데 재발견되고 융합되면서 그 자신만의 독특한 조화가 이루어지는 순간을 창조해낸다. 

  나보코프가 구축한 문학세계는 형식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다양하고, 독특한 기법에 의해 문학형식에 새로운 변화를 가능케 하면서, 감각적인 표현으로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 모색했던 아름답고 즐거운 영원의 예술세계였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예술세계는 한 번의 만남으로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2005년 개봉했던 <왕의 남자>라는 영화가 천만을 넘을 수 있었던 계기가 등장 캐릭터의 시점마다 영화가 주는 이야기가 다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광대 장생의 시점, 연산군의 시점, 혹은 광대 공길의 시점 등 어떤 등장인물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감동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롤리타>도 그렇다. 험버트의 시점에서 롤리타를 읽는 것과 롤리타의 시점으로 읽는 것, 혹은 3자의 시선으로 보는 것 등 시점에 따라서 감동이 다르게 다가온다. 어쩌면 <롤리타>가 시대의 풍파를 견뎌내며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롤리타>가 가지는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어떤가. 험버트와 함께 롤리타를 사랑할 준비가 되었는가? 아니면 롤리타와 함께 험버트를 떠날 준비가 되었는가? 혹은 도덕론자가 되어 험버트를 심판하고 싶은가? 대답은 <롤리타>를 읽어야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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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건너야 서른이 온다 - 청춘의 오해와 착각을 깨는 질문과 답
윤성식 지음 / 예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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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20대와 30대를 구분짓는가


  사막을 건너야 서른이 온다는 책의 제목. 곧 서른을 앞둔 필자에게 강렬한 물음표를 던져주었다. 

  필자가 살고 있는 20대 시절. 역사에 비유하자면 유럽 중세시대의 암흑기와 같다. '스펙'이란 단어가 20대 청춘 대학생들의 정신을 가두었고, '비정규직'이라는 하루살이 비슷한 직업이 생겨났다. 대학과정 4년간 '스펙'에 시달리다, 사회에 진출했는데 '비정규직'이란 하루살이 직업. 우석훈의 <88만원 세대>가 공감되고,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흥행가도를 달린 이유를 알 것 같다. 

  대학이 '상아탑(象牙塔· 순수 학문을 지향하는 대학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본뜻은 '속세를 떠나 조용히 들어앉아 오로지 학문이나 예술에만 잠기는 경지나 그러한 생활')의 자리에서 내려온 것도 한 몫을 한다. 2012년 지표를 보았을 때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무려 71.3%나 된다. 점차 감소하고는 있다는 점에서 몇 년 전에는 더욱 심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높은 대학진학률이 보여주는 것은 어쩌면 장점보다 단점이 많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대학의 의미는 학문을 정진하기 위해 대학을 가는 것이 아니라, 취업하기 위해 대학을 간다는 말이 사실상 더 맞는말이다.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간이역'. 좋은 간이역을 지나기 위해, 초중고 12년을 희생해가며 공부한다. 그리고 들어간 대학에선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또 4년(혹은 2년)간 희생하며 '스펙'을 쌓는다. 대체 이보다 더 지독한 사막이 어디있다고, 이러한 사막을 건너야 서른이 온다니. 이립(而立· 30세를 달리 이르는 말로 본 뜻은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서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다.)은 나이만 먹으면 되는 경지가 아니었나보다.



  당근은 채찍이 함께 있어야 한다

  윤성식 고려대학교 교수가 청춘의 오해와 착각을 깨는 질문과 답을 담은 20대 인생 상담 에세이집 <사막을 건너야 서른이 온다>를 펴냈다. "교수님, 저 고민 있어요."라며 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방문을 두드린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의기소침한 제자를 보면 나도 위로해주고 싶다. '너는 할 수 있다. 너는 뛰어나다. 너는 특별하다. 너는 참 좋은 꿈을 가졌다. 꿈을 더 크게 가져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실패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이렇게 말해주고 싶지만 나는 그 말이 거짓임을 안다. '간절히 소망하면 반드시 이루어질 거야'라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도 잘 안다. 자기 자식이라면 마땅히 쓴소리를 해야 할 상황에서 다른 젊은이들에게는 달콤한 소리를 한다면 그것은 그만큼 진정성이 결여된 말일 것이다. 설령 따뜻한 위로나 달콤한 희망이 당장 힘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반복되는 실패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는 없다.

_ <본문> 19쪽 中.

  시중에 나와있는 대다수의 자기계발서들의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일 것이다. 윤성식 교수의 말을 빌리면 '달콤한 소리'이다. 그대가 실패하는 것은 성공하기 위한 초석임을 말해주는 달콤한 말. 그렇게 희망을 품고 살아왔다. 하지만 저자는 그 말이 '환상'이고 '독(毒)'이었음을 지적한다. 위로와 희망에 중독되면 현실에 대한 진단은 오진이 나올 수도 있다. 당근과 채찍이라는 말이 있듯, 당근이 있으면 채찍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말(馬)도 잘 달린다.

  


    인생에 힘들지 않은 시기는 거의 없다

    인생에 힘들지 않은 시기는 거의 없다. 항상 바쁘거나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매순간 순간을 놓치지 말자. 힘든 일과 공존하며 인생을 만끽하는 연습을 해보자. 그러면 분명 인생은 보다 풍요로워질 것이다.

_ <본문> 213쪽 中.

  책의 구성은 힘들어하는 청춘들로부터 해결방안으로 나아간다. 1장 '나는 과연 나를 제대로 보고 있는가'를 통한 자신의 성찰. 2장 '왜 좌절하고 실패하는가'를 통한 실패원인분석. 3장 '다시는 쓰러지지 않기 위하여'를 통해 성공을 가는 방법을. 4장 '이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를 통해서 실천의 방법. 5장 '담담하게 물 흐르듯 최선을 다하는 삶'에서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제시한다. 

  이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1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 자신의 좋은 점에 대해서 너무 들뜨지 않고 나쁜 점에 대해서 너무 좌절하지도 않는 '고요하고 냉정하며 흔들리지 않는 시선'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과대평가와 과소평가 없이 나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_ <본문> 26쪽 中.

  자신을 바라보는 눈. 그것이 이 책이 20대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자아성찰이 비로소 되었을 때 남을 바르게 바라 볼 수 있다. 20대라면 그것을 자아성찰을 위한 사막여행이 필요하고, 이러한 경험을 하지 못하고 30대, 혹은 40대에 이르렀다면 20대의 마음으로 돌아와 사막여행을 떠나야 한다.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방법의 목적이지 않을까.

  하지만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삶'을 살아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20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버거운 일이다. 스펙싸움에서 그것마저 하지 않는다면, 취업과 멀어지는 빠른 길이고,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 남을 밟고 올라서는 일이 습관이 되어야 한다. 정말로 속세를 벗어나는 삶을 살아야 마음이 편안한 것일까. 

  

  저자는 이런 것들을 이겨내기 위하여 '비전과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비전과 전략은 사람만의 스토리텔링이다. 좋은 직업과 좋은 사람의 기준은 시대마다 다르다.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 사람이 인생을 제대로 산 사람이다.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삶. 그런 것이 이상적인 삶이 아닐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책의 편집이다. 이야기의 흐름이 주제별 심화가 아니라, 저자의 자서전 같았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비전과 전략이 중요한 것은 스토리텔링이다. 스토리텔링이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가지려면 저자의 삶을 이야기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책에서 청춘들의 고민해결에서 많은 부분 저자의 실제 삶의 이야기가 나온다. 군대 제대한 후, 대학원 진학을 앞둔 고민들 등. 저자가 고민해오며 살아왔던 이야기를 순서대로 나열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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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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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생에 정답이 어디있어?


  "인생은 몇 번의 강의, 몇 권의 책으로 바뀔 만큼 시시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인생을 두고 이 여덟 가지를 함께 생각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데서나 꽃들이 보인다. 아파트 담장에 여러 꽃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각진 콘크리트더미 새로 보이는 꽃들이 방글방글 웃는다. 무심히 눈길을 던지는데, 조금 흥겨워진다. 땅바닥을 꿈틀꿈틀 기어다니는 호랑이 애벌레와 노랑 애벌레, 둘은 이제 막 삶의 세계로 진입한다. 세상이 뭔지, 그 세상에서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모른 체 눈앞의 일들을 온몸으로 겪는다. 이 광경의 환희는, 애벌레가 아름다운 나비가 된다는 사실이다.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고치로 꽁꽁 자신을 싸매 시간을 겪고 나면, 스스로 상상도 못해본 존재로 탈바꿈한다는 것. 가히 혁명적인 일이다.

  어쩌면 이 험난한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우리도 애벌레와 같은 과정을 겪는지 모른다. 사람들 하나하나, 개인마다 저마다의 고치가 다 들어있다는 것을. 그 고치를 잘 뽑아서 시련을 견뎌내면, 아름다운 나비가 된다는 것을. 동일한 고치가 아니라 다 다른 저마다의 고치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 나아가 그렇게 나비가 되면, 자유롭게 훨훨 날아서 신도 나겠지만,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도. 꽃은 나비에게 꿀과 휴식을 선사하고, 나비는 또다른 꽃의 탄생을 책임지듯, 꽃과 나비처럼 모든 존재가 서로에게 의미가 되는 것. 그것이 사람의 인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이 힘들다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눈에 밟힌다. 고치의 시절을 지나 나비가 된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아니면 화려한 나비가 되지 못할까봐 두려워했을까. 여러가지 원인을 두고, 무엇이 더 탁월한 원인인지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의미 없다. 인생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고, 이러한 인생의 풍파를 견디고 헤쳐나가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꽃과 나비처럼 모든 존재가 서로에게 의미가 있듯.



  제가 <책은 도끼다>를 썼던 가장 큰 이유도 그와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주변에 좋은 것들은 많은데 좋은 것을 보는 눈이 없었어요. 제가 뭘 창출하겠습니까? 다만 내 주변에 널린 수많은 좋은 텍스트들을 찾아낸 눈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딱 거기까지였죠. 좋은 것은 이렇게 많은데 보는 눈이 없으니, 텍스트를 중심으로 見을 이야기 한 것이 <책은 도끼다>였다면 이번에는 책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도 매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_ <본문> 124쪽.

  <책은 도끼다>로 온·오프라인 서점계의 인문학 코너를 강타한 광고인 박웅현씨가 <여덟 단어>라는 신간을 통해 돌아왔다. <여덟 단어>에 대한 기대치는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선발 등판하는 경기만큼이었다.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좋은 성적을 내서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이 그것이다. 그만큼 <책은 도끼다>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울림의 공유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었다.

  <여덟 단어>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 번쯤 마주쳤을 여덟 가지 가치에 대해 저자 자신의 경험과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독자와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마련한 책이다. 책을 통해 저자는 인생을 대하는 자세를 조언한다. 물론 정답을 던지진 않는다. 정답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인생은 몇 번의 강의와 책으로 바뀔만큼 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후배들이 저를 믿고 인생 고민을 많이 털어놓습니다. 이 사람이랑 결혼할까요? 하지 말까요? 유학을 갈까요? 회사를 더 다닐까요? 마치 둘 중의 하나가 정답인 것처럼 물어요. 그런데 저는 정답을 말해주지 못합니다. 그런 건 없으니까요. 그 남자랑 결혼하는 게 정답이 될 수도 있고 오답이 될 수도 있어요. 지금 유학을 가는 게 정답이 될 수도 있고 오답이 될 수도 있어요. 모든 선택에는 정답과 오답이 공존합니다. 그러니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고민하지 말고 선택을 해봤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옳게 만드는 겁니다.

_ <본문> 141 쪽.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나이 먹어 윗것이 되었을 때 권위를 부리지 않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권위는 우러나와야 하는 거예요. 내가 이야기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인격적으로 감화가 돼서 알아줘야 하는 거예요. 그게 권위입니다. 절대 긴 복도가 권위가 되어서는 안 되는 거죠.

_ <본문> 166쪽.


  저자는 <여덟 단어>를 통해서 왜 삶의 기준을 바깥이 아니라 자신에게 두어야 하는지, 고전 작품을 왜 궁금해해야 하는지, 동의하지 않는 권위에 굴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현재의 행복을 유보하지 않고 지금의 순간을 충실히 살아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 삶의 본질을 추구하는 그의 이야기는 우리가 자신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頓悟漸修(돈오점수)

  돈오점수, 불교용어지요. 돈오(頓悟), 갑작스럽게 깨닫고 그 깨달은 바를 점수(漸修), 점차적으로 수행해 가다, 라는 뜻입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말입니다. 돈오돈수, 점오점수, 점오돈수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여덟 번의 시간이 여러분에게 돈오점수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소나기가 아니라 가랑비 같은 시간이 되어 천천히 젖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_ <본문> 9쪽.

  자존, 본질,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인생. 이 여덟가지 키워드로 저자가 제시하는 인문학적 삶의 태도 역시 하나의 조언일 뿐이다. 여덟 단어로 조각되어 있지만 모든 단어는 결국 연결되면서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요약하자면 '묵묵히 자신을 존중하면서(자존), 클래식을 궁금해 하면서(고전), 본질을 추구하고(본질) 불합리한 권위에 도전하고(권위), 현재를 가치 있게 여기고(현재), 깊이 봐 가면서(견), 지혜롭게 소통하면서(소통) 각자의 전인미답의 길을 가자(인생)'라고 이야기 된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새로운 질문이 되어 우리가 자신의 인생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니 무심코 시청(視聽)하던 것들을 견문(見聞)의 자세로 바라보게 되어버렸다.

  뿌리가 깊지 못한 나무는 바람에 쉽게 뽑힌다. 사람의 뿌리는 생각이다. 생각이 깊지 못한 사람은 쉽게 흔들리고, 쉽게 무너진다. 그렇다면 생각을 깊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인문학적 마인드로 자신의 철학이라는 탑을 세우는 것이다. '힐링'이라는 키워드 다음에 나온 단어가 '인문'이다. 

  지치고 괴로운 마음을 힐링 했는데, 또 괴롭다. 원인을 제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지치고 괴롭지 않으려면 인문학적 삶의 태도면 된다. 그래서 '힐링' 다음이 '인문'이다.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세상의 풍파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인문학적인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인문학적인 자세로, 세상의 풍파를 견디며 고치에서 나비로 나아가자. 그거면 한 세상 잘 살다 갔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들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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