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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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혹은 광기. 그 이름 롤.리.타


  <롤리타>는 40대 중년의 남자 험버트(Humbert)가 앳된 소녀 롤리타를 끝없이 욕망하지만 결국 그녀를 소유하려 했던 자신의 욕망이 하나의 환상이었음을 깨닫는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롤리타를 자신만의 소유로 만들려는 험버트는 경쟁의 상대로 나타난 정체불명의 사나이(퀼티)를 추적한 끝에 그를 찾아내어 살인죄를 저지른다. 왜냐하면 퀼티는 험버트가 그토록 사랑했던 롤리타를 유혹한 후 버린 남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험버트가 살해한 퀼티의 존재는 험버트의 죄를 상징한다. 그래서 험버트가 퀼티를 살해하는 것은 험버트 자신의 죄를 스스로 정화하는 의미를 담게 되는 것이다. 


  제멋대로인 아이, 자기중심적인 어머니, 헐떡거리는 미치광이-그들은 독특한 이야기 속에서 생생히 살아 숨쉬는 등장인물일 뿐만 아니라 위험한 시대 풍조에 경종을 울리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악행을 고발하는 역할도 한다. <롤리타>는 우리 모두에게-부모든, 사회사업가든, 교육자든-경각심과 통찰력을 심어줌으로써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더 나은 세대를 길러내는 일에 매진하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 13쪽 머리말 中


  작은 고백으로 글을 시작한다. 읽지 않은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롤리타>가 우선순위를 점했던 것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라는 유명작가의 책이라던가 유명고전이라는 점이 아니라 단순히 금기(taboo)시 되는 사랑을 이야기했다는 책의 주제 때문이었다.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청춘 남성에게 ‘금기’라는 단어는 왠지 모르는 욕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더불어 소설이란 장르의 특성상 빠르고 쉽고 재미있게 빠져들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도 한 몫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기대심리는 <롤리타>를 읽어나갈수록 환상이었음을 깨달았다. 욕정을 충족시켜주지도 않았고 쉽고 재미있게 빠져들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롤리타>를 읽는데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책을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가방 한구석에 전세방을 얻어 살고 있는 <롤리타>. 화려한 문장들이 나의 눈길이 떠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것이 지금의 나와 <롤리타>의 관계다.

  사랑 혹은 광기, 에로티시즘 혹은 포르노그래피. 문학사상 아름다운 스캔들로 꼽히는 <롤리타>. 그것은 과연 어떤 작품이란 말인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 1899.04.22 ~ 1977.07.02>


  <롤리타>. 그 작품 속으로

나보코프는 바람 같은 사내였다. 젊은 시절 조국을 떠난 후 단 한 번도 집을 소유한 적이 없다. 그는 나비 같은 사내였다. 그리고 “그의 정신이 낳은 나비들은 당대 대부분의 작품을 한낱 지렁이로 전락시켰다.”

 - (프레더릭 래피얼, <선데이 타임스>).


  이 작품은 살인을 저지른 중년의 한 남자 에드거 H. 험버트(Edger H. Humbert)가 감옥 속에서 지나간 일을 회고하며 반성하는 글을 배심원에게 제출하는 일기 형식의 일종의 자백서라고 볼 수 있다. 자백서 형식으로 된 이 작품은 자신의 죄를 진술하기보다는 살인을 하게 되기까지의 일들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면서 그 과정 중에 자신의 사랑에 대해 중점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특징이다.

  유럽 태생의 험버트 험버트(Humbert Humbert)는 어렸을 때 이모 시빌을 따르나 일찍 죽고 애너벨이라는 몇 달 연상의 소녀를 사랑하나 어른들에 의하여 첫사랑을 실패로 이끌고 그 기억을 잊지 못하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힌 편집광적인 인물이다. 그는 아내 발레리아(Valeria)의 불륜으로 인한 첫 결혼에 실패한 후 미국에 사는 친척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온다. 미국으로 건너와 램스데일(Ramsdale)이란 마을에서 하숙집을 찾던 중 과부 샬럿(Charlotte Haze)와 그녀의 어린 딸이 사는 집으로 오게 된 험버트는 하숙을 하면서 어린 롤리타를 은밀히 시각적으로 즐기는 생활을 한다.

  상처 속에는 독이 퍼졌고, 그래서 끝내 아물지 않았고, 머지않아 내가 성장해갈 이 문명세계에서 스물다섯 살 남자가 열여섯 살 소녀를 사랑할 수는 있지만 열두 살 소녀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31쪽

  험버트는 롤리타의 합법적인 아버지가 되기 위해 샬럿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롤리타를 격리시키려는 샬럿을 증오한다. 어느 날 그가 롤리타를 생각하며 작성한 비밀 일기가 샬럿에게 발견되고 이에 격분한 샬럿은 흥분상태에서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해 죽어버리고 만다. 이제 아무런 장애 없이 롤리타를 차지하게 된 험버트는 롤리타와 함께 미국 전역을 자동차로 여행한다.

  그들은 여행 도중 첫날밤을 ‘매혹된 사냥꾼들(The Enchanted Hunters)’이라는 호텔에서 보내게 되며 그곳에서 처음으로 육체관계를 맺는다. 이제 딸에서 험버트의 정부로 변신한 롤리타였지만 순간순간 변덕이 심해지고 다시금 아이의 특성을 나타내는 롤리타에게 험버트는 그녀가 다른 누구에게 그들의 비밀을 발설할 것을 두려워하여 만일 그녀가 당국이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고발하면 부녀자 수용소에 갇힐 것이라고 설명하며 공범 의식을 심어준다. 그들은 유명한 관광지나 호텔 등을 여행하던 끝에 비어즐리라는 동부 대학 도시로 돌아와, 롤리타는 그 곳에 있는 학교에 들어간다. 얼마 후 학교생활과 연극에 싫증난 그녀는 다시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그때부터 여행은 누군가의 감시와 추적을 받게 된다. 험버트는 누군가를 의식하지만 그의 정체를 알아낼 수 없었으며 잡을 수도 없었다. 롤리타는 이미 그 사나이와 자신들의 뒤를 쫓아 올 것을 공모하였던 것이다. 그 사나이는 마침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병원에 입원해 있던 롤리타를 빼내어 사라진다. 보이지 않던 적에게 추적을 받던 험버트는 이제 반대로 추적을 하는 입장이 된다. 그러나 험버트는 그들을 찾는데 실패하고 만다. 

  나는 이른바 ‘섹스’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렇게 동물적인 행위는 누구나 상상할 수 있다. 나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것은 더욱더 원대한 계획이다. 나는 님펫들의 위험천만한 마력을 영원히 붙잡아두고 싶은 것이다. - 215쪽

  그는 표면적으로 롤리타를 잊고 리타(Rita)라는 여자를 만나서 한동안 같이 살지만 롤리타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에게 롤리타로부터 한통의 편지가 날아든다. 그 내용은 자신은 이미 남의 부인이 되어있으니 빚을 갚을 돈을 좀 부쳐 달라는 것이었다. 주소를 밝히지 않은 편지였지만 그는 탐정 같은 추리로 그녀를 찾아간다. 그녀는 임신 중에 있었으며 그녀의 남편은 전쟁에서 오른쪽 팔을 잃고 귀가 약간 먹은 마음씨 착한 사람이었다. 험버트는 롤리타에게 다시 그에게로 돌아와 줄 것을 눈물로 간청하나 거절당한다. 결국 험버트는 롤리타를 자신의 소유로 하지 못하고, 과거에 그녀를 유혹한 후 배반했던 퀼티라는 인물을 찾아가 그를 살해한다. 험버트는 롤리타를 소유하려 했던 자신의 생각이 하나의 환상이었음을 깨닫는다.


  <롤리타>???!!!

  10대 소녀 롤리타를 영원히 잊지 못하고 사랑하는 험버트. 그의 롤리타를 향한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못하고 끝을 맺는다. 역설적으로 롤리타를 향한 험버트의 사랑은 오직 그녀가 부재하는 가운데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어머니에서 애너벨로, 그리고 애너벨에서 롤리타로 험버트의 충족되지 못하는 욕망은 끊임없이 대상을 찾지만, 결국 끝없이 대체물만을 찾는 환유적 과정을 보여줄 뿐이다.  


  <롤리타>의 주요 흐름은 화자인 험버트의 롤리타에 대한 정열을 신성화하여 기록하는 과정과 그와 같은 이야기를 예술적 작품으로 승화시켜 그 정열을 불멸케 하는 것이다. 롤리타에 대한 험버트의 뜨거운 감정은 순수한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그에게 영원한 꿈인 동시에 속박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언어의 예술적 창작과 상상력을 통한 것이기에 험버트는 열정적인 환상의 세계에 갇혀 있다. 험버트와 롤리타와의 관계가 환상과 현실, 인생과 예술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나타내듯 이 작품은 소설의 기존관습과 그것을 탈피해 새로운 소설 형식을 창조하려는 노력 사이의 갈등을 나타낸다.

  이 작품의 표면구조는 리얼리즘에 뿌리를 두고 있어 독자는 자신이 읽고 있는 것이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진실한 기록물에 근거한 것이라는 신빙성을 어느 정도 갖게 된다. 그래서 성격과 어조에 있어서 일관성을 갖고 있는 험버트의 고백을 들으면서 독자는 험버트의 용서할 수 없는 죄에 대해 동정까지 하게 된다. 퀼티가 죽는 장면과 같은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실제 인생과 같은 집중력을 갖고 있는 이 작품의 서문에는 험버트의 회고록을 입수하여 출판하게 된 경위가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 

  <롤리타>는 형식적인 전통소설의 관례를 작품의 표면 구조에 많이 차용하고 있다. 한 예로 진부한 로맨스 구조의 의도적인 사용이다. 이 구조는 보통 모험, 성취, 여행, 상실, 추적, 그리고 복수 등의 하부 구조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롤리타>는 이런 전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요정을 찾는 험버트의 열정적인 모험과 롤리타를 갖게 되는 성취감, 그들의 도피여행, 퀼티라는 연적에 의한 빼앗김, 그리고 험버트의 추적과 복수 같은 대강의 줄거리가 로맨스 구조 속에 짜여 있다.



  문학이란 다양한 구성요소들이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전체이며, 각 요소들의 기능에 의하여 다층적이고 다의적인 망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때, 복잡하고 현란한 반리얼리즘적인 기법들은 메타픽션의 특징인 ‘소설 창조’라는 주제를 부각시키고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의식적인 행위이며, 주제의 요구에 부응하는 필연적인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형식은 리얼리즘 기법과 결합되면서 의미와 구성에 대한 독자들의 관습적인 기대를 혼란시키고 독자로 하여금 의미화 과정에 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나보코프가 독자에게 전달하려한 것은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가 펼쳐놓은 문제들을 풀고 작가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 심미적 희열감의 신선한 충격이 되었다.

  나보코프는 현실이 제한하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라는 틀을 깨고 상상력과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였고, 이러한 사고의 자유로움 속에서 단어와 세계 그리고 감각이 질서를 이루는 가운데 재발견되고 융합되면서 그 자신만의 독특한 조화가 이루어지는 순간을 창조해낸다. 

  나보코프가 구축한 문학세계는 형식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다양하고, 독특한 기법에 의해 문학형식에 새로운 변화를 가능케 하면서, 감각적인 표현으로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 모색했던 아름답고 즐거운 영원의 예술세계였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예술세계는 한 번의 만남으로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2005년 개봉했던 <왕의 남자>라는 영화가 천만을 넘을 수 있었던 계기가 등장 캐릭터의 시점마다 영화가 주는 이야기가 다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광대 장생의 시점, 연산군의 시점, 혹은 광대 공길의 시점 등 어떤 등장인물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감동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롤리타>도 그렇다. 험버트의 시점에서 롤리타를 읽는 것과 롤리타의 시점으로 읽는 것, 혹은 3자의 시선으로 보는 것 등 시점에 따라서 감동이 다르게 다가온다. 어쩌면 <롤리타>가 시대의 풍파를 견뎌내며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롤리타>가 가지는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어떤가. 험버트와 함께 롤리타를 사랑할 준비가 되었는가? 아니면 롤리타와 함께 험버트를 떠날 준비가 되었는가? 혹은 도덕론자가 되어 험버트를 심판하고 싶은가? 대답은 <롤리타>를 읽어야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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