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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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미문학중 가장 와 닿는 공포소설. "누가 네 주인이야? 누가 네 주인이냐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만가지 일을 접하고 실제로 경험한다. 도덕책에 소개되는 윤리적인 이야기들도 있고, 도덕책에서 금기시하는 비윤리적인 일들도 있다. 사실 문화마다 도덕의 가치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마이클 샌델같은 교수들이 정의에 관한 책이나, 도덕에 관한 책들이 잘 팔리는 이유다. 나라마다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 문화가 추구하는 도덕적 가치들도 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러가지 도덕적 가치중에, 인간이라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도덕가치가 있지 않을까? 칸트는 '선의지'라고 정의하기도 하였다. 


  아마도 최상위의 공통 도덕규범중의 하나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말것"일 것이다. 살인이 그 영역에 속할 것이다. 어느나라, 어느 문화에서도 타인을 살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살인이라는 개념에서 항상 3자의 역할이었던 것 같다. 살인을 한 사람이 되기는 힘들것이고, 살인을 당한다면 지금 이 글을 읽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인이라는 개념에는 항상 3자적인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매년 노벨상 후보라는 조이스 캐럴 오츠의 책 『좀비』는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통해 살인자의 경험을, 살인자의 입장을 바라볼 수 있는 책을 써냈다. 이 책을 읽노라면 살인자의 기분을 조금은 느낄 수 있다. 


  단순한 살인자의 이야기는 아니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이코패스의 이야기이다. 살인에 대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부류. 그래서 공포스럽다. 인간의 내면을 여과없이 나타낸다. 죽이고 싶으면 양심의 거부를 느끼지 못하고 실행한다. 서슴없고, 계획적이고, 본능적이다. 자신의 펫(여기서는 좀비로 불린다)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에게 전두엽제거 수술을 시행한다. 수술이 실패하면 사람은 죽는다. 하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구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이기적인가.


  영미문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중산층 미국 백인이 억압받는 현실속에서 나름의 자기 본능 표현이라고들 한다. 인간의 본질을 말해주는 소설. 사이코패스처럼 정신병을 앓는 사람이 오히려 사람 본성에 더 가깝기 때문에 그런것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그런 소설. 


  정상적인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러한 상태가 문제라는 것을 안다. 여느 자기 계발서처럼 이런것 좋다, 이런것이 좋다. 라고 말하기 보다는 안좋은 사례 하나를 던져줌으로써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더욱 효과적인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바로 그렇다. 살인자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본능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것이 왜 문제인가를 깨닫게 한다. 


  결과적으로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이 읽기엔 무슨 소리인가 싶다. 영미문학적인 배경지식이 있으면 상당히 더 재미있을 것이다. 당시 미국인들의 삶이나, 책의 배경같은 것을 어느정도 파악하고 책을 펼치는게 책을 읽었을 때 한개를 얻을 것을 열개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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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뿌리는 자 스토리콜렉터 8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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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으로 쌓아올린 모래성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복수와 욕심에 찌든 얼굴은 가면을 벗는다."

 

"그녀는 항상 사람들을 속이고 거짓말을 했어요.

그러다 나도 언젠가부터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건 다른 사람들에게 옮아요. 마치 전염병처럼."

 

  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 5번째 작품이다. 하지만 필자는 앞서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란 책밖에 보지 않아서 이게 2번째 작품이다. 사실 시리즈이긴 하지만 많은 연관성은 없다. 이 책이 처음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의 부분은 다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작을 읽을 필요성이 없다는건 미리 밝혀둔다.

 

  역자는 후기에 밝힌다. 이 책이야 말로 노이하우스의 집대성인 책 같다고. 백설공주밖에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공감함에 고개를 끄덕인다. 방대한 양 답게 여러가지 사건들이 서로의 관계를 물고 늘어지면서 결국엔 하나로 합쳐진다. 추리소설의 대작으로 꼽히는 셜록홈즈 시리즈와 많이 흡사하다. 뜻하지 않는 사건이 벌어지고, 순조로운 수사, 수사의 위기, 하나의 실마리를 통해 빠른 사건의 전개, 사건의 내막. 이러한 순서이다. 많은 추리소설들이 이러한 구조를 따른다. 신급의 탐정이 위기하나 없이 사건을 척척 해결하는건 추리소설의 장르를 무협지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수사의 위기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추리소설들의 호불호는 이 시점에서 판결난다. 얼마나 사건이 매끄럽게 해결되느냐, 논리적으로 구성이 탄탄하느냐는 일반독자에게는 관심외이다. 어느 수준의 경계등급을 먹일만큼의 위기가 찾아오느냐. 등장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이 독자를 글속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마치 탐정이 된듯. 그런점에서 노이하우스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글의 구성이 재미진다. 등장인물 역시 무엇인가의 허점들을 가지고 있다. 백설공주에서도 그랬고, 바람을 뿌리는 자에서도 그렇다.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주인공들. 개인의 이기적인 입장때문에 사람의 관계는 뒷전이다. 무엇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사람들. 마음편히 손가락질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나의 내면에도 잠들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노이하우스는 나의 공감을, 나의 마음을 글 속에 잡아두는데 성공했다!

 

  한가지 마음에 안들었던 것은 이번 작품에서는 경찰역할이 너무 미숙하게 나왔다는 점이다. 마르크이 경우도 그렇고, 니카의 경우도 그렇고. 헛점투성이의 역할이 많아서 어찌보면 극을 전개시키다 보니 해결을 위한 필수불가결의 요소로 갑작스럽게 제시한 부분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부 추리영화의 경찰관들을 보면 극 내내 범인을 못찾다가 갑작스럽게 신의 계시를 받아 마지막 10분에 사건을 다 해결한다!) 그래도 그것의 반전의 묘미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음..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자 하는 분들은 『백성공주에게 죽음을』을 먼저 읽고 온다면 계속해서 등장하는 형사들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충분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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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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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데미안의 시작을 장식하는 문구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며 누구나 나름으로 목표를 향하여 노력하는 소중한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전언은 이 소중한, 단 한번뿐인 인간의 목숨이 총알 하나로 무더기로 소멸되는 전쟁의 충격 속에서 쓴 것이어서 더 더욱 절실함이 배어 있다.(역자후기 인용)

  

  나는 전쟁의 아픔을 직접적으로 겪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6.25 전쟁이라는 충격이 지나갔다. 화마가 쓸고 지나간 빈터에서 느끼는 절망감은 역사적 뒤안길에서 책으로밖에 공유할 방법이 없다. 책에서 느끼는 6.25의 절망감은 상당히 큰 부분이다. 이루어놓은 모든 것들이 무너졌다. 공든탑이 무너지듯. 우리나라에서의 전쟁이었던 6.25의 전쟁도 이정도인데 세계대전에서의 후유증은 얼마나 더 클것인가.


  『데미안』은 1차 세계대전 직후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고전이다. 섬뜩하리만큼 시대의 정신을 건드리고 있다. 철학은 시대의 아들이라는 헤겔의 말이 생각난다. 그만큼 데미안에서 느낄 수 있는 철학적인 향기는 그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고, 그 시대의 아들인 것이다. 


  데미안을 읽으면서 가슴에 와 닿았던 문장 몇개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다시 리뷰를 보았을 때 데미안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이 되 살아날 수 있도록.

 

 

  우리 모두는 같은 협곡에서 나온다. 똑같이 심연으로부터 비롯된 시도이며 투척이지만 각자가 자기 나름의 목표를 향하여 노력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의미를 해석하 수 있는 건 누구나 자기 자신뿐이다. - 9p

 

  나의 죄악은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었다. 나의 죄악은 내가 악마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 자체였다. - 24p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 123p

 

  "사랑은 간청해서는 안 돼요.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 안에서 확신에 이르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럼 사랑은 더 이상 끌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끕니다. 싱클레어, 당신의 사랑은 나에게 끌리고 있어요. 언젠가 내가 아니라 당신의 사랑이 나를 끌면, 그러며 내가 갈 겁니다. 나는 선물을 주지는 않겠어요. 쟁취되겠습니다. - 200p

 

 

  한가지 생각해 보자. 제목이 왜 데미안 일까? 주인공의 이름은 분명 싱클레어이다. 왜 저자는 극중에 몽환적이며 싱클레어의 인도자 역할로 나오는 데미안을 책의 이름으로 했을까? 데미안을 롤모델로 삼으라는 저자의 숨겨진 의도였을까.

 

  『데미안』은 여러 사람들이 읽고 느낀 자신의 투쟁이 가장 핵심적인 주제이다. 어쩌면 가장 온전안 알 속에서 생활하던 주인공 싱클레어 앞에 데미안으로 인해 알을 깨게 되는 동기가 부여된다. 부유한 집안, 좋은 성적, 여러가지 편한 생활로부터 자신을 찾아 떠나는 주인공. 어쩌면 '재미없는' 삶을 사는 주인공에게 나타난 데미안의 존재는 당시의 시대상을 비추어 볼때 혁명적인 영웅이라 할 수 있을 수도 있다.

 

  1차 세계대전 후 새로운 탄생을 위해서는 저자의 말 처럼 기존의 틀, 즉 알을 깨고 나올 필요가 있다. 그것을 이끌어 주는 역할이 데미안이고.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데미안이라는 역할을 사람들에게 주문하기 위해 제목을 그렇게 지었을지 모른다. 그만큼 데미안이라는 인물은 사회의 질이 높아지는데 필요한 인물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데미안은 어려운 고전이다. 싱클레어의 인생을 쭉 따라가는건 쉽다. 하지만 그 속에 관념화된 개념들을 찾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데미안』이 청소년 필독서로 선정되어 있다. 하지만 데미안은 청소년들이 읽어서는 100% 그 내용을 흡수하기 어렵다고 본다. 오히려 대학 신입생들이나 고등학생들이 읽어야 좋은 책인것 같다. 아무쪼록 데미안을 롤모델 삼아 사회에서 알에 갇혀있는 사람들이 자기의 알을 깨고 세상밖으로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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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한글판 + 영문판) - 합본 반석 영한대역 시리즈 1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화승 옮김 / 반석출판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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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작품이다. 많은 부분 파격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책을 접했다. 과연 내용은 센세이션하다. 물론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봤을 때 이야기다. 지금은 많은 부분 과거와 다르다. 한가지 꼽자면 성에 대한 인식이 예전에 많이 달라졌다. 과거 중세시대만 해도 성은 금기시 되는 영역이었다. 우리나라 근대, 현대에 넘어오면서도 성에 개방적이지 않았던 부분은 존재했다. 지금에야 이르러 일본문화의 흡수와 함께 성에 대해 많은 부분 개방적으로 바뀌었다. 한번의 결혼이 평생이 아니라 서로가 맞지 않는다 싶으면 이혼도 서슴없이 한다. 그렇게 세상은 과거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위대한 개츠비는 지금의 우리에겐 그다지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위대한 개츠비의 내용은 간략하게 이렇다. 닉이라는 주인공. 그의 옆집에 사는 개츠비. 그리고 많은 등장인물들. 사실 위에서 언급한 성에 관한 내용은 이 사람들의 연애관이다.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서 상당히 금욕시적인 시대상에서 작가는 과감하게도 바람이라는 소재를 제시한다. 개츠비는 과거 연인 데이지(현재는 기혼녀)와 다시 사랑을 꿈꾼다. 데이지의 남편 톰 역시 머틀이라는 내연녀를 둔다. 이 밖에도 조던 베이커, 조지 윌슨, 마이어 울프샤임 등의 여러 등장인물들이 하나의 주제를 안고 등장한다.

 

  이 소설이 제목만큼 위대한 소설인지는 잘 와닿지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이미 겪었던 사랑관계였고, 당시의 미국상을 잘 들여다 보는건 역사책 만큼 좋은건 없으니깐. 그래도 소설책이라는 장르를 생각하면 소설이라는 문학이 당시 미국에서 욕망처럼 가지고 있던 욕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위대한 책이라고 불릴만 하다.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한 초기, 자본주의 사회의 초기 단계를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성공을 과시하려는 개츠비의 파티가 그러한 역할을 했으리라.

 

  책은 문학적인 몰입도로써는 어느 정도 떨어졌다. 하지만 미국의 문화의 실상을 살펴보기엔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의 영문학과에서 어찌하여 한학기 강독책으로 위대한 개츠비가 선택되는지 알 수 있는 느낌도 왔다. 영미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읽어봄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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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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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지금 본인의 상황에 비추어보면 상당히 효과가 큰 책이다. 이별을 겪은 남자가 읽기엔 더 없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다.(물론 주관적으로) 우리는 인간의 본성에 관해 생각을 해 본적이 있는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의.식.주 3가지 요소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이 부분은 행복이 한가지로 정의될 수 없는 특징때문에 여러가지 정의가 뒤 따르겟지만, 필자는 사랑이 그 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함으로써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고, 사랑을 잃음으로써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사랑을 하고, 남녀가 연애함에 있어서 본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랑을 고이 간직하고 키워갈 수 있는 스킬도 분명히 필요하다. 단순히 배우자의 귀에 '사랑한다'라는 말의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상대의 심리를 읽어야 하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알아야 하며, 상대를 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기에 필수조건인 사랑이 보전된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랑심리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사랑이라는 단어자체가 너무 모호하게 때문에 이부분에 대한 논쟁은 많다. 이러한 논쟁의 소용돌이 속에 알랭 드 보통도 사랑이라는 심리에 대해 책을 서술했다. 


  책은 1인칭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 클로이와 연애를 다룬 내용이다. 우연히 비행기에서 만난 두사람. 비행기에서 만날 확률을 계산해보니 어마어마하다. 즉 그런 우연을 뚫고 서로 만난것이다. 얼마나 대단한가. 그렇게 소중한 인연인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만나가고, 알아가고, 하면서 남녀는 싸우게 된다.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난다. 사랑한다고, 서로를 사랑하니까 만나는 사람들이 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한 알랭 드 보통 식의 대답도 있다. 단지 싸우는 이유는 "너를 사랑하니까"이다. 맞는 말이다. 관심없는 사람과는 싸움이 벌어지지 않는다. 관심이 많고, 상대를 생각하기 때문에 싸우게 되는 것이다. 


  모든 청춘의 연애사가 그렇듯 결혼에 골인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대부분의 청춘들이 결혼에 골인하지 못하고 헤어짐을 경험한다. 이 책의 주인공도 헤어짐을 겪게 된다.(사실 책을 읽으면서 속으로 이러한 책은 연애감정을 더 생각나게 해 힘들었었다. 책을 덮을까 생각도 했지만 뒷 부분에 나오는 이별이야기 때문에 책을 여러번 읽었다. 눈물이 날 정도였다.) 알랭 드 보통은 헤어짐의 이유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 이야기를 펼친다. 헤어진 직후 자살을 생각하는 남자. 물론 수면제인줄 알고 먹었던 약은 비타민C 였지만 남자는 약을 과다복용했다. 죽음을 각오했던 것이다. 이쯤되면 정신은 이미 자살을 한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끝이 있으면 다시 시작이 있다. 남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또다시 새로운 연애가 되풀이 된다. 이것이 우리네 청춘의 연애사이다. 지극히 평범한. 이 책이 무섭도록 공감이 많은 이유는 여느 사랑에 관한 이야기처럼 특별한 1%의 연애이야기가 아니다. 우러러 보고 부러워할 만한 연애사가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청춘남녀들의 이야기를 풀어쓴다. 많은 면에서 우리의 공감을 느끼게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든다. 연애를 실제로 경험하면서 느끼던 감정들. 모호했던 감정들이 왜 그런지 거침없이 설명을 해준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남자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남자의 심리가 많이 표현된다. 즉 여성의 경우에는 많은 부분 공감을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쩌한가 본인이 좋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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