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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어 행복했어
지니 로비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진정하자고.. 침착하자고..
몇 번이고 중얼거리고 있는 나를 본다.
책읽기를 시작하면
그 흐름에 나의 의식 역시 따라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 작가가 느끼는 감정, 그리고 상대방의 시선까지...
글자들을 읽고 있노라면 그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소리들을 따라 가고 있음을 내가 조용히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폭력으로 청력을 잃어버린 조이와
청력을 잃은 부모님을 두었던, 침팬지 수카리와 고양이 하이드를 가족처럼 키우는 찰리 할아버지..
그리고 조이가 가진 청력장애라는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조이의 수화공부를 엄격하게 반대하는 어머니..
덥수룩한 수염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조용히 조이의 편이 되어주는 새아버지.. 그리고 남동생 루크.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책은 문장 자체가 조근조근하며 잔잔한 물결을 일으킨다.
긴장을 시키지도 않고, 물 흐르듯이 조용하게 속삭이지만 그 파장은 눈물이라는 것으로 한 장 한 장을 채워 나가게 한다.
책을 읽으면서 어디쯤에서 화가 났을까?
아마도...
조이의 장애를 인정하기 싫은 어머니가 막상 조이에게 벌을 줄 때엔 그 장애를 이용한다는 점일 것이다.
부딪힐 일이 별로 없는 착하고 성숙한 조이이지만, 자신의 상태를 잘 알기에 배우고자 하는 수화공부 부분에서는 어머니와 늘 부딪힌다.
그럴 때 어머니는 조이에게 침묵의 벌을 내린다.
사람의 말하는 입모양을 보고 무슨 말인지를 겨우 알아내는 조이에게 등을 돌려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게 하며, 그나마 유일하게 친한 친구인 록스의 부모님이 청력장애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친구와 헤어지라고 강요를 하는 어머니.
조이의 입장에서 그것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정녕 몰랐을까?
아버지에게 폭력으로 상처받고...
자식의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본인의 수치가 될 거라 짐작하여 조이의 세상을 가둬 버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조이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너무너무 좋아하고 자신의 모습 자체로 인정해 주던 찰리 할아버지는 지진이 일어난 어느 날 조이에게 침팬지 수카리를 부탁하며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결국 수카리는 찰리 할아버지의 조카인 린이 데리고 가지만 수카리가 처하게 되는 현실이 달갑지만은 않다.
어느 날 어머니는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서 조이의 현실을 알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음악에 맞추어 박수치고 춤을 추는 동안 조이는 억지로 웃으면서 엇갈리는 박수를 치는 모습이 어머니의 눈을 뜨게 만든 것이다.
조이는 자신이 원하고 찰리 할아버지가 원했던 대로 농아학교로 간다.
학교에서 적응해 가던 중 조이는 어머니와 린의 전화를 받고 집에 가지만 기다리는 건 수카리에 대한 절망적인 이야기다.
아기를 낳은 린이 수카리를 키울 수 없어 동물병원에 보냈는데, 사람과 자란 수카리는 다른 침팬지를 '검은 벌레'라 부르며 함께 하지를 못했던 것이다.
결국 여기저기를 전전하다 가게 된 곳이 클라크 재단-영장류 생물의학 연구 실험실...
우여곡절 끝에 할아버지의 변호사를 만난 조이는 할아버지가 수카리의 보호자로 조이를 선택했으며 앞으로도 보호자는 조이여야 한다는 유언장을 남겨 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이는 수카리를 찾기 위해 다른 변호사와 실험실로 간다.
그 곳에서 발견한 많은 동물들의 참혹한 현실..
사람이 지나가면 죽음이 온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아님 많이 아프게 된다는 것을 알았는지...
덜덜 떨며 구석으로 숨기 바쁜 아기 원숭이들...
입술을 깨물며 수카리의 우리를 찾은 조이는 자리에서 주저 앉고 만다.
허벅지에 문신으로 번호를 새겨 넣은 수카리는 야윌 대로 야위어 사람의 손을 피하기만 한다..
그리고 수화를 한다..
"아파 싫어. 안아줘 안아줘."
조이가 왔다는 것을 알게 된 수카리가 조이에게 달려들며 하는 수화는
"살려줘.. 제발.."
난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
이 아픔을 견딜 수가 없다.
얼마나 아파했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사람의 따뜻한 품이 그리웠을까..
인류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생체실험으로 이용되고 있는 동물들...
마취제 중독을 벗어나게 하기 위해 각종의 생체실험과 피 뽑는 것을 마취제 없이 행하고, 그러기 위해 꼼짝할 수 없도록 동물우리의 바닥까지 모조리 쇠창살을 박아 둔 실험실..
동물은 그들에게 그저 노예였을 뿐이다.
조이와 변호사팀은 수카리를 풀어 주라는 법원의 서류를 제출하고 도망치듯 실험실을 탈출한다.
실험실에서의 자신, 그리고 번호가 새겨진 허벅지 때문인지 수카리를 씻겨 달라 칭얼거리고, 어느 모텔에서 목욕을 시키지만...
지워지지 않은 자신의 문신을 보고 제발 다시 목욕을 시켜 달라고 사정을 한다.
내 눈물은 멈추질 않는다...
지금도...
내 눈물은 수카리를 향해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다.
수카리는 찰리 할아버지가 남긴 돈으로 괜찮은 시설로 가지만..
생체실험에서 얻은 간암으로 4년 후 죽게 된다.
내 귓가엔 수카리의 수화가 소리로 남겨져 있다.
아프다.
조이 맞아? 조이 왔어? 조이 어디 갔어?
날 두고 가지마.
살려줘 제발.
지금도 이 소리들이 가슴을 친다.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해서 눈물만 흘릴 뿐이다.
부디 좋은 곳에서 좋은 마음만 가득 안고...
아픈 건 잊어 버리길...
수카리..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