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엇보다도 환자들은 의사의 말을 무조건 믿는 버릇이 있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지만, 의사가 환자에게 당신은 죽을 거라고 말하면, 상태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데도 마치 죽는 게 의무라도 되는 것처럼 죽는 환자가 많다.

 

2.

그녀는 입을 열기 전에 머뭇거렸고, 그 순간이 지나가자 입을 열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3.

칼을 직접 잡는 것은 자신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절개하는 일은 고용인에게 시키고 자기는 해설만 하는 일부 해부학 교수들의 관행은, 내가 보기에는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4.

"내 말을 알아듣겠소?"

"그럼요, 왜 못알아듣겠어요?"

"피가 온몸을 돈다는 말에는 분명 놀랐을 텐데?"

"그 말을 듣고 놀랄 사람은 의사들밖에 없을걸요. 그건 농부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이에요."

"그게 무슨 소리지?"

"돼지를 잡을 때, 피를 빼내려면 목에 있는 굵은 혈관을 잘라요...(중략)..그건 너무나 뻔하잖아요?"

나는 눈을 껌벅이며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의술을 업으로 삼는 의사들이 이 놀라운 발견을 하는 데 무려 이천 년이나 걸렸는데, 이 처녀는 그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5.

그는 지식과 지혜의 차이를 보여주는 본보기다. 너무 많은 지식은 정신의 균형을 깨뜨린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머릿속에 지식을 쑤셔넣느라 너무 많은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상식이 들어갈 여지가 별로 남지 않는다.

 

6.

(중략)..나 자신과도 사이좋게 지낼 수 없었다.

 

7.

법률에 문외한인 그는 법률이 정의와 관계가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법학을 공부하기 전에는 그랬다.

 

8.

유럽 대륙의 상류층 사람들이 우아하다고 말하는 거라면 뭐든지 열광적으로 추종하는 이런 태도는 참으로 꼴사납다.

 

9.

감정은 덧없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휘둘리는 것은 한심한 시간낭비에 불과하다.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후세에 교훈을 주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다.

 

10.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알고 싶지 않다. 그건 굳이 점을 치지 않아도 대충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분수에 맞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때가 되면 죽을 것이다. 그게 내일이 될지 삼십 년 뒤가 될지는 신의 뜻이다.

 

11.

누가 쓴 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거짓말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도시에서는 살 수 없노라"고 말한 걸 보면, 그 시인은 꽤나 현명하고 분별 있는 사람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건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정직한 시골 사람은 도시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인다. 도시에서는 표리부동함이 소중한 덕목으로 간주되고, 솔직함은 경멸당하며, 모든 사람이 제 잇속만 차리기에 바쁘고, 관용은 비웃음만 살 뿐이다.

 

12.

"(중략)..사실 말이지만, 지금은 미덕이 외로운 시대예요."

 

13.

나는 정의를 원했지만, 정의 따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운동은 힘의 충돌이라고 설로는 말했다.

 

 

 

 

14.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대화를 나눌까. 남들은 이것을 아주 쉬운 일로 여기는 듯한데, 어찌된 셈인지 나는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15.

"그게 어떻게 그분의 뜻일 수 있죠? 한쪽 사람들이 다른쪽 사람들에게 종속되는 걸 어떻게 하느님이 바랄 수가 있죠? 한쪽 사람들은 궁전에서 살고 다른쪽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죽는 게 하느님의 뜻인가요? 한쪽 사람들은 지배하고 다른쪽 사람들은 복종하는 게 하느님의 뜻인가요? 어떻게 하느님이 그런 걸 바랄 수 있어요?"

..(중략)..

"하느님은 그걸 바라고 계신 게 분명해요. 그렇다면 하느님은 나의 하느님이 아니에요."

 

16.

하지만 한 사람이 평생을 다 바쳐도 그 거대한 바다 속에 들어 있는 경이의 한 조각조차도 밝혀낼 수 없다는 것을 내내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알고 싶은 욕망을 부여받고도, 제대로 아는 데 필요한 시간을 부여받지 못하는 것은 잔인한 노릇이다.

 

17.

그들은 쉬지 않고 올라가지 않으면 결국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18.

나는 내 우울한 기분이 남에게 언짢은 기분을 안겨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친구들을 만나면 도대체 왜 그렇게 괴로워하느냐고 꼬치꼬치 물어볼 것 같아서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피했다.

 

19.

은밀하게 행해지는 고문은 고문을 가하는 자에게는 더욱 달콤하고, 당하는 자에게는 더욱 격렬하기 때문이다.

 

20.

양심의 경고에 줄곧 귀를 기울이지만, 그 경고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21.

나는 겨우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고, 나보다 용감한 사람들은 비웃을지 모르나, 그것은 내 평생 가장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22.

나는 너무나 이기적이어서 그녀를 위로해줄 기회마저 박탈당한 내 슬픔밖에는 생각지 못했다.

 

23.

"어느 누구도 자신의 길이 가장 좋고 유일한 길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오직 무지에서 나온 말이니까요."

 

24.

주님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이에 거지나 불구자, 어린이, 미치광이, 범죄자나 여자로 태어나, 우리가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해 우리에게 모멸당하고 무시당하고 살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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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포스트, 1663 1 - 네 개의 우상
이언 피어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오랜시간동안 이 책의 독후감을 어떻게 써야할까 고민했다. 안 쓰는 것이 이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이겠지만 그렇게는 하고싶지 않다. 내 말은 거짓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쉬운 길로는 가지 않겠다.  

내가 고민한 것은 이제 더 이상 누가 보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쓴다는 것, 비밀일기처럼 글을 쓴다는 것이 자기기만임을 아는 이상,(이건 글쓰기에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누군가가 이 글을 읽는다는 가정하에 글을 쓸 수밖에 없는데 요즘에는 소위 '스포일러'라고 하는 것에 대한 민감도가 큰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추리물에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다.(아니면 그런 것에 분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스포일러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그렇기 때문에 침묵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보다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거나)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예의'라고까지 말하는 것 같다.

내 고민의 요는 그거였다. 이 책은 퍼즐을 맞추듯 독자로 하여금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게 하고 스스로 생각해보게 만들고 있는데 책의 내용을 언급할 것인가 말것인가. 스포일러가 될 것인가 말것인가.

하지만 인터넷 시대의 글쓰기는 너무나 편리해서 나는 '제목'이라는 도구가 있다는 것을 한참 후에나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종이에 쓰는 글과는 달리 인터넷 게시판의 글은 처음에는 대부분 제목만을 볼 수 있을 뿐이고 그것을 클릭해야 내용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안심하고 '예의 없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영화나 소설의 재미를 크게 떨어뜨리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과연 그렇게 될런가는 미지수지만.

사실 '제목'이라는 보호막 이외에 내가 스포일러가 되기로 자처한 결정적인 이유는 아무리 고민해봐도 책의 내용(그것이 재미를 느끼는데 결정이라 하더라도)을 쓰지 않고는 '글 쓰는 재미'를 못느낄 것 같기 때문이다.

 

서두가 너무 길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지 20년이 지나고 2007년을 맞이한 사람이라면,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모욕일 수 있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 본다.'는 맥락의 말(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알고 싶은 것만 안다,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등등)은 결코 현대의 발견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그랬듯 지금도 이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과 관계가 없을 경우의 일이다. 일단 자신의 문제가 되면 자신도 역시 보고싶은 것만 보게 된다.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느냐하는 것은 말을 포함한 행동까지 그럴 수 있느냐하는 관점에서다. 아무튼, 이런 '바보의 벽'은 알만한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알게 될 그런 성격의 진실이다. 

나는 책이 그 내용 뿐 아니라 제작 상태 또한 여러 의미에서 '훌륭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물론 내용이 우선이다.) 이런 책을 보면 안타깝다. 내용의 훌륭함에 비해 적절하지 못한 작은 판형을 선택해서 책의 두께는 두꺼워지고 잘 펼쳐지지 않는 책을 펼쳤을 때 양 페이지의 안쪽에 있는 글씨들은 읽기에 피곤하기 때문이다. 출판사가 이런 것을 몰랐을리는 없고 내가 모르는 다른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역자의 후기가 2권이 아닌 1권의 끝에 가서 붙어있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힘들다.

 

<장미의 이름>을 읽기 위해 중세와 성서를 공부할 필요가 없듯, 이 책을 읽기 위해 17세기 영국의 정치와 종교에 대해 공부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 네 명의 인물이 사건을 회고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간단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생략한다는 것이다. 내가 고민했던 부분도 구체적으로는 다음의 표현을 써야할지였다.) 1부는 거짓말이고, 2부는 정신병자의 헛소리다. 3부는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의 복수담이고 4부는 진실이다. 내가 4부를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설 속에서 그렇다는 것이다.(물론 소설은 허구다.) 역자 후기나 각종 서평에서 1부테서 3부까지가 각각 시장의 우상, 동굴의 우상, 극장의 우상이라는 소제목을 붙였듯이 4부는 남은 하나의 우상 즉 종족의 우상이 아닐까라고하며 독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빼앗고 있는데, 나는 구체적 장면이나 결말을 제시하는 것보다도 이런 친절이야말로 책의 '재미를 크게 떨어뜨리는' 스포일러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종족의 우상'과 '핑거포스트'의 관계를 생각해보게끔 만드는 4부의 제목이야말로 이 책의 매력이다. 

4개의 우상이라는 큰 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모티브의 변용의 적절함만으로도 이 소설은 대단히 잘 된 작품이다. 게다가 스케일이 걷잡을 수 없이 점점 커지는 작품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실수(라고 할 수 있다면)조차 없다. 이 소설에는 '결정적 단서' 혹은 '반전'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나서는 독자의 허를 찌르기는 커녕 허탈함만 가져다주는 그런 장치가 없다. 허탈함만 가득 안겨주고 책을 끝내버리는 '무례함'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다른 미스테리를 던져주는 '예의'가 있다.

 

독자의 머리를 복잡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이 책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여기까지 쓰면서 나는 마음을 바꿔 제목에 '스포일러있음'을 사용하는 보호막을 포기하기로 했다. 이 정도의 정보로는 독서의 재미가 크게 떨어질리 만무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을 읽고 나의 '예의 없음'에 분개하며 이 책을 포기할 필요는 전혀 없다. 자신을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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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
이윤기 외 대담 / 민음사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고민을 함께 했다.

 

언제쯤이면 어렸을 때 썼던 일기들에 담긴 고민의 흔적들을 다시 보며 꽤나 '귀여운' 고민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중고등학교 때 썼던 일기를 읽어보면 그 때 했던 생각이나 고민들을 지금도 똑같은 방식으로 하고 있다고.

 

밀레니엄을 맞으면서 26인의 대담을 엮은 민음사의 <세계의 문학>100호 기념 특별 기획의 소산인 이 책이 담고 있는 고민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이 책에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생각하기 싫은, 귀찮은 문제들과 고민들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 각자 활동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부딪칠 수밖에 없는 문제들과 씨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좀 더 깊은 고민을 요구한다.

 

이건 대담집이다. 글이 아니라 대화하는 것을 녹취해서 활자로 옮긴 책이다. 도정일과 최재천의 <대담>이 순수한 대담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버린 지금 이 책에 대해서도 그 순수성은 신뢰할 수 없지만 대담의 진실성, 진정성만큼은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글이 진실하냐 말이 진실하냐 많은 얘기들이 있지만 나는 말 쪽에 조금 더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대담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내가 읽고 있는 것은 누군가의 음성이라는 것을 자꾸 의식하려 했다. 그러자 이들의 고민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음을

진정으로 감사하게 되길 바라면서,

 

고민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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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해도, 예술은 그런 정열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이윤기)

 


하자는 대로 하고 쓰라는 대로 썼다. 그래야 글쓰는 판이 살아날 것 같아서 그랬다. 이름 나고 싶어서 한 짓이 아니다. 정말 판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랬다. 누군가가 그렇게 판을 살려야 하지 않겠니?(이윤기)

 

-이윤기&이다희 '춘아, 춘아, 옥단 춘아 네 아버지 어디갔니?' 중.

 

 

 

2.
개인적인 소견입니다만 저는 죽음도 도시 속에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도시 한가운데 화장터도 묘지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밭 한가운데 무덤이 있고 거기 풀이 자라고 꽃도 피고 하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대도시 한가운데에도 죽음이 있어서 죽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습니다.(최승호)

 

-최재천&최승호 '태양의 아이들 진흙소를 타고 개미 제국에 가다.' 중.

 

 

 

3.
다만 제가 대학 다니며 싫었던 것은 미국, 프랑스, 독일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돌아와 거드름 피우는 거였어요. 누가 <예일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그러면 저는 <그게 어떻다는 거냐? 그래서 당신이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이 뭐냐?>, <그 이론이 미국에선 맞을지 모르지만 그게 여기서도 맞을까?>그렇게 반박했지요.(탁석산)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는데 문을 들어갈 때마다 수위들한테 잡혔죠. 교수처럼 보이지 않았던 거죠. 그러던 어느 날 저하고 친한 교수 한 분이 자전거 타고 다니는 것이 교수 품위에 문제가 있다 하시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내가 잘못 왔구나, 내가 있을 곳이 아닌데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에 서울대에 오는 것을 계속 거부하다 왔거든요...(중략)...하지만 차를 산 걸로 또 문제가 됐죠. 왜 엑셀을 샀냐고. 차만 사면되지 않나 생각했는데 차종 가지고 품위 운운하니 참 적응 안 되더라고요.(최창조)

 


제가 북한에 갔을 때 풍수를 한다고 했더니 <풍수라니 무슨 소리냐, 우리 공화국에서는 풍수를 봉건 도배들의 터 잡기 땅 놀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고 하면서 사석에서도 연설조로 얘기를 했어요. 교과서에 그렇게 실려 있대요. 우리 쪽으로 보면 석사 학위 소지자인, 현장의 젊은 안내원들한테 물어봐도 똑같아요. 어디가나 <풍수>하면 봉건 도배들의 터 잡기 땅 놀음이라고 한참 떠들고난 후에 끝에 가서 <그래 할아버지는 살아 계시냐> 물어보면, <돌아가셨습니다.>, <좋은 데 모셨냐> 그러니까 <명당에 차려 모셨습니다.>이러죠. (웃음) 남쪽 사람들하고 똑같아요.(최창조)

 

-최창조&탁석산 '사람은 땅을 닮고, 땅은 사람을 닮는다.' 중.

 

 

 

4.
IMF 당시에 이런 일도 있었어. 회사 근처에 있는 주유소에 갔었어요. 내가 그 당시에 BMW 탔었거든. 기름 넣으러 갔는데 거기서 써 붙인 것이 있었어. <외제차에는 주유를 거부한다.> 그 정도로 외제시피가 심했었다고. 그래서 내가 거기다 물어봤어요. <당신이 지금 장사하는 기름은 국산이요, 외국산이요?> 우리나라에서 외화를 가장 많이 잡아먹는 것이 석유잖아. 한국 사람들 보면 상당한 착각 속에서 사는 경우가 많아. 양말 한 켤레라도 단순하게 국산이다 아니다 얘기할 수 없을 만큼 생산과정이 아주 복잡해졌다고.(윤윤수)

 

-최인호&윤윤수 '정승처럼 벌어야 청승처럼 쓸 수 있다.' 중.

 

 

 

5.
사실, 한국 사람들이 원래는 상당히 체면도 중요시하고 부끄러워할 줄도 아는 사람들이었는데, 박 대통령 이후 개발 사회로 접어들면서 너무 뻔뻔스러워졌어요. 부끄러움이 없는 시대로 치달았거든요. 그게 어느 정도까지 왔냐 하면, 그전에는 그래도 정신적으로 삶을 윤택하고 보람 있게 하려는 노력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간데없고 허구한 날 생산, 효율, 경쟁력, 대통령에서부터 어린 학생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이 싸워 이기는 것, 돈 버는 얘기만 해요. 이거 좀 부끄러운 짓 아닌가요? 그러고도 부끄러운 줄 몰라요. 가난한 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벌이만 하고 고단해 쓰러져 자기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해요...(중략)...문학은 즐거움을 누리는 방법 중의 하나 아닌가요? 인생을 향유할 줄 아는 것. 그런데 향유하는 시간을 전부 노동과 돈벌이에 바치라는 게 지금의 현실이에요. 그 결과 오늘날 교육 파괴 현상은 절정에 달했죠.

게다가 현재 이 나라 대학은 대학이 아니라 직업훈련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대학 도서관은 학생들이 자기 책 가지고 와서 공부하는 <독서실>-이름이 매우 아이러니컬하죠. <독서실>이란 말처럼 진짜 <독서>와 거리가 먼 단어는 없을 겁니다. 즉 고시나 취직 시험 준비를 위해서 고생하는 방, 진짜 독서로부터 영원히 이별하는 방이란 뜻이죠-이 대부분입니다.(김화영)

 


그런데 우리네 작가는 남들 하는 건 다 하면서 막 뽑아내요. 노벨 문학상 받은 사람 중에서 작품 수가 많은 사람 그리 많지 않아요. 알베르 카뮈는 소설 네 권 썼어요. 질이 문제죠. 이 분야는 요행이란 없어요. 피를 말려야 돼요. 그런데 그걸 요구하기가 인간으로서는 좀 과하지. 어떻게 사람한테 그런 걸 요구합니까. 그런데 문학은 그래요.(김화영)

 


그러자 이번에는 다시, 내가 스무 살 때 문학을 어떻게 시작했던가, 왜 했던가 돌아보게 되더군요. 그때 내가, 지금처럼 좋은 집에 푼돈 헤아리며 꼴같잖은 이름에 기대, 사람들 알아보니까 히히덕 거리면서 악수나 하고, 그거 즐기자고 문학을 했던가? 하지만 그건 아니었지요. 분명히.(이문열)

 


보통 게으른 독자가 좋아하는 작가는 안도감을 주는 작가죠. 내가 아는 걸 다시 멋있게 말해 주는 사람.(김화영)

 


그래도 길을 좀 돌고 실수도 많이 하고 하겠지마는, 지금 우리로서는 할리우드를 따라가는 게 적어도 효율적인 길이 아니겠는가. <강원도의 힘>은 그야말로 낯설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지, 그런 유사한 게 또 나오면 특수한 관객 말고는 그리 많이 들지 않을 것이다. 라고.(이문열)

 


그 대목이 이문열 선생의 보수성인데. (웃음) 그건 뭐 스스로 만든 감옥이 아닐지. 난 그렇게 봐요. 그 감옥을 내가 반드시 비판적으로만 보는 건 아니에요. 이문열 같은 작가가 있어야 후배들이 쳐부술 수도 있지.(김화영)

 


얼마나 과외를 많이 받아 암기의 선수가 되었는지, 그냥 지혜도 아니고 <10가지> 혹은 <101가지>하는 식으로 번호까지 붙은 지혜를 공급하는 거야. 젠장맞을.(김화영)

 

-김화영&이문열 '90점이 아닌 70점짜리 문학은 가라' 중.

 

 

 

6.
음악이나 문학이나 할 것 없이, 다들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는 생각은 하지 않죠. 넓은 곳, 넓은 문으로 들어가면 편할 것을, 굳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뜻이겠지요.(이강숙)

 

-이강숙&김병종 '예술은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다.' 중.

 

 

 

7.
꽃이나 나무를 노래하는 서정시에 빠져 있다는 것은 현실 도피이기도 하고 시대 착오라고도 생각합니다.(이승훈)

 

-김춘수&이승훈 '한국 현대시, 트레이닝이 덜 되었다.' 중.

 

 

 

8.
근데 사실 어떤 개인의 가장 구체적인 경험이야말로 정말 보편적인 거 아닙니까?(함인희)

 


이 사회에서는 아줌마들이 누릴 수 있는 권력이라고는 이 <기생적인 엄마>라는 역할밖에 없어요.(함인희)

 


맞는 말씀이에요. 아줌마들이 자신의 권력을 당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대상이 바로 만만한 자식들이잖아요. 그리고 아줌마들이 재미를 붙일 수 있는 게, 자기 소유는 아니더라도 집을 늘린다든가 돈을 불린다든가 하는 것뿐이죠. 이런 건 아줌마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아줌마들이 처한 상황 때문이에요. 아줌마들한테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를 물으면 <시간도 없고 돈도 없다.>고 대답합니다. 30대쯤 되면 30평 아파트에 EF소나타를 타야 할 것 같은, 나름대로의 각본들이 있잖아요.(이숙경)

 


저는 요새 남성들을 만나면 이런 얘길 많이 해요. 제발 남성에 관한 기사를 써라, 내가 남성 잡지에다 남성 문제를 이렇다 저렇다 쓰면 웃기는 게 된다. 남성들은 원조 교제나 불륜에 눈을 돌리기 전에, 자신이 뭘 강탈당했는지 먼저 성찰할 필요가 있어요. 남성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매정해지고 감정을 통제해야 하죠. 그래서 남는 게 지금의 4,50대 얼굴들이잖아요.

그런 걸 누군가가 자꾸 얘기해줘야 돼요. 페미니스트가 말하면 안 들으니까.(이숙경)

 


여성이 <나 너 사랑해>라고 할 때의 그 사랑은 남성이 <나 너 사랑해>라고 할 때의 그것과 너무나 달라요. 예를 들어서 남성에게는, 어떤 감정을 공유하거나 뭔가 관계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얘를 위해서 뭔가 해줄 수 있다는 것, 항상 문제 해결 지향적인 게 사랑인 거예요.(함인희)

 


선택할 때는 자기 기득권이든 뭐든 간에 그만큼의 희생이 따르는데 남성들은 그들의 기득권을 잘 버리지 못하잖아요. 선택이라는 게 뭔가 절실함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기도 하고. 그 선택이 성공하면 삶이 더 진지해지면서 훨씬 재미있어요. 근데 어영부영 살면 불행도 어영부영해지고 행복도 어영부영해지면서 삶이 너무 재미없어지는 거고.(이숙경)

 


게다가 집단주의와 공동체는 굉장히 다른데 그걸 섞어서 쓰잖아요. 미풍양속이 어쩌고 하면서 집단주의를 강요하고 그걸 싫어하면 공동체 정신이 없다고 하죠.(이숙경)

 

-함인희&이숙경 '그래, 우리는 여성이다.' 중.

 

 

9.

학문이 실용성도 아니고, 환금성(換金性)으로 평가받는 것 같더라고요.(노동환)

 

-조유식&노동환 '헌책방 옆 인터넷 서점' 중.

 

 

 

10.
그리고 <산해경>에서는 반인반수의 모습이 결코 부정적 이미지로 그려져 있지 않아요. 농업을 발명한 신농씨도 소머리를 하고 있거든요. 그리스 신화에서는 반인반수가 대개 요물, 괴물이지요. 신들은 완전한 인간의 모습이지만. 그리스 신화가 후대에 인간 중심적으로 편집된 것이기 때문이죠.(정재서)

 

-정재서&김주환 '포켓몬스터와 <산해경>' 중.

 

 

 

11.
그런 구체적인 선택의 문제들에 당면해서는-단순히 영혼의 구원이 아니라 삶의 구원을 종교가 찾아야 한다면-이 세상의 구조적인 모순들을 고치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거든요. 기독교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죄로 인한 어떤 큰 모순적인 틀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낼 때는 그런 것들을 개선해서 잘 살라고 보냈어요. 그러니 그런 방해 거리들은 없애야 합니다...(중략)...역사가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고 믿으면서,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자기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독재 정권이나 우리나라 근대 사회의 엄청난 억압과 모순을 없애기 위해 뛰어들 수 있게 한다는 것은 기독교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제 눈으로는 못 볼지라도, 진리가 이기리라는 믿음으로 나를 희생하고 정의와 진리를 위해 싸울 수 있게 되더군요.(양명수)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네 형제들>에는 <조시마>란 수사가 등장합니다. 그가 한 말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누구를 심판할 수 없다. 내가 오늘을 정직하게 살았다면 그 사람이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수사의 주장인즉,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나에게도 책임이 있고, 다른 어떤 사람의 과오 역시 나에게 공동의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양명수)

 


우리는 일본인들을 몰아내는 것이 독립 운동이었지만 간디는 영국인들과 같이 살자고 했죠. 영국인들이 굳이 떠날 것 없다, 같이 살되 영국인의 인권이 존중되고 보호되듯이, 인도인들의 인권도 인정하고 존중해 달라고 했습니다. 인도의 국권을 영국의 국권과 똑같이 인정하자는 거지요. 이것이 독립이죠.(도법 스님)

 


불교에서도 그런 논리가 있어요. 앞으로 몇 년 후에는 미륵 세상이 와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거지요. 저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삶은 늘 현재의 문제일 뿐이에요. 미래에 문제가 해결된다니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지금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내일도 해결되지 않습니다.(도법 스님)

 

-양명수&도법스님 '더 멀리 더 깊이 바라보면 보이는 것들에 대하여' 중.

 

 

 

12.
사람이 받는 영향이라는 것은 자기가 필요한 것을 받는 거지, 바른 이해나, 영향 자체의 좋고 나쁘고 한 것과는 별 관계가 없는 일이지요...(중략)...<파우스트>에 나오는 구절에 <무엇을 찾아 노력하는 사람은 방황하게 마련이고, 방황하는 사람은 결국 잘못을 저질러도 구원된다.>, 대충 이런 것이 나오는데 그 구절이 힘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스스로 강하게 느끼는 것을 계속해서 추구해 나가면, 설사 거기에서 잘못된 것이 있더라도, 계속 추구하여 노력하는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말이 인생을 생각하는 데에 일종의 해방감을 줬다는 느낌이 들어요.(김우창)

 

-김우창&김상환 '오렌지 주스에 대한 명상' 중.

 

 

 

13.
대학에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대학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죠.(강유원)

 


제가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학교에 있으면서 석사나 박사를 굉장히 많이 배출했습니다. 그런데 교수가 될 수 있고, 되고도 남을 만한 실력을 가진 학생들도 강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둥, 영어로 훈련이 안 되었다는 둥 하면서 이런저런 이유를 대고 있지만, 대개가 학문 외적인 이유들이죠.(최장집)

 


그러니까 제가 보기에는, 1960년대 이전에 서양식 합리화는 지금보다 덜 진전됐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도리지학(道理之學)이라는 것은 있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그런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는 무너진 상태에서 어중간하고 아주 비천한 실용주의만 남았죠.(강유원)

 


사실 서구적인 것들이 들어와서 그전의 것들을 대신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제는 규범의 부재 상태에 이른 것 같습니다. 인간 관계를 규율하고, 사회 질서를 구성하는 토대가 없어진 것 같아요. 민주주의를 떠받드는 기본적인 사회 규범은 자유주의죠.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정치 제도인 민주주의를 떠받드는 것이 서양의 자유주의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유교 사상도 아닙니다.(최장집)

 


김용옥 선생님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말입니다만, 저는 그분의 작업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더군요. 동양학이나 고전을 현대적인 언어로 풀이해 주는 작업인데, 그런 기회가 아니면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노자를 보고, 논어를 읽겠습니까. 문제는 그런 관심 속에서 진짜 학자들이 내용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이죠. 김용옥 선생님에 대해 여러 비판도 많다지만 이제 남은 일은 그분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학계가 그런 작업을 심화시켜 나가는 것이죠.(최장집)

 

-최장집&강유원 '그래도 이성은 진흙 속의 연꽃이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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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몽상
이진경 / 푸른숲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수학을 못한다. 뿐만 아니라 가장 확실한 수학이라고 하는 산수도 헷갈린다. 고등학교 때도 점수가 너무 안나와서 포기하려고 했다. 다행히 그 때 수학선생님의 진심 어린 한마디가 그나마 오늘 책 제목에 '수학'이 붙은 책을 읽게 만들어준 것 같다. 그 한마디란 이렇다. "수학은...포기만 안하면 된다."

아무리 그래도 수에 대한 감각이 없다는 건 치명적 약점이다. 이건 모든 것에 수로 표현된 값을 매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에 곤란할 뿐만 아니라 이런 글나부랭이를 쓰는 데도 곤란하다. 수학적 머리가 있는 사람이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몇번이나 들었던지..진정한 천재는 수학과 음악에서만 나온다는 말도 있다. 음악이 수와 깊은 관계에 있다는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다. 나는 수학을 못해서 그런지 음악 점수도 꽝이었다. 젠장, 수학과 음악을 들먹이기 전에 천재가 되기에는 나이부터 이미 글렀다.

 

나는 방금 철학책 한권을 다 읽었다. 제목은 <수학의 몽상>이다. <철학과 굴뚝청소부>를 읽었던가 안읽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 책으로 유명한 이진경 씨 책이다.

 

이 책은 그 당시의 나처럼 수학 점수가 안나와서 고민인 학생들을 위해 수학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주기 위한 책도 아니고, 수적 감각을 길러주기 위한 책도 아니다.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은 '수학의 역사'에 대한 것이다. 수학도 머리가 터지는데 그것의 역사라니! 다 읽고 나서야 알았지만 미리 이걸 알았다면 이렇게 쉽게 손에 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떤 분야의 공부를 하든지 그 분야의 핵심에 접근하는 가장 바람직하고도 빠른 방법은 그 분야의 역사를 아는 것이라고 한다. 내 생각도 그렇다. 수학의 역사라고 해서 '전형적인' 역사책의 이미지처럼 딱딱하고 재미없는 책은 절대 아니다. 

 

수학은 흔히 절대적인 답이 존재하는 명확한 학문으로 취급된다. 이런 점이 수학의 매력으로 불리기도 한다. 수학의 이런 성격을 진리성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이 책은 그것의 파괴를 역사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이 책을 펴게 되면 처음 접하게 되는 증명이 있다. '수학적 진리와 수학적 이론은 아무 상관이 없음'이 그것이다. 책을 펴자마자 등장하는 이 증명을 읽고 나면 (나처럼 수학적 머리가 둔한 사람의 경우겠지만)뭔가 속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고서 작가는 수학은 진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종의 게임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다보면 알게 되지만 수학이라는 게임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다. 유클리드 기하학이라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는 게임도 있다.) 하지만 겨우 이정도로 수학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줄일 수는 없기에 작가 이진경 씨는 엄청나게 노력을 하고 있다. 그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팩션처럼 이야기를 만들거나, 가상의 상황을 만들어 읽는 동안 흥미를 느끼게 한다. 수학을 이용한 영화나 소설을 접하는 듯한 느낌이다. 다만 책의 마지막 챕터에 이르러 지금까지 끌어온 책의 내용(수학의 역사!)을 너무나 직접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바라보고 정리하려고 하여 읽는 이의 흥미를 떨어뜨리고 긴장을 시키는 감은 있지만 에필로그에 가서는 다시 여유롭게 읽고 책을 덮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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