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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스케치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2
도리스 레싱 지음, 서숙 옮김 / 민음사 / 2003년 8월
평점 :
'오늘에는 오늘의 젊은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오늘의 번역이 필요하다'는 기획 의도를 밝히고 있는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중에 한 권. 정말 오랜만의 소설이다.
하지만 오늘의 번역이 이런 것인가? 정말 인상적이게 '형편없는' 번역이다. 같은 시리즈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농담'을 읽고 이 시리즈에 거의 절대적인 호감을 보였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로. 옮긴이는 영문과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영문학과 교수로 일하는, 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여자다. 글쎄, 영어는 잘하는지 모르겠지만 번역은 정말 아니올시다다. 일단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주어와 술어가 맞지 않거나 부적절한 접속사, 거의 직역에 가까운 번역체의 문장들..오죽하면 읽다가 아, 이걸 어떻하지, 팔아버릴까 생각했을까.
에니어그램 테스트 결과 내가 속했던 5번 유형의 작가로 알기 전에 이미 그 제목 하나로 내 인상에 박힌 책이었고, 나는 이 책이 언젠가는 내 손에 들어올 줄 알고 있었다.
형편없는 번역을 참아가며 하룻밤에 다 읽어버린 걸 보니 잘 모르는 영국작가지만 어느정도 내공이 있는 것 같다. (더불어 모딜리아니 풍으로 묘사된 여자가 등장한다는 것도;)이 책 안에 무려 열 여덞편의 단편이 있고 어떤 글들은 '피카소의 그림과 어린아이의 그림의 본질적인 차이'를 묻는 질문의 답처럼 내가 당장 단편을 쓴다고 해도 별 차이가 없을만한 글들도 있었다.(물론, 이건 오만과 편견이다.)
하지만 읽으면서 나는 이 작가가 왜 에니어그램 5번 유형인지(지적 탐구자형:관찰자형) 알게 되었고 (자꾸 형편없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죄송한 마음은 들지만)형편없는 번역에도 불구하고 옮겨적고 싶은 부분이 의외로(?) 꽤 있었다.
같은 두께의 책이라도 짧은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면 책을 완독하는데 좀 더 자신감이 생긴다. 참 재밌는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