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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세니예프의 인생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3
이반 부닌 지음, 이항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평점 :
<아르세니예프의 인생> 인상 구절
(3교 상태에서 뽑은 구절들이라 최종본하고는 조금 차이가 날 수 있다.)
모든 유년 시절은 슬프다. 아직 인생을 완전히 각성하지 못하고,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이 아직 낯선 소심하고 사랑스러운 한 영혼이 인생을 꿈꾸는 이 조용한 세계는 가난하다. 행복한 황금 시절! 아니다, 유년은 불행하고 병적으로 과민하고 가련한 시절이다.
우리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기억한단 말인가. 때로는 어제 일조차도 겨우 기억해내는 우리가!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 모든 사람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봐 늘 두려워한다!
엄마는 무엇을 슬퍼했던 걸까? 엄마는 평생, 심지어 슬퍼할 만한 이유가 없어 보일 때도 뭘 그렇게 슬퍼했던 걸까? 엄마는 밤마다 몇 시간씩 기도를 올렸고, 이따금 아주 아름다운 여름날에 창가에 앉아 들판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엄마의 영혼이 세상 만물과 모든 사람들, 특히 엄마의 가까운 혈육인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흘러가고, 영원히 돌이킬 수 없이 흘러가고 세상에는 이별, 질병, 슬픔, 실현 불가능한 꿈과 희망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 그리고 죽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니콜라이 형이 나의 미래를 그려 보이면서 농담조로 말했다. "물론 우리는 완전히 파산했어. 넌 나이가 들면 어딘가에 취직해서 일을 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갖게 되겠지. 또 조금씩 저축을 해서 집을 살 거야." 갑자기 나는 미래의 온갖 공포와 비속함을 너무나 생생하게 느끼고 울음을 터뜨렸다.
어쩌면 모든 것이 진짜 무의미하고, 내 인생도 정말 무의미한지 모른다. 그런데 왜 나는 내 인생이 절대로 무의미하지 않고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진 않을 거라고 느끼는가?
그러나 날개만으로는 날 수 없음을, 날개는 진화해야 하고 대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왜 가끔씩이라도 깨닫지 못했을까?
나는 오른쪽 둑 주변에 금빛 수면이 넓게 빛나는, 물이 가득한 연못 쪽으로 내려가는 이슬 내린 비탈길에 섰다. 내가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보고 있자, 달도 멈춰 서서 바라보았다. 내 발아래 못가에는 물에 잠긴 하늘이 검고 거울 같은 심연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오리들이 날개 밑에 머리를 묻고 제 모습을 물속 깊숙이 비추면서 물속에 잠긴 하늘에 매달려 선잠을 자고 있었다.
내 머리 바로 위에서 눈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른 커다란 구름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성긴 빗줄기가 긴 유리실처럼 빛났다. 거울처럼 희고 잔잔하고 고른 수면 위에 수많은 못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고 검은 점들로 수면을 다채롭게 수놓으며 튀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했으며, 단 한 가지만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녀는 자신을, 오늘밤을, 오늘 아침을, 마른 풀밭에서 아른거린 그녀의 다리가 움직일 때마다 사각이던 얇은 목면포의 주름 장식을 내게 돌려줄 테고, 그렇지 않다면 우리 두 사람은 살아서는 안 된다!
맞는 말이다. 사랑을 할 때는, 특히 여자를 사랑할 때는 연민의 감정과 동정하는 부드러운 마음을 품으라고 요구하는 어떤 신비한 법칙에 따라, 나는 그녀가 즐거워하고 생기를 띠는 순간과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고 자신을 분명히 드러내고 싶어하는-특히 사람들 앞에서-태도를 몹시 싫어했다. 반대로 그녀의 소박함, 조용함, 온유함, 무력함, 그리고 순식간에 아이처럼 입술을 퉁퉁 부어오르게 하는 고통에서 우러난 눈물을 열렬히 사랑했다.
모두가 자신의 직급과 제복으로 무례해 보일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평생 최고의 직책과 직함을 가졌던 사람조차도자신의 직책과 직함에 결코 익숙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알았다.
대체로 인간의 무능을 바라보는 건 너무나 끔찍한 일이다!
나는 다시 뭔가를 쓰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이 산문이었다. 그리고 쓴 것을 다시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쓰고 발표했던 것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전혀 다른 것, 내가 쓸 수 있었고 써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 즉 내가 쓸 수 없었던 것을 쓰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으로 괴로웠다. 주어진 삶에서 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마음속에 만들어내는 일은 얼마나 드는 행복이고 얼마나 진지한 정신노동인가!
체호프라는 이름에는 그 단편을 꼭 보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처음 몇 줄만으로도 이야기가 주는 기쁨 때문에 질투 어린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사람의 모든 일 가운데 '글쓰기'라고 불리는 가장 이상한 일을 위해 뭔가를 기대하고 생각해내는 생활이 아니라 예정된 일과 걱정거리로 가득찬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오래전부터 부러워했다.
써야만 한다! '전횡과 강압과 싸우기 위해, 억압당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선명한 전형을 창조하기 위해, 사회성과 동시대성과 동시대의 분위기와 흐름을 묘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저 지붕과 덧신과 등에 대해 써야만 한다!
녹슨 쟁반에 받쳐서 내온, 작은 뚜껑과 손잡이를 묶어주는 축축한 가는 끈이 매인 두 개의 하얀 찻잔이 내 앞에 놓여 있었다. 민중 생활에 대한 관찰이라고? 그렇지 않다. 단지 이 녹슨 쟁반과 축축한 가는 끈에 대한 관찰일 뿐이다.
"자기는 '황홀하게 하다', '황홀'이란 말을 자주 쓰네."
"인생은 황홀해야만 해……"
"난 자기에게 마치 공기 같은 것이 될까봐 걱정이야. 공기 없이는 살 수 없지만 공기에 관심을 갖지는 않아."
나는 두 눈을 뜨고 그 바람을 깊이 들이마시고, 베개에 팔꿈치를 괴고 나란히 놓인 다른 베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베개에는 리카의 검은 머리칼과 손수건의 은은한 제비꽃 향기가 배어 있었다. 그녀는 나와 화해한 후에 그 손수건을 오랫동안 손에 쥐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떠올리자, 그때부터 리카 없이 반평생을 살면서 온 세상을 떠돌아다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녀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데, 나는 여전히 살아서 이 세상을 보고 있다.
아버지를 떠올린 때면 나는 언제나 후회하게 된다. 항상 아버지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했고 사랑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아버지의 인생, 특히 아버지의 젊은 날을 너무 몰랐다는 사실에 매번 죄책감을 느낀다. 아버지의 젊은 날에 대해 알 수 있었을 때도 나는 알려고 애쓰지 않았다. 지금 나는 아버지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려고 애쓰고 있지만 완전히 알 수는 없다.
그해 겨울에 나는 스무 살이었고, 아버지는 예순이었다. 왠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언젠가 내가 스무 살이었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내 힘찬 젊음이 막 피어나기 시작했었다는 것을! 그런데 아버지의 전 인생은 이미 저 뒤에 있었다. 그러나 그 겨울에 내 마음속에 일어난 일들을 누구도 아버지만큼 이해하지 못했고, 내 마음속 슬픔과 젊음을 누구도 아버지만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살림살이에서 지독한 궁핍의 모습을 보았다. 찰흙으로 때워놓은 페치카의 갈라진 틈, 난방을 위해 말에게 입히는 거친 옷을 깔아놓은 마루…… 아버지만이 마치 이 모든 것에 대항하듯이 행동하려고 애썼다. 더 마르고 더 작아지고 완전히 백발이 된 아버지는 이제 항상 깨끗이 면도하고 매끈하게 빗질하고, 이전처럼 아무렇게나 옷을 입지 않았다. 노년과 가난의 단정함을 보는 건 고통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