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몽상
이진경 / 푸른숲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수학을 못한다. 뿐만 아니라 가장 확실한 수학이라고 하는 산수도 헷갈린다. 고등학교 때도 점수가 너무 안나와서 포기하려고 했다. 다행히 그 때 수학선생님의 진심 어린 한마디가 그나마 오늘 책 제목에 '수학'이 붙은 책을 읽게 만들어준 것 같다. 그 한마디란 이렇다. "수학은...포기만 안하면 된다."

아무리 그래도 수에 대한 감각이 없다는 건 치명적 약점이다. 이건 모든 것에 수로 표현된 값을 매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에 곤란할 뿐만 아니라 이런 글나부랭이를 쓰는 데도 곤란하다. 수학적 머리가 있는 사람이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몇번이나 들었던지..진정한 천재는 수학과 음악에서만 나온다는 말도 있다. 음악이 수와 깊은 관계에 있다는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다. 나는 수학을 못해서 그런지 음악 점수도 꽝이었다. 젠장, 수학과 음악을 들먹이기 전에 천재가 되기에는 나이부터 이미 글렀다.

 

나는 방금 철학책 한권을 다 읽었다. 제목은 <수학의 몽상>이다. <철학과 굴뚝청소부>를 읽었던가 안읽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 책으로 유명한 이진경 씨 책이다.

 

이 책은 그 당시의 나처럼 수학 점수가 안나와서 고민인 학생들을 위해 수학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주기 위한 책도 아니고, 수적 감각을 길러주기 위한 책도 아니다.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은 '수학의 역사'에 대한 것이다. 수학도 머리가 터지는데 그것의 역사라니! 다 읽고 나서야 알았지만 미리 이걸 알았다면 이렇게 쉽게 손에 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떤 분야의 공부를 하든지 그 분야의 핵심에 접근하는 가장 바람직하고도 빠른 방법은 그 분야의 역사를 아는 것이라고 한다. 내 생각도 그렇다. 수학의 역사라고 해서 '전형적인' 역사책의 이미지처럼 딱딱하고 재미없는 책은 절대 아니다. 

 

수학은 흔히 절대적인 답이 존재하는 명확한 학문으로 취급된다. 이런 점이 수학의 매력으로 불리기도 한다. 수학의 이런 성격을 진리성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이 책은 그것의 파괴를 역사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이 책을 펴게 되면 처음 접하게 되는 증명이 있다. '수학적 진리와 수학적 이론은 아무 상관이 없음'이 그것이다. 책을 펴자마자 등장하는 이 증명을 읽고 나면 (나처럼 수학적 머리가 둔한 사람의 경우겠지만)뭔가 속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고서 작가는 수학은 진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종의 게임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다보면 알게 되지만 수학이라는 게임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다. 유클리드 기하학이라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는 게임도 있다.) 하지만 겨우 이정도로 수학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줄일 수는 없기에 작가 이진경 씨는 엄청나게 노력을 하고 있다. 그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팩션처럼 이야기를 만들거나, 가상의 상황을 만들어 읽는 동안 흥미를 느끼게 한다. 수학을 이용한 영화나 소설을 접하는 듯한 느낌이다. 다만 책의 마지막 챕터에 이르러 지금까지 끌어온 책의 내용(수학의 역사!)을 너무나 직접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바라보고 정리하려고 하여 읽는 이의 흥미를 떨어뜨리고 긴장을 시키는 감은 있지만 에필로그에 가서는 다시 여유롭게 읽고 책을 덮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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