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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프 -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
메리 로취 지음, 권 루시안 옮김 / 파라북스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랫동안 죽음과 관련해서는 '완전한 무'라는 개념에 느끼는 관념적인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종교를 버릴 수 없었던 것도 그 탓이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미처 생각을 하지 못한 게 있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시체가 남는다.
이 몸을 그럼, 내 것이라 부를 수 있나. 메리 로취는 '한때 내 것이었던 몸'이라고 표현하는데, 어느 순간 그조차도 적절치 않은 표현이란 생각이 든다. 이런, 내가 죽은 후 물론 나는 아무 감각도 못하겠지만, 내 시체가 그런 모양으로 썩어들어가거나 혹은 불에 태워지거나... 만약 시신기증을 한다면 칼로 후벼파이거나... 이건 도대체. 머리로 논리적인 사실들을 알긴 알겠는데 계속해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한 감정이 드는 건...
하지만 그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죽음의 얼굴이란 것은. 근육의 텐션이 풀려서 배설물이 나오고 어쩌고 하는 얘긴 충분히 들어 알고 있지 않았는가. 게다가 썩지 않는 시신이란 게 더 끔찍하지 않나. 그 썩는 과정이란 게 시쳇물이 흐르고, 구더기가 꼬물대고, 살이 터지고, 하는 거라고 해도. 그게 결국 자연의 섭리이지 않나. 그걸 모르고 있는 것도 아니었지 않나. '썩어없어질 육신'이라는 말을 그간 얼마나 상투적인 어구처럼 썼나. 그런데 나는 '썩어없어질'이라는 말을 제대로 몰랐던 듯싶다. 정말로 '썩어없어지는' 그 과정이 묘사된 글을 보자 이제껏 내가 '썩어없어질 육신'같은 말을 아무 생각없이 참 쉽게 써왔구나, 생각이 들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사체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까 영화에서의 신체 훼손 장면이든 케이블 의학방송에서 수술을 하는 장면이든 꺅꺅대며 마음이 불편해지는 건,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한, 죽음을 무조건 고통스럽고 무섭고 피해야 할 무엇으로 주입받은, 또 하나의 관념인 셈이다. 그러고 나면 내가 죽은 후 내 시신을 장기 기증을 하건 '퇴비'로 쓰이게 하건, 아니면 뇌사 상태에서 장기를 기증하건, 오히려 이 사체를 '잘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는 거다. 사체를 고압냉축하여 액화시켜 하수구로 흘려보내거나 건조시켜 퇴비화하는 것에 묘한 불편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은 엄연히 공해가 가장 적은 사체 처리 방식이다. 인간의 사체가 지구상의 ' 재활용 불가 쓰레기' 혹은 '유해물질'이 되는 것만큼 슬픈 것은, 또 죽은 이에게 진정으로 모욕적인 것은 없을 거란 생각도 든다.
최근 미국이나 특히 스웨덴 등에서 얘기되고 있는 사체의 퇴비화나 액화는 장례의식이 필요이상으로 화려하고 낭비적인 것에 대한 반발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는 그 사람들과 생각이 조금 다르다. 장례식이란 원래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인간의 문화란 그렇게 단순하게 경제적이고 실리적인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온갖 상징과 은유의 형태를 띈다. 동양의 제사 역시 (원래의 목적은) 죽은자가 아니라 산자를 위로하기 위한 의식이었고. 이런 연장선상에서 쓰잘데기 없이 사치하거나 화려하지 않게 하는 범위에서, 나는 내 유족들이 소박한 규모의 장례식을 치루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온 사람들은, 영화 <맨 온 더 문>에서 앤디 카우프먼의 장례이 그러했듯, 즐거운 노래를 부르며 함께 웃고 춤을 췄으면 좋겠다.
하여간, '나의 (미래의) 사체'에 대해 드는 이런저런 감정을 제외한다면, 이 책은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책이다. 일단 저자가 충분히 존중감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유머러스한 데다, 번역자도 일부 표현을 제외하곤 매우 센스있게 번역해 놓았다. 그 일부 표현이라는 건 도저히 한국말로 제대로 유머러스하게 옮기기 힘든 그런 표현이었을 게다. 읽다가 나는 어떤 문장들은, 도대체 이게 원문이 뭘까? 싶을 정도로 감각있는 한국 문장을 보기도 했다. (대체로 원문을 궁금해 하는 건 번역이 형편없어 한글 문장 자체가 뜻이 모호할 때였는데 말이다.)
저자가 꼼꼼하게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한 각종 사체에 대한 전세계의 문헌들과 역사들 역시 재미있고 흥미롭다. 항목도 다양해서, 저자는 기증된 시신에 행해지는 수술연습이나 해부 혹은 뇌사 (및 뇌사자의 장기이식) 등의 문제는 물론 시체에 가하는 총상 실험이나 운전 충격실험, 성의(聖衣) 증명 실험(예수의 수의의 진위 논쟁), 낙하실험 같은 것 외에도 식인 풍습(혹은 루머)같은 다소 껄끄러운 주제도 사정없이, 예의 그 유머감각을 발휘해 건드린다. 밀화인(蜜化人)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는데, 가히 사체에 대한 전세계적인 인문학적 / 역사학적 사실들이 총망라된 듯하다. 이것이 메리 로취 특유의 유머와 넉살에 의해 무겁지 않게 술술 넘어간다.
새삼 우리가 '죽음'이라는 것을 정의하는 방식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았다는 생각. '뇌사'만 해도 한국에선 아직 거부감이 남아있는 듯하고, 더욱이 '안락사'는 혹은 '낙태' 등의 문제는 여전히 매우 민감한 이슈다. 어쨌든... 죽은 사체들이 이제껏 우리에게 얼마나 수많은 유용한 지식과 현대의 과학과 문화적 풍성함을 제공해 주었나, 생각하니, 과연 사람이란 살아있을 때는 물론 죽어서도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어야겠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