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의 밤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2002년도에 일련의 폴 오스터의 소설들을 연달아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동행]을 제외하곤 도통 내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 분명 그 시점까지 나온 폴 오스터의 책을 '다' 읽은 건 아니었다 - , 내가 읽은 책의 내용이 어떠한 건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런. (이전에 내가 쓴 감상문들을 뒤적거려보니 [동행]과 [달의 궁전], [우연의 음악]을 차례대로 읽었다고 되어 있다.) 다만 폴 오스터의 소설들이 내게는, '우연'이라는 키워드로 관통하고 있다는, 그런 '느낌'들만 기억난다. 그리고 그 우연이라는 게, 보통 소설가들이 구성에 실패해서 궁여지책으로 마구 끼워넣는 그런 우연이 아니라, 폴 오스터 세계의 인물들의 삶을 관장하고 풀어나가는, 그들의 삶과 사건들을 지배하는 법칙으로서의 우연이었다고 느꼈던 그 느낌들만. 그리하여 미욱한 인간, 당하는 인간에겐 그것이 '우연'으로 느껴질지라도, 결국은 어떤 거대한 필연의 법칙의 일부가 아닐까, 라고 생각했던 것만. 어쩌다 오랜만에 다시 접하게 된 폴 오스터 세계의 새로운 책 [신탁의 밤]도 비슷한 느낌이다.

주인공은 시드니 오어라는 작가이다. 저승의 문턱까지 갔다왔으나 이제 몸을 회복하고 아울러 자신의 사회적 생활도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그는 어느 날 중국인 장이 운영하는 문방구점에서 포르투갈제 공책을 사오면서 거기에 이야기를 써나간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시드니 오어의 이야기와, 시드니 오어가 쓰는 소설의 주인공 닉 보언의 이야기와, 책 편집자인 닉 보언이 새로이 받아들게 된 소설, 그리고 그 소설이 그리고 있는 예언의 능력이 있는 사람의 삶. 그러니까 소설 속에 소설이 있고 다시 그 속에 소설이 있어 겹겹이 쌓인 이야기들이 마구 풀어헤쳐진다.

게다가 포르투칼제 공책에 시드니가 쓰는 이야기는 닉 보언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아내와, 자기 부부의 친구인 존 트로즈에 대한 이야기도 쓴다. 또 한편으론 H.G.웰즈의 [타임머신]을 원작으로 새로운 영화 시나리오물도 쓴다. 이 이야기들은 각각 다 다른 이야기들인 듯하면서도 긴밀하게 연결이 돼 있다. 닉 보언의 이야기를 쓰며 현실을 예언하고, 자신이 한번도 의식의 영역으로 떠올리지 못했던, 자신에겐 숨겨졌던 이야기들을 어느 날 갑자기 명료하게 깨닫고(아내와 트로즈의 이야기), 또 미래와 과거가 교차하며 어떤 사건을 막고자 하지만 실패한 채 결국 운명은 실현된다([타임머신]의 시나리오 내용).

번역자는 책후기에서 말이 현실을 구성하고 예언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나는 요 근래에 나를 사로잡고 있는 주제, 그러니까, "인간은 애초에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걸 무의식에 밀어둔 채, 이것을 '다시 알기' 위해 어떤 자극과 계제를 필요로 할 뿐이다"라는 플라톤의 가설을 떠올린다. 플라톤의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면, 자신이 쓴 허구가 일종의 신탁이 되어 현실에서 실현되는 것이나,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이나 내가 몰랐던 일을 예감하고, 나의 예감이 나중에 사실로 밝혀지는 일 등이 결코 이상하지 않다. 인간이 여섯번째 감각(육감, The Sixth Sense!) 혹은 직감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는 의외로 방대한데 이것이 의식의 영역에서 논리와 합리에 의해 정보처리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일뿐 무의식 영역에는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라 가정한다면, 우리가 어느 날 충격적인 어떤 사실을 접하고 놀라면서도 한편으로 '웬지 이걸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느낌'이 든다거나 - 데자뷔? - 혹은, '사실은 난 이걸 알고 있었고 예감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인정했을 때 느끼는 또다른 작은 놀라움과 당혹감이 충분히 설명된다. 그리고 폴 오스터가 [신탁의 밤]에서 다루는 내용들이란 결국, '허구가 현실로 성취되는' 뭔가 신비하고 이상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깨닫진 못해도 아주 종종 일어나는 일련의 흐름들에 대한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고보면 이것은 다시,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거대한 어떤 손길과 연결된다. 인간이 '잊어버렸기에' 혹은 '알기를 두려워하기에' 많은 부분이 묻혀진 채, '알지 못한다고 여겼던' 것들을 '예감'하는 것이란, 그것이 아주 느슨하기는 해도 어떤 일관된 흐름에 의해 일어나는 일들이라 할 수 있을 거다. 무의식의 영역에 밀어둔 상태에서 결국 '우연'이라고밖에 불릴 수 없지만 사실은 필연의 법칙들의 일부인...  그렇게 보이지 않는 손이 간섭하며 일어나는 사건들, 일들. 아마도 우리가 그걸, '운명'이라고도 부르는 것도 같은데... 폴 오스터의 주인공들은 이런 운명이라는 것들에 대해 딱히 부정하거나 도전하려 하지도, 적극적으로 받아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묵묵히 견뎌낸다. 그 손길 혹은 법칙으로 인해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하긴, 그럴 도리밖에 없지 않은가.

그 공책 안의 세계를 중심으로 놓고 다시 생각해 보자면, 시드니의 소설에 존재하는 닉 보언과, 존 트로즈, 또 미래로 타임머신 여행을 한 사람들은 각각의 세계에 각자 존재하는 사람들이고, 이 각각들은, 자신들의 서로 다른 세계가 하나의 우주에 펼쳐진 것을 각각 신기해 하겠지만, 이들은 시드니 오어라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그의 창작의 인물이거나 지인이거나 다른 소설의 세계에서 불려온 사람들이고, 결국 시드니 오어라는 인물에 종속되어 있는 느슨하긴 해도 하나의 필연의 법칙의 지배 하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종국엔 비슷한 운명을 맞이한다. 한 사람은 지하 방공호에 갇히고, 다른 사람은 이루지 못할 사랑과 실패한 결혼, 그리고 아들과의 관계가 잘못 얽힌 미로에 갇히고, 타임머신을 탄 과거의 그가 살던 시대를 기준으로 미래에 갇힌다. 그리고 박박 뜯겨져 시드니의 집에서 떨어진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그들이라고 자신들의 세계가 어느 날 갑자기 박박 뜯겨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즉 파멸 중 파멸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짐작이나 했겠는가. [신탁의 밤]의 주인공 시드니의 관점에서야 그 각각의 허구의 인물 / 실제를 반영한 인물들이란 자신이 노트에 쓴 이야기의 인물에 불과하고, 그리하여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는 걸 (소심하게) 두려워하며 노트를 박박 찢어 쓰레기봉투에 담아 브룩클린의 어느 쓰레기장에다 버릴 수밖에 없는 무엇이었지만 - 사실 소설가가 자신의 완성되지 않은 트리트먼트 상태의 이야기를 쓰레기통에 쳐박는 일이 얼마나 흔한가 - 그렇게 생겨난 허구 세계의 인물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들의 운명이란 어쩌다 존재하게 되어 기막힌 우연의 일련의 사건을 겪다가 결국 어이없는 파국을 맞은 꼴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건, 오늘도 오늘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의 삶과 비슷한 꼴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어떤 창조주를 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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