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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폴 오스터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이 책의 주인공은 '미스터 본즈'라는 이름을 가진 개다. 책의 중반까진 '미스터 본즈'라는 화자를 통해 그의 주인인 윌리 G. 크리스마스라는 '미친 시인'을 그리는 것 같지만,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윌리는 죽음을 맞이하고, 작가는 오랫동안 함께 해 온 주인을 떠나보낸 미스터 본즈가 이후 겪은 모험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미스터 본즈의 눈을 통해, 우리는 아무런 사유재산도 없이 '거지'로 살아가며 시작(詩作)에 몰두하는 윌리 G. 크리스마스의 세계, 식당을 하느라 바쁜 부모한테서 아무런 관심도 사랑도 받지 못하는 중국인 2세 소년 (이름 생각 안남)의 세계, 그리고, 부유한 가정에서 애정없는 결혼생활에 지쳐가는 주부(역시 이름 생각 안남)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된다. 환경도 다르고, 나이도, 성별도, 계급도 다른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너무나 외로운 인생들이란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미스터 본즈'다. 자동차가 마구 달리는 대도시의 뒷골목, 혹은 그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근교에서 '인위적으로' 지어진 고급 빌라 근처, 미스터 본즈가 살았던 곳은 그런 곳이다. 미스터 본즈 역시, 생 자체가 지독히 외롭다. 하지만 그는 그 외로움에 지쳐서 자신을 학대하거나, 절망하지는 않는다. 다만, 윌리가 먼저 간 곳, '팀벅투'로 가기를 희망할 뿐이다. 미스터 본즈가 마침내 자신도 팀벅투로 가게 될 수 있다는 소식을 꿈 속에 나타난 윌리에게서 들었을 때, 그 장소가 산 속의 눈 덮인 숲길 위라는 건, 이 소설에서 도시의 이미지가 계속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상당히 흥미롭다. 춥고 배고프고 지치고 병든 몸의 미스터 본즈가 쓰러진 곳은, 오히려 미스터 본즈에게 상당한 위안을 주는 곳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마침내 미스터 본즈가 팀벅투로 향하는 관문을 향하게 되는 건, 역시나 번잡한 도시의 차도이다. 이겨도 승자요 져도 승자인 영웅게임을 하는 곳. 마침내, 윌리를 만나러 갈 수 있게 해 준 곳. 하긴, 우리가 도시에 살아서 외로운 건 아니잖는가. 인생은 어차피 외롭고, 현명한 건 그 외로움에 절망하지 않고 친숙해지는 것이고, 그리하여 비로소 타인과 진정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 아닐까. 도시는 단지, 말없이 서 있을 뿐이다. 도시에서 나서 도시에서 자란 내게는, 사실 지나치게 친숙한 몸짓을 하는 산이나 바다나 들보다는 오히려 도시가 편하다. 아파트촌이 아닌, 낡은 건물과 좁은 골목길과 좁은 다세대 주택이 잔뜩 있는, 그런 도시의 동네 말이다.
인터넷 검색엔진과 영어사전 등에서 '팀벅투'를 찾아보았다. 아프리카 어딘가에 있는 도시라는데, 영어에서는 그냥 '저어기 머나먼 곳'을 뜻하는 대명사로 쓰이나 보다. 조기 영어교육을 위해 국내에서 팔고 있는 어떤 '영어' 비디오에서는, '북극에서 온 산타'가 아니라 '팀벅투에서 온 선물'이라는 게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