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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너머 -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12가지 법칙
조던 B. 피터슨 지음, 김한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평점 :
”인생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힘든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그래서 인생은
참으로 고단하다. 어떤 때는 정신을 차리고 멋지게 이겨낸다 해도, 잔인한
순간은 거듭 찾아오며 순간으로 끝나지 않기도 한다.“ (P.
320)
얼마 전 둘째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오랜
시간에 걸친 기다림과 유산의 아픔도 겪었기에 둘째의 탄생은 우리 가족에게 더 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출산
후 한동안은 친척과 지인들의 쏟아지는 축하 속에서 들 뜬 마음으로 지냈고, 그 이후에는 아직 어린 첫째를
다독이면서 또, 이제 막 태어난 신생아와 산후조리를 하는 아내를 보살피며 지냈다. 특히, 코로나라는 상황적 특수성이 맞물리면서 출산부터 산후조리까지 2주가 넘는 긴 시간 동안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 지내게 된 첫째는 새로운 환경 적응에 유독 힘들어
했다. 산후조리를 마친 아내는 둘째와 함께 귀가를 했고, 마침내
첫째는 엄마와 감격적인 모녀상봉을 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은 극적이게도 그 이후에 발생했다. 갑자기 첫째가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감기라고 생각했다. 미열과 함께 콧물이 나는 증상이 그동안 몇 번 겪었던 감기와 큰 차이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번 나기 시작한 열은 39도까지 올랐고, 며칠 동안 꾸준히 해열제를 써도 떨어지지 않았다. 열이 나는 원인을
찾기 위해 병원에 가서 우선적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이후 갖가지 검사가 이어졌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급성폐렴과 관련하여 흉부 엑스레이를 찍었고,
노로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소변검사를 받았다.
문제는 피검사 수치에서 발생했다. 혈액 1 마이크로 리터당 4,000개에서
10,000개가 정상 범주라는 백혈구 수치가 2,700이 나온 것이다. 검사 결과에 대해 병원에서는 감기 등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닌 경우에도 백혈구 수치가 떨어질 수 있다고 하면서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재검사를 권했다. 아내와 나는 첫째 아이의 흉부 엑스레이와 소변검사 결과에서 특별한
이상 소견이 없다는 말을 듣고 안도했고,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피검사만 다시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며칠 뒤 나온 재검사 결과는 정말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백혈구
수치는 2,000까지 떨어져 있었고, 혈소판과 호중구 등
혈액 관련 3개의 수치가 모두 좋지 않아 소아 혈액 전문병원의 진단이 필요하다는 것이 담당의사의 소견이었다.
”질서의 신 오시리스도 조각조각 부서질 수 있다. 이런 일은 개인, 가족, 도시, 국가에서
항상 일어난다. 사랑이 끝날 때, 경력이 단절될 때, 소중한 꿈이 날아갈 때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익숙했던 질서가
사라진 자리에는 체념, 불안, 불확실, 절망이 들어찬다. 허무주의와 심연이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등장해 안정적이고
바람직한 삶의 가치들을 파괴한다. 결국 혼돈이 출현한다. “ (P.
149)
삶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안정된
상태가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미지의 것이 느닷없이 닥친다. 그토록 원하던 둘째가 태어나면서 마침내 아내와 함께 꿈꾸던 이상적인 가족의 윤곽을 그릴 수 있었고, 그 안쪽을 우리 가족은 어떠한 형태의 기쁨과 추억의 색으로 채워 나갈지 생각만으로도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던
시점에 가족의 안정을 뒤흔드는 혼돈이 갑자기 찾아왔다. 질서가 무너진 곳에 들어선 것은 원망과 현실부정
그리고 두려움이었다. ‘왜 하필 우리 가족에게, 지금 이
순간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하는
세상에 대한 원망이 마음속에서 고개를 들었고, ‘검사결과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일시적 수치 감소를 확대해석한 과잉진단이나 과잉진료는 아닐까?’하는
의구심과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그중 에서도 가장 두려웠던 건 이제 눈앞의 현실이 되어 다가올지도 모를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였다. 불안과 두려움은 자가 증식하며 다른 모든 감정을 잠재우며 무한정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면서 얼마나 소요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치료 기간을 견뎌내야 하는 첫째가 너무나 안쓰럽게 느껴졌다. 어린이집 보다 유치원 가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던 첫째가 또래 친구들과 누릴 수 있는 평범한 삶을 너무나 이른
나이에 포기해야할 수도 있다는 생각과 그러한 삶 대신 고통과 인내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건 너무나 가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정해지지 않는 혼돈의 시간 동안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삶의 무작위성이 너무나 무섭게 느껴졌다.
또, 첫째의 치료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은 아내와 나 모두 같은 생각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둘째가 있었기에 전적으로 첫째만을 바라보고 대처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배려를 받을 수 있는 기간과 가족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을 계산해야 했고, 그러한 제약조건하에서 아내와 나의 역할분담 또한 고려해야 했다. 아내가
첫째를 우선적으로 뒷바라지를 하고, 내가 신생아인 둘째를 돌보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었지만, 그러면서 회사생활까지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따라서
새롭게 주어진 조건하에서 삶을 다시 정상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필요한 기간과 방법을 다시 고민해야 했다. 나와
내 가족을 둘러싼 삶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그곳에 사는 괴물은 점점 더 포악해져갔다. 삶의 의미는
빛을 잃어갔고, 절망과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다.
”만일 여러분이 인생의 한계에 용감하게 맞선다면, 고통의 해독제가 되어줄
삶의 목적을 갖게 된다. 심연과 자발적으로 눈을 맞춘다는 것은 삶의 어려움과 그에 딸린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짊어질 능력이 당신에게 있다는 뜻이다.“ (P.
410)
저자 조던 피터슨은 심연에 들어앉아 있는 괴물에 맞서 힘없는 먹잇감처럼 숨죽이고
움츠리거나 배반자가 되어 악에 봉사하는 대신 맞서 싸우는 게 인간의 본성임을 또, 주변을 지옥으로 바꿀
정도로 원통해하지 않고 존재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견딜 때 진정한 삶을 되찾을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지만, 솔직히
눈앞에 닥친 절망적인 상황을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부정적인 감정들을 애써 떨쳐버리고 책임감을
갖고 삶에 대한 진실한 태도를 유지하라고 하는 것은 그저 교과서적인 지침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다. 점점
현실이 되어 목을 죄어오는 삶의 조건 앞에서 나는 숨이 막히고 두려워 혼자 여러 차례 눈물을 흘렸다. “감사는 원망의 대안이며, 어쩌면 유일한 대안일지 모른다. (P. 423)”는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이 현실로 닥친다면 어느 누가 삶에 감사할 수 있단 말인가.
“만일 당신이 고통과 적의에 맞서 진실하고 용감하게 싸운다면 당신은 더 강해지고, 당신의
가족도 더 강해지고, 세계는 더 좋은 곳이 된다. 모든 것이
더 나빠지길 바란다면, 그 대신 분개를 선택하면 된다.” (P. 394)
내가 불안과 두려움, 원망 등 부정적
감정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삶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본성 보다는 가족이라는 존재 덕분이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나에게 의지하는 가족들을 떠올리면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생각이 내가 삶에 대한 의지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안정된 질서 속에서 그동안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던 가족이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피부로 체감할 수 있었다. 내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 이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지가 되고 큰 힘이 되었고, 혼돈을
헤쳐 나가는 강력한 무기와 힘으로 작용했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내게
”여보, 좀 쉬어. 어차피 장기전이 될 수도
있어.“라고 어둠 속에서 아내가 조용히 건넨 말 한 마디, 회사를
향해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말없이 아내와 맞잡았던 손의 온기에서 나는 위로 받았고, 삶에 대한 의지를 다질 수 있었다. 감사가 원망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실재하는 것과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독특하게 섞여 있는 것을 본다. 우리가 신뢰와 사랑에 기초한 관계를 만들고 유지할 때 그 가능성은 정말로 기적을 일으킨다. 그렇게 기적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심연과 어둠의 해독제를 발견할 수 있다. 고통스러울지라도 감사하라.“ (P. 430)
조던 피터슨은 인간은 생애 전반에 걸쳐 자신을 개념화하는 존재 즉, 시간을 인식하는 동물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를
모두 책임져야 하는 존재다. 현재의 우리는 미래에 매여 있는 동시에 우리의 미래도 현재를 기반으로 설계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바로 지금의 현실에만 해당하는 것이므로 미래의 궁극적 가치를
대변하는 목표와 책임이 없으면 행복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 에서다. 또한, 현실에 실재하는 것과 미래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은 신뢰와 사랑에 기초한 관계에 기반한다는 저자의
말에 나는 깊이 공감할 수 있었고, 그 말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계획이나 구상을
‘청사진 (Blue Print)’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미래를 그리는 행위는 특정 시점의 순간을 박제하는 사진 보다 그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진을 찍는
행위가 순간의 단면을 정확히 스크랩하는 것이라면,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일정 시간에 걸쳐 대상을 관찰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걸쳐 변화하는 대상의 입체적 모습을 화폭에 담는 것이다. 따라서, 사진은 특정 시점에 국한된 대상의 모습을 무엇보다 정확히 포착하는 반면 그림은 일정 시간 동안의 대상의 변화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사진이 아닌 그림을 지향하면서 신뢰와 사랑 그리고 책임이
동반된 관계를 그려 나갈 필요가 있다. 저자의 말처럼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현실의 행복과 미래의 기적을
일궈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림 속 불분명한 선들로 이뤄진 한 사람의 형상 그리고 그가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구축하며 쌓아온 세월의 궤적은 사진 보다 불분명해 보일 수는 있어도 그 시간의 농축성을 기반으로 안정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질서 너머의 미래 모습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모범답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삶이 던지는 시험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각자가 서로 다른 시험에
응하고 있다는 것을 종종 망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답을 모방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모범답안을
찾는 것으로는 세상이 던지는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없다. 조던 피터슨은 전작 <12가지 인생의 법칙>과 본작 <질서 너머>를 통해 자신의 경험과 철학이 담긴 삶에 대한
여러 가지 법칙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 법칙들을
그 어느 누구에게도 통용될 수 있는 절대적인 법칙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의 모든 법칙들은 ‘질서’와 ‘혼돈’, ‘의미’와 ‘책임’이라는 키워드로 대변될 수 있고, 이러한 큰 흐름 안에서 우리는 법칙들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각자의 상황에 맞게 적용하고 변주할 수 있다.
”당신이 가는 길은 의미 있는 인생의 길, 질서와 혼돈의 경계에 해당하는
좁고 험한 길이며, 그 길을 끝까지 종주할 때 비로소 질서와 혼돈이 균형을 이룬다.“ (P. 109)
나는 삶을 수용한다는 것은 자발적이고 실천적인 선택을 내리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는 저자 조던 피터슨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 책임이란 다름 아닌 강인한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주어진 삶의 조건을 받아들이며 그 삶을 살아내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상실과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기꺼이 짊어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현실의 삶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연약하고 불완전한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 앞에서 용기를 가지고 상황에 대응하고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 쉽다.
하지만 어쩌면 그러한 불완전함과 취약성이야말로 각자의 개별적 상황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분모가 아닐까? 신뢰와 사랑, 자발적인
책임이 동반된 관계를 구축하고 용기와 위로를 나누는 것은 서로의 결핍과 불완전함을 일정 부분 해소해줄 수 있는 심연과 어둠의 해독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절망속이라
해도 함께 있다면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아픔도 진정시키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뢰와 공감을 기반으로 진실된 관계를 구축하고 서로 연대하며 살아갈 수 있다.
삶은 질서와 혼돈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정된
질서 속에 갑자기 혼돈이 찾아올 수도 있는 반면에 모든 것을 상실한 듯 한 순간에 새로운 질서가 나타날 수도 있다. 질서와 혼돈의 경계를 걷는다는 것은 삶의 길 위에 있다는 것이고, 삶의
길을 걷는 것이 행복보다 훨씬 더 나은 지향점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위험
앞에 선 사람들은 믿기 힘들 정도로 강하고 용감해질 수 있다. 또한 진실한 관계 구축은 기적과 같은
힘을 발휘하여 어떤 짐이라도 함께 짊어질 수 있다. 우리 가족도 그렇게 삶의 길 위에 설 것이고, 흔들림 없이 함께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