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일 한 문단씩 읽어온 이 책. 영어판과 같이 읽었다. 가끔 불어판도.
이 책 읽는 동안 같이 읽은 바슐라르는 적어도 두 번 책이 바뀐 거 같다. 바슐라르는 아주 두꺼운 책은 쓰지 않았고 사실 거의 전부 얇은 편. 아도르노도 아주 두꺼운 책을 썼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의 책들 중 <부정변증법>은 사실 분량에서도 거의 대작 풍모 나는 책이긴 해서, 적어도 3년 동안 아도르노는 내내 이 책인데 바슐라르는 하나 치우고 하나 더 치우고 ... 그랬던 느낌.
이 책 번역에 나는 여러 번 감탄했다. 이건 뭐 나님, 나새끼, 노바디 나부랭이;의 의견일 따름입니다만, 한국어 번역된 철학 고전 중 번역이 잘된 책을 선정한다면 베스트에 꼭 넣어야 할 책이다 쪽이다. 사실 오역이 (영어판, 불어판 기준) 없지 않고, 역어 선택이 문제라 보일 대목들도 있고 인용 표시와 관련한 오류도 적어도 하나 발견했던 거 같고, 흠잡을 데 없는 번역인 건 아니다. 그러나 아도르노가 아주 자주 쓰는 아주 복잡한 문장들을 그 복잡함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정확하고 아름답게 옮긴다고 감탄할 수 있는 대목들 아주 많다.
그런데 번역이 잘되면 뭐하나, 우리의 현실에서 아무 의미가 없는데, 아무 뜻도 가질 수 없는데! 며칠 전 이와 같이 한탄하고 노트를 남겨 둠. 읽은 문단은 3부의 1장, 칸트 윤리학 비판하는 장에 있고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포함함.
"그러나 예지적 성격과 경험적 성격의 구분은, 순수 의지 혹은 부가요인 (das Hinzutretende) 앞에 다가오는 영원한 장벽(Block)에서 경험된다. 그것은 생각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외적인 고려이며, 여러모로 종속적인 그릇된 사회의 주체들의 비합리적 이해관계들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일반적으로 현사회 속에서 예외 없이 모든 개인에게 그의 행동을 미리 규정해주는 것이자 만인의 죽음이기도 한, 부분적 개인이익의 원칙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독어, 영어, 불어 참고하지 않고 한국어만으로 아도르노의 저런 문장들이 이해될 수 있겠?
이해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잘못? 이해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 (....) 내 생각에 가장 필요한 건 칸트 윤리학에 깊이 영향 받은, 그러면서 우리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 하튼 도끼같은 책. 그래서 많이 팔리고 논의된 책. 그런 책이다. 그런 책이 단 하나만 있더라도, 칸트 윤리학에 대해 쓰는 아도르노 문장들이 (한국어 번역만으로) 이해되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아도르노 윤리학에 깊이 영향 받은 또한 우리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 도끼같은 책이 쓰이기 시작하고. 그렇다고 생각한다. 영향이 싫다면, 영향 없이, 자생, 자력으로, 아무튼 도끼같은 책.
칸트 번역도 그렇겠지만 특히 아도르노 번역에서 실감할 수 있을 거 같다. 우리는 한국어로 진짜로는 사유를 한 적이 없다는 것. 정신 모두를 말 속에 담는 일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난해한 철학서의 "이상적 번역"을 한국어로는 사실 상상도 하기 어렵다는 것. 아무리 어휘와 문장이 정확하고 아름다워도 거기 내용을 담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책들이 해보이는 것처럼 내용을 담는 시도를 본격적으로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독재가 아주 옛일이 아닌 사회에서, 말과 삶, 정신이 분리되면서 살아간다는 게 뭐 그리 분노할 일은 아니겠지만, 나는 이 분리가 꼭 필요하고 이 분리에서 "득을 보는" 이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성의 삶을 위한 표준. 이것에 반대할 이들. 본능적으로 반대할 이들. 본능적일 뿐만이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