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즈의 죽음에 대한 책. 

이 책도 알라딘 중고 구입했고 그렇게 구입하는 책들 다수가 그렇듯이 

필요했던 책도 아니고 읽고 싶던 책도 아니고 심지어 그런 책이 있는 줄 알고 있던 책도 아니었다. 

가격. 가격이 결정한 구매. 그렇게 구입한 책들 중 다시 사는 책들도 있다. 샀는 줄 기억 못하는 일 자주 있다. 

필요하지도 않았고 읽고 싶던 것도, 알고 있던 것도 아닌 책이라면 그럴 만하다. 


어느 날 이 책 집에서 발견했고 

읽기 시작했는데, 여러 대목 현실 웃음 터지게 하는 책이었다. 

그 드문 미덕. 


반즈의 형은 철학자다. 철학자의 언어 습관, 사고 습관을 보게 하는 대목들 있다. 


그들의 어머니가 타계했을 때. 장례식장 측에서였나 반즈에게, 어머니 시신을 보겠냐 

묻는다. 마음이 완전히 정해지지 않은 반즈가 형에게 형의 의사를 묻는데, 형의 답이 이런 거였다. 


God. No. I'm with Plato on that one. 


장례 문화가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거 같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자식이 부모의 상을 치르면서 시신을 보지 않기를 택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그게 선택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미국도 비슷한데 (Six Feet Under에 따르면)? 영국이 좀 특이하네. 


여하튼 반즈는 저 한문장도 (대강 저런 문장이다. 책 찾아서 정확히 옮기고 싶은데 지금 어디 있나 찾을 수 없다. 사들인 중고, 사들였던 중고, 몇십년 걸쳐 사들였던 새책과 중고..... 가 가득한 집) 웃기게 쓴다. 음성지원 되게 쓴다. 


형의 저 반응에 

잠시 침묵했던 반즈의 답은 이것이었다. 


What did Plato say? 


------------------------------------- 


반즈 형제들처럼 늙어갈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 그 문제에 관한 한 나는 플라톤 편이야. 

- (......) 플라톤이 뭐라고 했는데? 


------------------------------------- 


철학에 대한 에피큐러스의 입장은 이런 거였다. 

젊어서는 철학 공부를 미루지 말고 늙어서는 철학 공부를 지겨워하지 말라. 

영혼의 건강을 위한 일에서, 너무 이른 시작도 너무 늦은 시작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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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0-07-25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톤이 뭐라고 했나요? ㅎㅎ

몰리 2020-07-25 20:13   좋아요 0 | URL
살아서도 육체는 우리의 관심이 아닌데 죽은 다음의 육체라면.....?
같은 거였던 거 같아요. 형이 반즈에게 막 얘기해 줍니다. 반즈가 (이게 형의 얘긴데 라면서) 어수선하게 정리했던 거 같아요. 근데 저 ... 잠시 침묵 후, 플라톤이 뭐라고 했는데? 이거 웃겨요. ㅎㅎㅎ 모든 철학자들에게 비슷한 상황 만들어주고 싶어집니다.

blueyonder 2020-07-25 20:57   좋아요 0 | URL
아 의문이 풀렸습니다. ㅎㅎㅎ 감사합니다. 몰리 님, 즐거운 저녁 보내세요~

Joule 2020-08-12 14:43   좋아요 1 | URL
저 말 저도 곧잘 해요. 그런데 반즈 형은 그래도 설명을 해주기는 해줬나 보네요.
제가 저렇게 물었을 때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거든요.

Joule 2020-08-11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어서는 철학 공부를 미루지 말고 늙어서는 철학 공부를 지겨워하지 말라.‘

안 그래도 요즘 철학책이 다시 읽고 싶어지던 중이에요.
저는 과학, 특히 심리학과 진화, 뇌과학, 그중에서도 특히 교류심리학에 관심이 많은데,
요즘에는 좀 지쳐 있달까, 길을 잃었달까, 그런 와중인데
철학책이 마치 컴포트 푸드처럼 그리워지던 중이었어요.

저 말 수첩에 적어둬야겠네요. 도움이 돼요 저에게.


몰리 2020-08-11 10:34   좋아요 0 | URL
저도 참 와닿던 말이었어요.
철학적인 (여기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그 의미들 각각 다) 접근이
어디서나 필요하고 어린이서부터 노인까지 삶의 어느 시기에든 필요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도 좋은 가격에 나온 중고 

안 살 수 없어지는 책들 있어서 주문했다. 하나는 이것. 

어제 비 진짜 장시간 대량 오던데 비로 인한 고립 중 저런 건축 이미지들을 

두꺼운 책으로 천천히 넘기면서 본다면 


행복할 거 같았다. 

조금 전 배송출발했다는 문자 받았는데 

어제처럼 그 비 대량으로 오래 오던 중 배송되어 빗소리와 함께 보았다면 좋았을 책이고 

오늘은 비 오지 않고 어제와 달리 조금 덥기도 한데 (어제는, 춥기까지 했다......... 이건 시원한 게 아닌데? 그래도 시원함의 축적을 위해 창문으로 들이치는 비바람 + 선풍기 바람 다 쐬었다) 오늘 읽는다면 크게 감흥 없을 거 같지만 




빛과 물, 선, 면, 하늘, 산. 

보고 있으면 스토아 (.....) 학파처럼 

serene........... 해질 거 같다. 





다른 하나는 이것. 

애드리언 토민은 뉴요커지 화보 많이 그린, 열성적인 다수 팬들을 거느린 

만화가라고 한다.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은 눈을 위한 축제라고. 눈을 위한 만찬이라고. 





사지 않으려고 (중고 가격이 좋단 이유로 책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사들일 때가 아님을 알고 있다) 하다가 사고 만 것은 검색해 본 그의 그림들이 마음에 들어서. 그의 그림들도 한참 보고 있으면 


serene.... 해질 거 같은 그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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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 쇼어의 파리 국립도서관 출입증.

유명한 사람들 다 이 출입증 있었던 거 같아진다. 





밀러와 쇼어. 

밀러의 회고록에 "앳스홀" 남자들도 등장한다. 아마 그들 중 최악은 쇼어의 첫남편. 

그는 쇼어와 이혼하고 나서 재혼하는데, 재혼한 여자도 자기 목적에 이용했다. 재혼한 여자는 나중 자살로 의도된 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자살이 아니라 할 수 없는, 약물과다복용으로 죽는다. 어느 tv 쇼에 출연한 그는 자기와 결혼했던 여자들이 겪은 불행, 자기가 그들에게 살게 할 수 있었던 지옥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쇼어가 첫남편과 살고 있을 때 

밀러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 점을 쇼어에게 알게 했다. 

쇼어의 반응은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정신에 끌려.(his mind still turns me on)" 


........................ 이상하지, 이게 나이의 힘인가 모르겠는데, 이 모두가 다 이해된다. 

뭘 또 정신에 끌려. 그게 너의 허영 때문인 건 아니니? : 이런 반응, 아예 하지 않는다. 

밀러가 본 모두가 정확할 거라 믿을 수 있고 (자기가 남들에게 살게 했던 지옥을 과시... 이 부분 특히) 

알아서든 몰라서든 자기파괴적이어서든 피상적이고 저급한 남자의 무려 "정신"에 반하고 관계가 지속됨. 

이런 것도. 


밀러와 쇼어가 같이 오래 존경했던 멘토가 있었다. 고유명사고 내게 생소한 이름이라 누군지 확인은 못했는데 

어쨌든 불문학자. 이, 그녀들보다 나이 많고 학계에서 존중받는 인물이었던 사람이 밀러를 공개적으로 모욕하기 

위해 계획했던 공개 대담에 대한 회고가 책에 있다. 그와 밀러, 이렇게 두 사람이 대담하는 자리였고 

실제 대담이 청중 앞에서 시작하기 전까지 밀러에게 알려졌던 건 그녀가 그때까지 해오던 연구가 주제일 것이라던 것.  

두 사람이 무대에 올라 대담이 시작했을 때, 그게 아니라는 걸, 그녀가 해온 연구를 조롱하고 무화하는 자리로 계획한 게 그의 의도였다는 걸 그녀는 바로 안다. 


그녀는 그와 절연한다. 

그녀가 저 얘기를 어떻게 기록하든, '피해의식'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페미니스트에게 농담도 가려해야 한다... 반응하는 이들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대 위에서, 그 사람의 한 순간 눈빛만으로도 진실의 전모는 파악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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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은 다이앤 미들브룩. 

귀... 귀엽. 17세 정도이실 듯. 

조금 더 세월이 지나면 





이런 모습이셨다. 





17세 당시 헤어스타일 약한 버전으로 복귀. 

낸시 K. 밀러가 회고하는 걸 들으면 내가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거 같아지기도 한다. 

다이앤 미들브룩은 친구들에게 항상 그렇게 느끼게 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 관계는 사랑의 관계다. 나는 지금 진짜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녀를 만나는 건 연인을 만나는 것과 비슷했는데 긴장과 불안을 제거하고. 


어떤 사람이었을지 바로 상상되었다.  

바로 상상된다는 게 놀라웠다. 밀러가 문장을 정확하게 쓴다. 탁. 탁. 탁. 아무 넘치는 요소 없이. 

바로 그 사람을 데려와 앞에 세우는 거 같아지기도 한다. 정말? 그래봐야 문장들인데? 


아무튼. 밀러도 미들브룩을 사랑했다. 60세가 넘어 만난 두 여자가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 밀러의 책 읽기 전에 저런 문장 보았다면 별로 떠오르는 게 없었을 텐데 지금, 일단 적어도 그들 두 사람 자신이 

강력한 참조점 된다.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고 (못 되고) 

그런 사람을 가까이서 만나지 못할 거라도 

세상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친구들에게 "사랑받는다" 느끼게 하는 친구) 실감하며 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의 느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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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95년에 나온 책. 나오미 쇼어의 마지막 책. 

나오미 쇼어는 1943년생이고 2001년에 58세로 타계했다. 사인은 뇌출혈. 

예고 없던 죽음이었다. 낸시 K. 밀러가 그 갑작스러웠던 죽음 후 있은 변화에 대해 자세히 회고한다. 

그 죽음 전에 두 사람은 이미 긴 세월 절교한 사이였다. 쇼어가 쓴 모든 책을 쇼어의 서명과 함께 쇼어가 주는 

책으로 받았다가 (절교한 다음이라) 이 책은 밀러가 직접 샀다고 한 걸 보면, 적어도(가 아니라, 길면) 7년의 단절. 이 책 전의 책은 93년에 나온 George Sand and Idealism 제목의 책 (관심이 간다! 상드와 관념론.....) 


두 사람의 우정이 겪은 가장 결정적 타격은 

밀러가 쇼어에게 쓴 수많은 편지들을, 쇼어가 이혼하면서 남편을 떠날 때 남편이 마음대로 볼 수 있는 곳에 

두었다는 것. 쇼어의 남편은 그 편지들을 다 읽었고 그 편지들을 이용해 소설을 썼다. 쇼어를 비방하고 그와 함께 

밀러도 저격하는소설. 편지 문장들이 그대로 소설에 인용되었고 그 소설의 진실(이혼 당한 쇼어 남편이 전부인 쇼어를 매도하기 위해 썼고 쇼어 절친 밀러가 쇼어에게 보낸 편지들이 그대로 쓰였음)을 온세상이 알았던 건 아니라도 적어도 밀러-쇼어 주변의 사람들, 불문학 전공자 다수가 알았다. 


나라면 이 때 마음이 완전히 떠났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밀러는, 소설 출간과 함께 격심한 고통이 시작했음에도 오랜 세월 쇼어의 편에 섰다. "어떻게 편지들을 남편이 볼 수 있게 하고 집을 나오니? 어떻게 내가 쓴 편지들을 그렇게 할 수 있니?" 따졌다고 회고하기는 한다. 쇼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키피디아에서 전남편 이름이 나오긴 하는데 그 이름에 해당하는 항목이 없는 걸 보면 유명한 작가는 아닌듯. 그 소설 궁금해서 찾아지면 구할 생각도 했다...) 


이들이 아직 젊었을 때. 삼십대였을 때. 서로 경쟁하지만 서로 보완하는 사이이기도 했을 때. 

첫책이 나왔을 때 "To Nancy, The Woman in My Life" 이런 헌사를 쓰고 주는 사이였을 때. 그 시절에 대한 회고가 

가볍거나 허위스럽거나 감상적이거나 그렇지 않다. 긴 책이 아니라서 사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 긴 세월이  

압축되는데, 7-80년대 뉴욕에서 두 사람이 어떻게 살았을지 보이고 잡히듯 생생한 느낌 있다. 


그랬다가 금이 가고 부서진다는 것. 

헤일브런 장에서도 헤일브런과 우정에 대해 양가 감정이 없지 않았다. 그토록 가까웠고 많은 시간을 같이 했음에도 우리는 사실 진짜로 만난 적은 드물었다.... 같은 말 하는 대목도 있다. 이것도 그 사정이 이해가 된다. 그들 관계가 어떤 것이었겠고 밀러의 양가감정, 진짜 만난 적은 드물었음 이런 게 진실일 것임을 알면서 동시에, 두 사람은 중요한 무엇을 지속적으로 같이, 그리고 서로에게, 했다는 것도 알아진다. 이걸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게 우정이 아니면 무엇이 우정인가? 하게 되기도 한다. 


쇼어와의 관계도 마찬가지. 두 사람은 결별하고 나서 

그러니까 서로 연락없이 지내면서도, 복잡하게 우호적인 관심을 지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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