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지성과 지능의 구분이 있다. intellect vs. intelligence. 

지능은 인간 정신의 도구적 차원. 계산과 조작의 차원. 지성은 (더 깊이 질문하고 탐구하는) 성찰, 상상의 차원. 


이건 아도르노에게도 아주 중요한 주제였고 

흔히 지성(똑똑함)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 실은 그게 아니고 

흔히 멍청함으로 여겨지는 것이 실은 지성이고... 같은 얘기를 여러 곳에서 한다. 망설임이 지성의 표지다. 이런 얘기도 하는데 출전은 아마 <미니마 모랄리아> 아니면 <계몽의 변증법>. 망설임에 해당했던 영어 단어는 hesitate (hesitation). 


모더니즘은 (특히 <율리시스>나 <파도>, <피네건의 경야> 같은 '본격' 모더니즘은) 

읽기의 속도에서 일어난 혁명. 독자가 읽고 이해하기 위해 들여야할 시간, 그 시간이 얼마나 늘여질 수 있나 실험하기. 

누가 누가 더 그 시간을 늘리나 경쟁하기. 그런 거였단 생각을 한 적이 있고, 살면서 내가 해 본 '독창적' 생각.... 에 이것 속한다면서 은밀히 기뻐한 적도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기 진실이 있긴 있다 쪽이기도 하다. 모더니스트로 알려진 누구든, 빨리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입장이 이렇다보니 

빨리 읽고 많이 기억한다가 자랑인 해롤드 블룸을 보면서 

좀 우습기도 했다. 진짜의 지성은, 늘리기에 있어요. 그걸 왜 모르세요. 


김기춘에 대해서 박영수 특별검사가 

한때 그가 검찰총장이어서 모시는 사이이기도 했고 매우 논리적인 사람이라 조금은 걱정이 된다.. 

같은 얘기 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김기춘은 정말 "지능"의 끝판왕일텐데 (지성은 완전히 부재하면서) 

이런 사람은 어떻게 감당해야하는 걸까,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맞서야 하나. 알고 싶어지고, 오직 김기춘이 

패배만을 하는 특검이고 그 결과를 보면서 즐겁고 웃게 되길 바라봄. 


흐으. 김기춘이 아니라 지성 vs. 지능 관련 딴 더 철학적 얘길 쓰려고 했던 것 같은데 

맥주가 다 마셔가고 내일엔 내일의 포스트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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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an 2016-12-02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능과 지성의 구분이 인상적이네요. 저는 평소에 공부 잘하는 것과 똑똑한것은 다를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렇게 있어보이게 설명할 수 있는거 였네요~^^

몰리 2016-12-03 09:05   좋아요 1 | URL
정말, 책읽기는
내 생각에 더 좋은 옷 입혀주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
 



블룸의 The Western Canon 이미지 검색을 해보니 

이탈리아어 (짐작인데 맞겠죠) 판 이미지도 뜬다. 영어판 표지는 

내 보잘것없는 미감에도 추하게 느껴지는 표지. 영어판 표지에 비하면 

이 이탈리어판 표지가 103배쯤 우월하다... 고 생각하긴 했으나, 조금 더 들여다보니 

영어판 표지도 아마 실제 의도와 달리 자기 희화화, 조롱하듯 보이지만 이 표지도 그렇게 보인다.  

정전은 유적이 아닌가? 그러는 것 같은. 




이것이 추한 영어판, 아마 초판 표지. 

더 찾아보니 다른 표지로도 나왔다. 




아래 포스트에 올린 인터뷰의 끝 부분에서 해롤드 블룸이 뉴트 깅그리치와 그가 강력히 대변하는 

미국의 몰락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한다. 뉴트 깅그리치. 한때 거물 정치인이었던 것 같긴 한데 "깅그리치가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그리고 재선에도 성공한다면 어떤 세계가 우리에게 닥쳐올지 나는 상상도 못하겠다" 같은 얘길 블룸이 하는 걸 들으니, 등장 인물들이 바뀔 뿐 세계는 영원히 같았다..... 가 차라리 더 맞는 거 아냐? Nothing ever stays the same 아닌 것 같다.  


깅그리치와 그의 정신적 (정신.. 이라는 말로 그들의 부패에 품위를 부여해선 안되겠지만 한 번만) 

형제들, 하여튼 그의 동류들을 "끔찍한 도덕적 백치들 hideous moral imbeciles"이라 부르면서, 그들이 셰익스피어를 읽었다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쓰면서 웃게 된다) 지금의 그들과 다른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기승전셰익스피어. 

가끔, 기승전단테. 


그런데 이것, 답이 없다며 그만 생각하지는 말아야할 문제. 그렇지 않나. 

도덕적 백치들을 어찌할 것이냐. 도덕적 백치들이 덜 나오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나는 셰익스피어든 단테든 혹은 아도르노든 

천천히 깊이, 할 수 있는 한 천천히 깊이 읽고 

그러면서 아주 많이 토론하고 쓰기. 이것이 인간을 더 윤리적이 되게 한다고 

조금 전 맥주 사오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믿어 봄. 믿음. 윗점은 '천천히'에 찍혀야 한다. 

하루에 세 줄. 한 번의 수업에서 세 줄 혹은 여섯 줄까지. 모든 문장에, 그 문장과 함께 혹은 그 문장에 맞서 생각해야만 답을 쓸 수 있는 질문을 주고. 모두의 답을 공유하고, 답들을 연결하고 확장하면서. 


바슐라르는 이미지 하나를 놓고 한 학기 수업을 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어떤 바슐라르 연구서가 전해주기도 한다. 그 정도 (정말로, 이미지 하나로 한 학기 수업) 하려면 

선생이 바슐라르여야 하지만, 일반적인 '진도'처럼 보이면서 실은 아주 느리고 깊게 읽기는 일반적인 

선생들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수업을 원하는 학생이, 없다시피일까. 나만 원하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튼 나라면, <계몽의 변증법>을 문장 단위로 답해야할 질문과 함께 읽는다면 좋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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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 박사 과정 대학원에 가고 싶다며 추천서를 부탁하러 온 학생과 

교수 사이 대화. 유튜버가 만든 동영상인 거 같은데, 그렇다면 정말 쓸데없이 고퀄. 


말리고 싶다. 대학원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너 지금 내가 어디서 강의하고 있는 줄은 보고 있니?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네브라스카의 노웨어 한복판이다. 

가르치려고, 노웨어로 가고 싶니? (We're in the middle of nowhere, Nebraska. Do you want to move to the middle of nowhere to teach?) 


학생은 에머슨 주제로 쓴 페이퍼로 A를 받았다면서

박사과정에 가서, "에머슨과 죽음" 주제로 논문을 쓰고 싶다고 한다. (*이런 말까지, 대학원 시절 기억하는 문학 전공자들에게 순간 복잡한 감정, 가슴이 뭉클해질 법도 하다). 이 말에도 교수는 말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연구한 주제에 대해 너만이 할 수 있는 독창적인 무엇을 생각해내기는 극히 어렵고, ta는 노예노동이며 그 노예노동을 하면서 매주 수천페이지 분량의 책들을 읽고 수백 페이지 분량의 페이퍼를 써서, 날마다 은밀히 자살을 생각하는 교수들에게 제출해야 해. 그게 대학원의 삶이야. 


학생은 예일대로 가서 해롤드 블룸에게 배우고 싶다고 하는데 

이 말에 교수는 "OMG! 해롤드 블룸은 여성혐오주의자고 인종차별주의자다. 

그 사람은 심지어 영문과 소속도 아냐. 아무도 그 사람과 잘 지낼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사람 혼자를 위한 학과를 따로 만들어 줘야 했어." 


과장이 물론 있긴 한데, 00년대 미국의 문학 전공 대학원 현실에 대한 완전히 정확한 클립. 

그래서 추천서를 써주실 거에요? 학생의 마지막 질문에 "월요일까지 써두기로 하겠다"고 교수가 약속하면서 

끝나는데 이런 설정에서 보이는 미국식 낙관 (할 사람은 한다.... 누군가는 그를 돕는다), 그 낙관도 좋다. 





캐나다 CBC 라디오에서 95년에 했던 해롤드 블룸 인터뷰. 

2012년에 다시 방송하면서 당시의 인터뷰어가 17년 뒤 붙인 짧은 해설이 앞에 있는데 

"호전적인 반동(pugnacious reactionary)으로 유명한 블룸이어서, 나 역시 그를 만나러 가기 전 

그를 싫어할 것으로 예상했다. 뜻밖에, 그의 깊은 감정과 학식, 문학을 향한 열정이 나를 감동시켰고 

나는 그의 편이 되었다" 이런 얘길 한다. 그러나 실제로 들어보면, 아 정말 이 사람 같이 잘 지내기 힘든 사람이겠다. 

같은 생각이 아마 거의 반드시 떠오를 듯. 


이 정도로 자기 과시를 하는 사람은 내겐 처음. 

"나는 지금도 책을 빨리 읽는다. 물론 65세를 넘기면서 25세일 때만큼 

빠르진 않다. 그래도 억지로 나를 강제하는 게 아니면, 그리고 미학적 즐거움이 아니라 정보의 흡수가 목적이면 

페이지 전체를 한 눈으로 보고 기억하면서 책장을 연달아 넘기는 속도로 읽을 수 있다." 인터뷰어가 "5백 페이지에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죠." 


"형제들 중 막내였는데 가장 똑똑한 아이이기도 했다. 내 형제들 중 나를 제외하면 아무도 고졸 이상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 살때부터 강박적 독자였다. 절대적으로 강박적 독자였다. 그리고 내겐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고 방대한 기억력이 잇었다." "내 유년기 브룩클린의 우리집 근방은 유태인들만 살았고 집에서나 거리에서나 이디시어만 들었다. 나의 영어는, 지금까지 발음이 조금 어색하지만, 전적으로 내가 나에게 준 것이다. 나는 영어 발음을 책으로 독학했다. 책을 읽으며, 발음을 궁리했고 익혔다. 나의 영어는 나의 것." 





위의 영문과 대학원 가서 "에머슨과 죽음" 주제로 논문 쓰겠다고 하는 여학생에게 

공감... 할 수 있을 것 같다. 에머슨의 삶도 글도 아주 매혹적일 수 있을 듯. Ralph Waldo Emerson: Mind on Fire 이런 제목 전기가 96년에 캘리포니아 대학 출판부에서 출간되었는데, book tv에서 전기 저자 인터뷰. 


전체가 다 들을 만하지만 내게 특히 좋았던 대목은 

"이 책의 구성이 독특하다. 5페이지 분량 짧은 장들이 100개가 있다. 그렇게 쓴 이유는?" 

이런 질문에, 대학원 시절 한 교수가 주었던 '독자를 지루하게 하지 말라'는 조언이 중요했고 

그에 동의한다, 그에 따른 선택이다.. 같은 답을 저자가 한다. 아주 대단히 파격적인 건 아니라도 어떤 장르에서든 

누군가는 실험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 이걸 아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주변 공기가 신선해지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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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국회 로텐더 홀에서 벌어진 철야농성). 




(*초선의원 박주민이 완성한 럼버섹슈얼). 



어제 종일 지극히 우울했는데 

자고 일어나 산책하고 들어와서 

박주민 의원 얼굴 보니 매우 상태 좋아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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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공친 하루. 

저녁 먹고 나서, 망가져가는 세계에 대해 토니 주트는 뭐라 썼을까 보자고 

Reappraisals: Reflections on the Forgotten Twentieth Century 펴서 마지막에서 두번째 장 

"양들의 침묵: 리버럴 아메리카의 기이한 죽음" 조금 읽다가 토니 주트의 말로 구글 이미지에서 어떤 게 찾아질까 검색해 봄. 


위의 말이 순간, 작지만 현실적인 위로 주었다. 

"역사는 언제나 우리에게 일어나고, 변하지 않는 그 무엇도 없다." 음.

그 위로의 정체는 뭘까. 그것 분명 반동적인 무엇일 거 같단 불안이 든다. 

부시 주니어 재선한 다음 <식스핏언더>에서, 클레어 이모 사라가 하던 말. 

"우주는 그리도 광막하고, 무엇도 우리 통제 하에 있지 않다는 것." 이런 방향 위로였나. 






"작정하고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그것이 역사학자의 임무는 아니다. 하지만 역사학자는

사람들에게 거의 언제나 불편한 이야기를 들려 주어야 하고 

어째서 그들이 느낄 불편함이, 우리가 좋은 삶을 옳은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진실의 한 부분인가 설명해야 한다. 잘 조직된 사회는, 우리가 집단으로서의 우리에 대한 

진실을 아는 사회지, 우리 자신에 대해 기분 좋은 거짓말을 하는 사회가 아니다." 


좋은 삶, 옳은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진실엔 반드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불편함이 있다. 

이 정도 아이디어도, 대부분이 견디지 못하지 않나. 진짜로는. 


며칠 전에, 쓰다 만 페이퍼를 열어봤더니 (그러니까 근 한 달 냅뒀던 건가) 

일단 길이로 거의 반은 썼고 그 중 좋다 할 대목들이 없지 않아서, 그래 이어서 쓰면 돼. 

이거 쓰고 이어 하나 더 쓰면 정규직 될거야. 정규직 되어야 책을 쓰지. ;; 이런 생각과 함께 잠시 

낙관했었다. 사실 주로 늘 낙관하는 편이긴 하다. 그런데 오늘은 좀 아니었고, 우울하고 힘들고 졸리던 하루. 


이런 독서 모임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는데 

참여 인원은 다섯 명 정도. 독서 대상은 철학이나, 아니면 본격 인문서 (피터 게이의 <계몽> 같은). 

각자 다섯 개의 질문을 가져와서 그 질문들을 놓고 무겁고 진지하게 천천히 얘기하기. 그 질문들은 

책 내용에 직접 관련되는 것이기보다, 바깥으로 많이 확장되는 종류로. 책을 읽지 않더라도, 책 주제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종류. 


같은 주제 하에 다섯 권의 책을 고르고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읽은 다음, 다섯 권 전부에 관해 가져온 질문들을 놓고 얘기하기. 

얘기의 방향이 자기가 읽은 책과 직접 연관되고 해설이 필요하다면 읽은 사람이 책임지고 해설하기. 

토니 주트의 <재평가>도 그렇게 읽어보고 싶어진다. 질문 다섯 개를 고심하며 작성해 보고 싶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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