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전달자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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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로이스 로리는 1937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태어났다. 이 책은 미국에서 1993년에 출판된 책으로 350만부나 팔린 베스트셀러라 한다. 우리나라에선 번역이 늦은 셈이다.

 

난 영문번역 소설에 대한 불만이 많다. 분명 번역 잘못이라 여겨지는 게 출판사에서 그렇게 읽지도 못할 정도의 외국 소설을 찾아내어 번역출간을 시도하진 않을 거라 보기 때문이다. 난 꽤 여러 권의 영문 번역 소설을 읽다 포기했다. 영문번역이 까다로운 건지, 영어와 한국어 차이가 너무 심한 건지. 대부분의 일본 문학 번역소설은 너무나 상쾌한 데 말이다.

 

<기억 전달자>의 첫 문장을 읽으며 놀랐다. 간결한 문장. 무엇보다 완전한 우리글.

 

작가의 문장도 훌륭했겠지만 번역가의 우리말 능력과 해석력이 대단했다고 생각한다. 영문 번역 소설을 읽으면서 번역이란 느낌이 없이 읽은 소설은 이게 처음이었다.

 

 이 작품은 미래 소설이다.

미래의 마을.

사랑이나 우정 같은 인간적인 감정을 완전히 없애고 인간을 똑같은 규칙 아래 통제하는 사회. 태어날 때부터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보육사의 손에서 자라고, 1년이 지나면 이름을 받고 기초 가정이라 불리는 남녀의 집에 입양이 되고, 12살이 되면 원로회의에서 정해주는 직업을 부여받고 그 직업을 수행할 수 있는 훈련을 받게 되고....그리고 철저히 보호받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임무해제라는 이름 아래 영원히 마을에서 사라진다. 물론 정상적으로 태어나지 못하거나 쌍둥이로 태어난 아이 중 하나도 임무해제로 제거된다. 물론 마을 사람들은 임무해제의 진정한 의미는 모른다.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과거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은 하나. 바로 기억 보유자. 이 사람만이 과거의 기록이 적힌 책을 볼 수 있고 과거 사람들이 살던 생활, 감정, 고통을 느낄 수 있다. 과거 기억 보유자는 마을에서 존경을 받으며 원로회의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자문역할을 한다. 그는 과거의 경험, 기억을 알기 때문에 유일하게 지혜를 갖고 있다.

이런 기억전달자는 그 마을에 단 한 사람만이고 그의 수명이 다할 때 즈음 다음 선정자에게 전수 된다.

 12살 주인공 조너스12살 되던 해에 기억 보유자로 선정되고 기억 전달자로부터 과거의 모든 것을 전수받게 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감정을 되찾게 되는데. 그 중 가장 강렬한 느낌의 사랑을 알게 되고, 지금의 생활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한다. 그 과도한 행복의 추구 때문에 불편이나 불만이나 상처를 거부한다. 심지어 사랑의 상처까지도 피한다.

극대한 행복 추구를 위해 국가가 개입하여 개인의 적성을 파악하고 적성대로 키워내고 그 적성만이 자기 것이라고 판단하고 살아가는 국가가 정해준 적성 외는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기억전달자의 사회.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개개인의 소질, 적성 개발이 개인의 행복과 나라 발전에 기여하는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기억 전달자 사회처럼..

아무래도 핵가족 사회, 부모 모두가 직업을 가지는 사회에서는, 아이들의 양육 환경이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

부모는 자녀와의 공유시간이 모자라다 보니 느긋하게 자녀와 정서적 교류를 하지 못하고 짧은 시간에 자녀를 알아내고자 한다. 이런 틈새를 파고들어 심리학, 적성 관련 책들이 많이 만들어 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 전반의 성장에 관한 문제를 적성 개발 쪽으로 초점을 맞출 때 복합지능을 가진 인간의 다양성은 무시될 수 있지 않을까?

 기억전달자는 사회의 안정과 개인 행복 추구라는 것을 목표로 인간의 수많은 감정을 없애버린 사회 이야기이다. 과학을 앞세운 사회는 인간의 감정도 관리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감정을 관리하는 사회,

감정을 관리 당한 사람들이 사는 사회,

그들이 만든 세상에서 태어난 아이들,

그 아이들이 하는 사랑,

관리당한 사랑의 감정.

그 사랑은 어떤 것일까?

그 사랑도 다양하고

그 사랑도 사람마다 다양하고,

특별하고,

짜릿하기나 한 것 일까?

정말 궁금하다.

 

이 소설은

그런 사회를 경고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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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 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컬렉션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6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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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은
'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콜렉션' 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만큼, 책을 읽는 내내 지적유희가 어떤 것인가 제대로 보여주었다.

지식 캐기의 즐거움.
감자 한알을 당기면 줄줄이 이어지는 탐스런 감자들. 그 쾌감은 밭에서 감자를 캐 본 사람이라면 박수를 치며 공감을 할 것이다.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새로운 인물, 새로운 이야기가 줄줄이 펼쳐지는 글에서 난 감자밭의 감탄을 연발한다. .
한명의 인물 따라 관련있는 인물들이 그물망 처럼 얽혀 있고, 이야기 거리가 그믈망 한가득이었다.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한다.
나도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은 그 곳이 존재하고 인간이 존재하는 동안은 멈출 수 없는 매력임엔 틀림없으리라.
다분히 방랑자 기질인 나는 홍대용, 박제가를 따라 18세기의 문물과 지식인을 만나는 여행에 기꺼이 뛰어든다.
그리고 같은 만남에서, 각자의 느낌을, 각자의 책으로 만들었던, 선조들의 지적 유희에 흠뻑젖어들었다.

여행하는 것 보다는 적은 돈으로 이런 엄청난 즐거움을 선사해 준 인물은 '정민 교수'.
저자는 2012년 7월 18일 1년간 하버드 대학 옌칭연구소의 방문학자로 초청을 받아 그 곳에 머무는 동안 옌칭도서관에서 사료를 살펴 연구했고, 18세기 조선의 실학자 홍대용, 박제가 등이 연행길에서 만난 중국학자와의 교류에 관한 책을 만들었다.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은 연구서는 아니다.
연구서를 만들기 위해 주제에 관련된 인물의자료를 수집하는 이야기, 그리고 그 인물과 자료에 관련된, 40화나 되는 방대한 이야기이며 연구서의 밑그림이다.
그렇지만 그의 탁월한 해석력이 그것만으로도 무척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이 책에서 인용되는 자료의 일등공신은 일본인 학자 후지쓰카다. 그래서 '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콜렉션'이란 부제가 붙은 모양이다.
후지쓰카는 경성제국 대학 교수로 있었으며 한국 중국의 문화 교류 자료를 수집, 연구하다 조선의 대학자, 김정희를 만난다.
김정희의 학문에 매료된 그는 추사에 관련된 많은 자료를 수집하였고, 1940년 정년퇴직하여 일본으로 돌아갈 때 우리나라에서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돌아갔다. 그러나 그 많은 자료는 1945년 3월 10일에 이루어진 미국의 도쿄 폭격으로 잿더미로 변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방공호에 있었던 일부의 자료가 미국 옌칭도서관으로 들어갔고, 나머지는 후치스카의 아들에 의해 추사가 마지막 살았던 과천 시청에 기증되어 추사 박물관이 만들어졌다.
정민교수의 옌칭 박물관의 감자캐기는 그러니까 후지쓰카의 자료 였다.
일본인들이 자료 수집과 정리의 귀재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민교수도 그의 자료를 보면서 매우 부러워했고 나는 우리 것이라는 것에 집착해 속이 상했다.
그러나 한일 병합시절의 한국에서 그 자료가 안전했으리란 보장이 없고 그런 의미에서 순수한 학자적 관심과 열정에서 후지쓰카란 학자가홍대용, 박제가 등의 지식인들의 자료를 정리해 둔 것이 다행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도 우리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를 못했던 것이 아니라, 많은 전란으로 소실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옌칭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내즐거워 하는 저자를 상상하면서 같이 즐거웠고,
'열하일기' 속에서만 알고 있었던 18세기의 중국과의 교류의 대략적 모습을 볼 수 있었고,
특히 홍대용이란 인물이 대학자로 내게 새롭게 다가왔다.


아직 저자는 갈길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독자는 저자 덕분에 앉아서 책장 넘기는 것으로 지식을 즐기는 기쁨을 누렸다. 쉽게 누리긴 했지만, 도서관에서 원하는 자료를 찾아내는 저자의 즐거움과 그런 자료를 알아볼 수 있는 저자의 지식이 한없이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후대에 남길 유산으로서의, 연구물의 성과가 기다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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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영역
사쿠라기 시노 지음, 전새롬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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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영역>은 질투에서 비롯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가 사쿠라기 시노는 비현실적인 사랑의 감정이나 흥미진진한 사건 없이 잔잔한 일상속의 질투, 욕망을 그렸고 작가적 필력으로 나를 그 잔잔한 일상의 세계에 몰입하게 했다

 

얼마 전 읽은, <긍정의 뇌>의 저자질 테일러

인간이 사고에 몰두할 때 좌반구의 뇌와 우반구의 뇌는 뇌량을 통해 쉬지 않고 대화를 하며, 이 내적 대화는 인간 의식의 중요 기준이 된다.”고 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를 인식하고 나의 이익을 계산하는 것은 좌반구의 뇌가, 전체를 보고 타인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것은 우반구의 뇌가 하는 일일 것이다. 결국 인간은 두뇌로 인해 두 개의 마음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두 개의 마음은 평상시에는 잘 분리되지 않고 드러나지도 않지만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할 큰 자극이 가해지는 순간, 어느 뇌의 작용이 큰가에 따라 상반된 모습으로 드러난다.

 

<순수의 영역> 주인공들도 들끓는 내면 속 두마음의 불협화음을 꽁꽁 숨겨둔다. 아주 가까운 남편 혹은 아내, 애인 앞일지라도 드러내지 않는다.

 

소설 속의 순수의 영역은 천부의 서예 능력을 타고났지만, 또래에 비해 지능이 떨어지는 지적 미숙 상태의 25살의준카’.그녀는 소녀 같지만 소녀도 아닌, 그 나이 또래의 여성적 매력과는 동떨어진, 성별마저 느껴지지 않는 순수함과 투명성을 지닌 여자다.

 

준카는 구시로 시립 도서관에 새로 부임한 관장 노부키의 여동생인데, 노부키는 25살이나 된 여동생, 준카를 돌보는 것이 힙겹다. 그러면서도 준카를 좋아하고 기꺼이 돌보아줄 뜻도 있는 리나라는 여자 친구가 있지만, 그녀와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결혼할 여자가 같이 져야할 큰 짐을 가진 그는 그런 조건을 달고 결혼해서 행복해 질수 없다고 생각한다.

노부키는 어릴 때 자살한 어머니 때문에 준카와 함께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이런 성장 배경이 그의 성격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일까.

그는 인간관계가 주는 삶의 재미보다 일에 더 집착하고 때로는 애써 얻은 소중한 것을 무작정 버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오래 사귄 여자 친구와의 관계도 더 이상 진전이 없다. 그런 그가 레이코라는 여자를 만나면서, 레이코의 요조한 듯 음탕한 묘한 매력에 점점 끌려 들어간다.

 

또 한사람 주요 등장인물은 준카의 천부적 서예 재능을 질투하는 서예작가류세이’.

류세이는 그의 어머니에 의해 만들어진 서예작가이다.

류세이의 어머니 역시 서예작가였지만 현재는 뇌경색으로 누워있다. 아들을 작가로 키웠던 대단한 열정은 그대로 집착으로 변해, 병을 핑계 삼아 아들을 여전히 자신의 손아귀에 틀어쥐고 있다.

류세이는 한때 창작만 꿈꾸던 순수작가였지만, 부인 레이코의 경제력에 기대어 병든 어머니를 돌보며 어머니의 서예교습서를 운영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레이코를 만나 열렬히 구애한 끝에 결혼을 했고, 세상이 자신의 서예실력을 알아주길 기다리지만 기대는 좌절되고 상처를 입는다. 언젠가는 성공하여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부인에게 떳떳한 남편이 되고 싶은 욕망은, 그의 순수함을 점차 변질 시키고 서예 실력도 그 자리에 머물게 한다.

그리고 천부적인 서예실력을 가진 준카를 만나 다시 한 번 절망한다.

 

류세이의 부인인 양호 교사 레이코’.

레이코는 모든 일을 내가 선택하고 책임도 지는 삶,

외로움도 호사롭게 누릴 수 있는 삶,

혼자 시들어가는 삶,

혼자 잠들고 혼자 눈뜨는 삶,

그런 삶의 내면을 지닌 여자다.

그래서 그녀는 결혼이라는 형태에 그 어떤 기대도 없었고 상대방에게 아내가 있는 것조차 상관없었다. 오로지 상대에 대한 자기의 감정에 따라 움직였다.

류세이의 서예에 대한 재능과 그녀에 대한 류세이의 순수한 열정에 대한 동경으로 결혼한 지 10. 10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계속된 시어머니 병간호와 늘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류세이. 세월이 그녀의 마음을 변하게 만들었는지, 아님 변함없는 환경이 그녀의 열정과 동경을 좀먹었는지 모르겠지만, 류세이와 결혼할 때 가졌던 동경심과 새롭게 자리잡은 경멸 사이를 오가며 류세이와 시어머니를 냉정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주변에 새롭게 등장한 노부키에게 좋은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이들 네 사람은 류세이가 시립도서관을 빌려서 개최한 개인전에서 만난다.

준카는 자신이 가진 천부적인 서예 능력을 모른다. 그러므로 류세이가 뭘 부러워하는지도 모른다. 오빠 노부키가 누구에게도 신세지는 것이 싫어 정착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도 모른다. 그리고  레이코가 자신에게 숨기고 오빠 노부키를 만나는지도 모른다. 준카는 존재하는 그 자체로, 어떤 것에도 질투 따위의 이기적 감정은 없다, 그녀는 그냥 오빠를 좋아하고 레이코와 류세이 그리고 오빠의 여자 친구 리나를 좋아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과 욕망을 채우는데 준카를 이용하거나 관계 속에 끼워 넣을 뿐 준카를 한 사람의 인격체, 그 자체로 봐 주지 않는다.

류세이는 준카의 실력을 어떻게 훔칠까,

레이코와 노부키는 준카를 통한 자연스런 만남을.

그리고 리나 역시 멀어지는 노부키 마음을 준카를 통해 얻고자 한다.

 

준카가 마지막으로 서 있었던 누사마이바시 다리.

준코를 따라온 서예교습소 원생 요시후미의 비틀린 질투심 때문에 순수의 영역그 자체인 준카는 세상에서 사라진다.

준카의 죽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밀려온 후회와 정화의 시간.

그러나 정화 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준카가 남긴 마지막 유작에 또 다른 욕망의 파도가 덮친다.

 

모든 사람의 마음엔 분명 순수의 영역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수의 영역은 잠깐 존재할 뿐. 곧 뒤따르는 다른 감정에 덮여버리는 모양이다.

 

**

 

마지막 책장을 덮고 다 식어버린 커피를 마셨다.

쓴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순수의 영역>의 마지막 장면처럼.

 

<순수의 영역>을 읽는 내내 감정을 가라앉히고 주변 사람들의 기색을 살피게 되었다.

아마도 작가가 전달하는 심리 묘사에 나도 걸려들어 주인공의 기분으로 산 모양이다.

 

몇 년 전 홋카이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지금도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삿포로에서 오타루 가는 열차를 탔을 때의 기억.

열차가 오타루에 가까워지면서 철로가 바다 옆을 지났다.

바다를 스치듯 달리는 기차.

파도가 제법 거칠었던 바다가 바로 옆에서 출렁이어 마치 바다 위를 달리는 것 같았다.

광활하고 웅장했던 태평양 바다. 그때 일본이 섬나라라는 것이 몹시 실감났다.

<순수의 영역>을 읽는 내내 오타루로 갈 때 보았던 바다가 떠올랐다.

그리고 겨울 홋카이도의 흰색과 회색이 <순수의 영역> 배경지로 겹쳐졌다. 물론 <순수의 영역> 배경은 일정이 짧아 가보지 못했던 구시로라는 곳이지만.

  

구시로엔 세계적인 습원이 있어 꼭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순수의 영역> 때문에 보고 싶은 것이 또 하나 더 생겼다.

몹시 추운 겨울날 아침 이면 구시로 강에 연잎 얼음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구시로 강이 흐르는 누사마이바시 다리에서 연잎 얼음과 시립 도서관을 바라보고 싶다는. 그리고 내 마음의 순수의 영역을 찾아볼 것이라는.

근데 어쩌나.

홋카이도의 방사능 수치가 엄청 높다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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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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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85일 미국의 영화배우 마릴린 몬로가 죽었다.

마릴린 몬로를 좋아한 30다나카 가즈미치란 남자, 남자는 일본도로 동네 주민에게 칼을 휘둘러 3명이 죽고 5명이 다치고 사건현장에 한 살의 여아가 살아남았다.

 

그는 왜 칼을 휘둘렀을까?

붉은 막대기처럼 보였다는 피에 젖은 일본도’, 그리고 살아남은 한 살 여자아이.

난 책속으로 뛰어들어 주인공 아카야마 리노를 따라 간다.

 

리노는 오늘 사촌오빠가 갑자기 창문을 열고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전화를 받는다. 사촌오빠 도리이 나오토팬드럼이란 밴드에서 키보드를 맡고 있고 친구 오스기 마사야와 공동 작곡도 하는 재능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촌오빠의 이유가 분명치 않은 자살.

그리고 그녀에게 새로운 사건이 하나 더 일어난다.

할아버지 아키야마 슈지의 타살, 그리고 할아버지가 키우던 나팔꽃 화분이 사라진다. 에도 시절에 있었다던 이제는 사라져 버린 노란색 나팔꽃’. 이 나팔꽃 씨앗을 먹으면 환각 증세가 나타나므로 몽환화라고도 불린다.

 

몽환화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비밀스런 일들. 거기에 관련된 사람은 한두명이 아니다. 사건의 중심을 향해 움직이는 주인공 리노, 나도 리노의 뒤를 따른다.

나는 리노를 따라 도쿄의 거리로 나선다.

오모데 산도 거리의 카페에서 몽환화를 뒤쫓는 경찰관 가모 요스케를 만나고,

그 인연으로 요스케의 동생 소타도 만난다.

리노소타는 사건의 중심에 떠오른 몽환화에 대한 같은 궁금증으로 뜻이 통한다.

둘은 진실을 찾아 함께 길을 나선다.

나도 그들을 따라 신주쿠, 시부야 지하철 역 그리고 시나가와, 요코하마까지 걷기도하고 지하철을 타기도 한다.

 

몽환화에 얽힌 사건을 따라가자 뫼비우스의 띠처럼 붉은 깃발의 일본도를 든 다나카 가즈미치를 다시 만나게 되고, 새로운 진실이 고개를 든다. 그리고 노란색 나팔꽃 몽환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는데,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그리고 흥미를 가지고 읽을 독자를 위해 줄거리 소개는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주인공이 만드는 따뜻한 세상이다.

이번 <몽환화>도 예외는 아니다. 살해당한 할아버지 아키야마 슈지는 정의로운 사람이고 그의 도움을 받은 형사 하야세 료스케는 사건 해결에 전력을 다하는 의리를 보여준다, 그리고 주인공 소타와 냉철한 지성의 소유자인 형 요스케와의 관계에서 독자들은 인간의 궁극의 목표인 따뜻하고 행복한 삶을 발견하게 된다.

일본은 2011년 대지진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 문제는 일본만이 아닌 세계적인 문제였다. ‘히가시노 게이고도 작가로서 이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원자력 문제를 노란색 나팔꽃을 쫓아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과 절묘하게 엮어서 <몽환화>에 담았다.

 

주인공 소타는 원자력 공학과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2011년 대지진 이후 자신이 하고 있는 학문에 회의가 들기 시작하는데

 

<책 속에서, 75>

소타,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취직?”

소타의 물음에 후지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아버지는 원자력발전과 관계없는 회사에 들어가길 바라셔.”

, 지금은 그게 타당한 생각이겠지.”

후지무라는 차를 마시며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애써 몇 년씩이나 원자력을 공부했는데 관계없는 회사에 들어가라고? 어쩐지 아깝다고 해야 하나 허무하다고 해야 하나, 받아들이기 힘들어.”

우동 정식을 다 먹은 소타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동감이지만 앞으로를 위해 필요한 생각이야. 세상 이미지가 너무 나빠. 예를 들어 결혼하려는데 여자 쪽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써야 하고 태어난 아이가 따돌림을 겪는다면 견딜 수 있겠어?“

후지무라는 얼굴을 찡그렸다.

결국 얘기가 그렇게 되나?”

우리가 속은 거야. 국민도 속았다고 생각하겠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우리라고. 도대체 뭐가 꿈의 핵연료 사이클이냐! 꿈도 희망도 아니었어.” 소타가 내뱉듯 말했다.

그러니까 너도 원자력과는 연을 끊겠다고?”

당연하지!”

 

그러나 <하가시노 게이고>는 결말 부분에서, 일본에 만연해 있는 원자력 기피에 대해, 학교로 돌아간 주인공 소타의 입을 통해 일본이 해야 할 일을 말하고 있다.

 

<책 속에서, 418>

결론부터 애기하자면 계속하기로 했어소타가 말했다.

계속해? ?”

물론 연구지. 나는 평생 원자력을 연구할 거야.”

후지무라는 눈을 희번덕거렸다.

정말?”

, 정말.”

무슨 소리야? 장래성이 없다고 전에 말했잖아.”

후지무라는 몸을 웅크리듯 팔짱을 꼈다.

“2030년에 가동하는 원자력 발전소가 제로가 된다고 햐도 원자력 발전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니야. 오히려 폐로문제는 그대로 남아. 게다가 오십 기 이상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대량의 폐연료봉이 보관되어 있는 상태겠지.”

그야......그렇지.” 후지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집은 방치하면 폐가가 돼. 하지만 원자력 발전은 달라. 방치한다고 저절로 페로가 되는게 아니야. 이를테면 발전을 중지해도 엄중하게 관리하고 신중하게 폐로 절차를 밟아야 해.

-중략-

실질적으로 이 나라는 이제 원자력발전에서 도망칠 수 없어. 그런 무서운 선택을 수십 년 전에 이미 내려버린 거야.“

-중략-

네가 얘기하는 바는 알겠는데 그거, 엄청 배고플 거야. 세상으로부터 차가운 시선도 받아야하고, 수십 년이 지나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게 돼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어.” 소타가 말했다. “그냥 내버려둬서 사라진다면 그냥 두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받아들여야 해. 그게 나라도 괜찮지 않겠어?”,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은 일사천리로 전개된다.

탄탄한 구조와 사건위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 궁금증이 가속도가 붙어 단숨에 읽어나가게 만든다. 넓은 강물이 거칠 것 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시원스럽다.

하지만 너무 빨리 지나와 버려 남는 아쉬움.

일사천리로 전개되는 그의 이야기를 물에 비유하여 생각해 보았다.

이야기는 굽이 없고 경계 없는 넓은 강물처럼 흘러만 갔다. 너무나 잘 흘러가기만 해서 요란한 소리로 떨어지는 폭포의 장쾌함을 맛볼 수도, 깊숙한 계곡을 흘러가는 아름다운 물소리와 빛깔을 느낄 수도 없었다는 것.

감상이 있었던 부분이 있었다면 주인공 소타의 첫사랑 정도랄까....

아님 내가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심각한 사랑의 삼각관계를 기대했나?

 

한 사람의 독자로서 욕심을 내자면 그런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었다는 것.

물론 감상에 젖기를 원한다면 그런 소설을 찾아 읽으면 되지 않느냐는 비난이 예측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게 인간의 심리인 모양이다. 김연아에게 끊임없이 기대와 염원을 품고 있었듯이 말이다. 원래 기대란 감정은 능력자에게 품는 감정이 아니던가. 좋아하고 능력 있는 작가에게 기대를 하고, 그래서 아쉬운마음을 품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것도 사랑의 한 방법이라면, 그런 사랑을 누구를 향해 품어볼 것인가.

히가시노를 사랑하는 독자들이라면 내 심정을 이해해줄 것 같다.

내가 그를 무척 사랑하는 독자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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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꿈결 클래식 1
헤르만 헤세 지음, 박민수 옮김, 김정진 그림 / 꿈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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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화산처럼 뜨겁게 주목받는 것이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휴화산으로 담담히 우리 기억에 사장된다. 그러나 여기, 멈춤이 없는 화산이 있다.

꿈결 출판사의꿈결 클래식 시리즈’1번으로 새롭게 번역된 <데미안>!

새 번역본 <데미안>을 다시 읽어볼 기회가 생겼다.

맨 처음 <데미안>을 접했던 시절.

<데미안>은 그 시절 청춘의 아이콘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읽은 <데미안>이 주는 감동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감동의 내용은 다소 달라졌지만 화산처럼 가슴을 뜨겁게 하는 열기는 전혀 다르지 않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100년 전,

헤르만 헤세가 살았던 시대,

그 시대의 언어와 사회가 배경이 된 소설.

그리고 청춘시절의 <데미안>이 주었던 감동. 그리고 지금의 이 강렬한 느낌.

나는 여전한 감동으로 가슴이 뜨겁다.

시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정신이 나를 흔들고 있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젊다고 밖에 할 수 없던 시절,

흔히 청춘이라고 부르던 그 때,

알 수 없는 미래와 맞닿아 있으면서도 보장된 미래가 없고, 뚜렷한 확신과 방향도 없이 방황하던 대학 시절에 처음으로 <데미안>을 읽었다. 감동을 받은 기억은 있지만 내용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구절.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당시, 나는 그 구절 하나로 나의 불안을 알아챘고, 알을 깨뜨리는 용기로 취업 전선에 뛰어 들었다.

주는 메시지는 달라졌지만 <데미안>은 여전히 활화산이다.

청춘 시절에는, 어린 아이가 가지고 있는 안주라는 을 깨뜨리는 용기를 주었다면 지금은 인간 성찰이라는 새로운 세계의 을 제시하고 있다.

기독교 철학에서는 인간의 본성에 선과 악이 있다고 말한다. 기독교를 믿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선과 악의 본성 중에서 선을 강조 한다. 중세를 넘어서 헤세가 살았던 20세기 초의 유럽도 신 중심의 세계관을 가진 기독교의 억압이 여전하였고 그러면서 인간 이성의 합리성을 신뢰하는 세계관도 자리 잡아 두 개의 세계관이 공존하던 시절이었다.

헤르만 헤세는 엄격한 개신교 가정에서, 강압적인 기독교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러나 그의 타고난 성품은 그것을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부적합했다. 따르지 않으면 상처가 되었을 흑백논리의 융통성 없는 세계관. 자연에 대한 이해와 인간적 해방을 추구하는 그의 기질과는 너무나 다른 사회 분위기.

그의 글을 읽어보면 그 고통을 아프게 느낄 수 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고통의 어두운 터널.

그가 어두운 터널을 지나서 마침내 밝은 세상을 마주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두운 터널의 아픔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는 작품이 탄생을 했는데, 그 작품이 바로 필명을 에밀 싱클레어로 바꾸어 발표한 소설 <데미안>이다.

<데미안>의 주인공에밀 싱클레어를 통해

그는 당시 기독교적 가치관과 그 세계가 요구하는 질서에 대해서,

그 질서가 요구하는 자연스럽지 못한, 우주의 섭리에 위배되는 것에 대하여,

그리고 자신의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금지된 세계의 욕망과 그 두려움과 매혹에 대하여,

자신이 경험한 방황, 신과의 합일 과정, 아름다운 청춘의 모습에 대하여,

군더더기 없이, 시대를 관통하는 깨어있는 의식으로,

우리에게 웅변한 셈이다.

***

내게 용기를 주었던 문장!

새는 투쟁하며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는 신이 허용한 선의 세계 속에서 안전한 어린양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싱클레어에게 금지된, 그러나 강렬한 유혹에 이끌리는 소위 악으로 규정된 다른 세계가 신이 허용한 선의 세계와 동일한 것으로 깨닫고 인정하는 문장이다. 그리고 동시에 신을 벗어나 자아를 회복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자아를 회복한 싱클레어는 자신의 인도자 친구인 데미안에 이르고자 끊임없이 내면의 길을 찾아다니고 마지막 데미안이 곧 자신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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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클레어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그에게 말을 알아들었다는 눈짓을 보냈다. 그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연민에 찬 미소였다.

꼬마야!”

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의 입은 내입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프란츠 크로머를 지금도 기억하니?”

그가 물었다. 나는 그렇다는 뜻의 눈짓을 했고, 미소도 지어 보일 수 이었다.

꼬마 싱클레어, 내말 잘 들어! 나는 떠나야 할 거야. 언제가 프란츠나 그 밖의 다른 일로 다시금 내가 필요할지도 몰라. 그땐 나를 부르면 말이나 기차를 타고서 단번에 달려오진 못할 거야.

그러면 너는 네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내가 네 안에 있음을 알 게 될 거야. 알겠니? 한 가지 더!

에바 부인이 내게 입맞춤하고는 말했어. 너한테 좋지 못한 일이 생기면, 내가 받은 키스를 네게도 나눠 주라고... 싱클레어, 눈을 감아!”

나는 순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멈출 기미 없이 계속해서 피가 흐르는 내 입술 위로 누군가 가볍게 입맞춤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누군가 나를 깨웠다. 붕대를 감기 위해서였다. 가까스로 잠을 깬 나는 얼른 옆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사람이 누워 있었다.

싱클레어가 걸어가는 내면의 길에 동참하면서,

인간은 타인과 어울려 수많은 가치관을 서로 나타내고 얽혀있는 세계 속에 있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것이 선과 악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둘 다가 인간 내면에 들어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의 내면에 깃든 선과 악을 사용하는 주된 자가 나란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나의 유전인자에 들어있는 불교철학과 과하거나 부족함이 없이 떳떳하며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중용을 배운 나에게는 외부의 신이 따로 존재하지 않아 <데미안>의 싱클레어의 깨달음은 어렵지 않게 와 닿았다. 그리고 어떤 종교를 가졌던 간에, 사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같다는 생각도 하게 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렇게 정의를 내려본다.

<싱클레어의 친구이자 인도자인데미안은 사실 싱클레어에게는 예수그리스도이고,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부인은 성모마리아다.> 라고.

물론 헤세가 정의한 신의 모습과 마리아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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