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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 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컬렉션 ㅣ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6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평점 :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은
'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콜렉션' 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만큼, 책을 읽는 내내 지적유희가 어떤 것인가 제대로 보여주었다.
지식 캐기의 즐거움.
감자 한알을 당기면 줄줄이 이어지는 탐스런 감자들. 그 쾌감은 밭에서 감자를 캐 본 사람이라면 박수를 치며 공감을 할 것이다.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새로운 인물, 새로운 이야기가 줄줄이 펼쳐지는 글에서 난 감자밭의 감탄을 연발한다. .
한명의 인물 따라 관련있는 인물들이 그물망 처럼 얽혀 있고, 이야기 거리가 그믈망 한가득이었다.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한다.
나도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은 그 곳이 존재하고 인간이 존재하는 동안은 멈출 수 없는 매력임엔 틀림없으리라.
다분히 방랑자 기질인 나는 홍대용, 박제가를 따라 18세기의 문물과 지식인을 만나는 여행에 기꺼이 뛰어든다.
그리고 같은 만남에서, 각자의 느낌을, 각자의 책으로 만들었던, 선조들의 지적 유희에 흠뻑젖어들었다.
여행하는 것 보다는 적은 돈으로 이런 엄청난 즐거움을 선사해 준 인물은 '정민 교수'.
저자는 2012년 7월 18일 1년간 하버드 대학 옌칭연구소의 방문학자로 초청을 받아 그 곳에 머무는 동안 옌칭도서관에서 사료를 살펴 연구했고, 18세기 조선의 실학자 홍대용, 박제가 등이 연행길에서 만난 중국학자와의 교류에 관한 책을 만들었다.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은 연구서는 아니다.
연구서를 만들기 위해 주제에 관련된 인물의자료를 수집하는 이야기, 그리고 그 인물과 자료에 관련된, 40화나 되는 방대한 이야기이며 연구서의 밑그림이다.
그렇지만 그의 탁월한 해석력이 그것만으로도 무척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이 책에서 인용되는 자료의 일등공신은 일본인 학자 후지쓰카다. 그래서 '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콜렉션'이란 부제가 붙은 모양이다.
후지쓰카는 경성제국 대학 교수로 있었으며 한국 중국의 문화 교류 자료를 수집, 연구하다 조선의 대학자, 김정희를 만난다.
김정희의 학문에 매료된 그는 추사에 관련된 많은 자료를 수집하였고, 1940년 정년퇴직하여 일본으로 돌아갈 때 우리나라에서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돌아갔다. 그러나 그 많은 자료는 1945년 3월 10일에 이루어진 미국의 도쿄 폭격으로 잿더미로 변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방공호에 있었던 일부의 자료가 미국 옌칭도서관으로 들어갔고, 나머지는 후치스카의 아들에 의해 추사가 마지막 살았던 과천 시청에 기증되어 추사 박물관이 만들어졌다.
정민교수의 옌칭 박물관의 감자캐기는 그러니까 후지쓰카의 자료 였다.
일본인들이 자료 수집과 정리의 귀재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민교수도 그의 자료를 보면서 매우 부러워했고 나는 우리 것이라는 것에 집착해 속이 상했다.
그러나 한일 병합시절의 한국에서 그 자료가 안전했으리란 보장이 없고 그런 의미에서 순수한 학자적 관심과 열정에서 후지쓰카란 학자가홍대용, 박제가 등의 지식인들의 자료를 정리해 둔 것이 다행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도 우리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를 못했던 것이 아니라, 많은 전란으로 소실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옌칭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내즐거워 하는 저자를 상상하면서 같이 즐거웠고,
'열하일기' 속에서만 알고 있었던 18세기의 중국과의 교류의 대략적 모습을 볼 수 있었고,
특히 홍대용이란 인물이 대학자로 내게 새롭게 다가왔다.
아직 저자는 갈길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독자는 저자 덕분에 앉아서 책장 넘기는 것으로 지식을 즐기는 기쁨을 누렸다. 쉽게 누리긴 했지만, 도서관에서 원하는 자료를 찾아내는 저자의 즐거움과 그런 자료를 알아볼 수 있는 저자의 지식이 한없이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후대에 남길 유산으로서의, 연구물의 성과가 기다려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