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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와 메모광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를 만든 정약용, 이덕무, 박지원.
그들은 못 말리는 책벌레였으며 메모광이었다.
<책벌레와 메모광>은 그들의 독서와 학문에 관한 책이다.
대한민국에서 나서 자라고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정약용, 이덕무, 박지원을 모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어떤 일을, 어떻게 했는지는 자세히 모른다 할지라도 이름을 듣는 순간 아, 하는 감탄사와 함께 상당히 친근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만큼 유명하고 익숙한 이름이다. 적어도 누구나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로. 그리고 이들은 이 책의 저자 ‘정민’ 교수의 단골 연구 대상이며 저자가 펴낸 책의 대부분이 이들과 관련된 글이다.
이번 책은, 그들이 어째서 책벌레이고 어떤 메모를 남겼는지, 그리고 그 결과로 어떤 학문적 문화가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파헤침의 결과물이다.
책의 소장과 독서, 집필에 관련된 이야기는 나에겐 늘 낭만적으로 와 닿는다. 실제의 과정이 얼마나 치열하고 힘든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으면서도 말이다.
저자가 옛 책에서 메모를 발견하고, 메모의 내용을 따라 가다 다른 책을 만나고, 탐구거리를 발견하고, 마침내 확인하며 기뻐하는 모습이 왜 그렇게 낭만적으로 다가오는지, 나도 덩달아 충분히 즐겁고 흡족해진다.
조선 시대 최고의 책벌레, 이덕무는 생계를 위해 필서를 많이 했다고 한다. 한 권의 책을 얻기 위해 팔이 빠지도록 눈이 침침하도록 필서를 해야 했던 이덕무의 힘든 삶을 읽고 있는데도 그의 삶이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책을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고단한 환경 보다 책에 대한 그의 애정이 더 커 보였기 때문일까. 아니 이덕무의 책에 대한 열정이 다른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요술을 부렸던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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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을 통해 조선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자신도 책벌레이자 메모광임을 은근히 드러낸다. 사실 <책벌레와 메모광>은, 저자의 전작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에서 저자가 남긴 수많은 메모들 속에서 탄생한 작품인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책 읽기’는 또 다른 ‘책 쓰기’란 생각을 했다.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은 열정적으로 독서를 하고 그것을 기억하고 학습하는 방법으로 ‘메모’를 했고 옛날의 그 메모는 저자의 또 다른 메모로 넘어가 새로운 책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독서는 어떤 의미일까.
세상에는 어떤 답이 얼마나 존재할까. 독서인구의 수만큼이나 많은 답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독서하는 한 사람으로써, 나도 답을 하나 더해 보려한다. 어쩌면 개개의 대답이 결국은 바다로 흘러가는 수많은 강물처럼 본질은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은 머리를 가졌고 머리로도 즐긴다. 다시 말하면 ‘앎’을 즐긴다.
그리고 ‘앎’은 끝이 없다.
불교에서 말하는 ‘돈오점수’. 하나를 깨치면 다시 다른 의문이 온다. 그래서 또 다른 ‘앎’을 향해 간다. 분야마다 다른 ‘앎’을 위해 일일이 스승을 찾아 나설 수는 없다. 여건을 다 갖추긴 무척 어렵다. 나의 시간과 비용도 문제지만 스승의 여건이 모든 구매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긴 더 힘들다. 그리고 현재의 인물이 아닌 경우가 거의 대부분!
그러니 독서야 말로 제일 큰 스승이 아니겠는가.
조선 최고의 지식인들을 어디에서 이렇게 가까이 만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책을 대할 때마다 가슴 두근거리는 낭만에 젖을 수밖에.